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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작 네이션 -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 보고서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김유미 옮김 / 민음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울증은 웃고 있는 사람들의 가면이다. 우울증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특히 가면을 쓴 우울증은 가벼운 우울증, 일시적인 슬픈 감정과 달리 심각한 양상일 가능성이 높다. 증세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워 방치된 채 악화하기 쉽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 채 마치 가면 뒤에 꼭꼭 숨어있는 듯 내면 깊숙이 틀어박혀 있다. 우울증이 전염병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가장 맞닿아 있는 가정에서는 그 어둠의 그림자가 그대로 가족들을 힘들게, 고통스럽게 한다.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은 우울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한 책이다. 변호사로 활동 중인 워첼은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상세하게 서술하여, 과소평가된 이 병이 한 인간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실감 나게 소개하고 있다. 《프로작 네이션》이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약으로도 치유 불가능한 병’임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라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
프로작(Prozac)은 우울증 치료제이다. 미국에선 프로작 같은 우울증 치료제가 우리나라 감기약만큼 유명하다. 그만큼 환자가 많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2004년에 프로작을 포함한 모든 항우울제에 대해 복용 시 청소년들이 자살 충동이나 행위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지시했다.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자칫하면 청소년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과거에는 아동기에 우울증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80년에는 타당성이 인정돼 아동의 정신질환 분류에서 공식적으로 아동기에도 우울증이 존재함이 받아들여졌다. 어린이도 우울증을 앓는다. 어린이들은 자존심 저하, 자기 비하 등의 인지적인 요소가 전혀 동반되지 않은 슬픈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부모가 이혼하면 일반 아이들은 단순히 슬픈 감정을 표현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기질책 또는 부모들에 대한 원망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워첼은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이혼으로 갈라서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워첼의 사례처럼 어린 시절 경험은 우울증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워첼은 열두 살 때부터 십 년 넘게 우울증의 늪을 헤맸다. 약물치료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사와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겪었던 고통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자서전은 우울증의 심리적 증상에 초점을 맞춘 우울증 자가 진단서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의 정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세상 모든 일에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기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미래를 비관하는 태도,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가슴 사무치는 고독감 등을 느낀다. 우울증에 빠진 워첼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과 어머니는 워첼의 우울을 ‘약을 복용하면 재발하지 않는 증상’으로 반응하며 우울증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그저 사소한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반드시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우울 증상으로 문제가 생긴다거나 자살사고가 심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려 하는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히 긴 기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환자가 받아들여야 할 불이익은 크다. 자살시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으므로 일정기간 심각한 증상이 지속한다면 빨리 치료를 받아 불행한 결과를 막아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다. 그다음이 격려다. 이는 관심과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심적 고통의 늪에 빠졌다가도 누군가가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밀면 대부분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다. 워첼은 우울증에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적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정신력’에 믿음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내 마음이니까 반드시 내가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 끔찍한 상상에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울증 환자의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은 삶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시키고,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우울증 환자들의 몸부림을 이해한다면, 극단적인 절망의 낭떠러지까지 내몰려 있는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다. 우리의 관심과 포용력은 우울증의 늪에 빠진 이에게 생명을 구하는 귀한 밧줄이 된다.
* Trivia #1
홍보 문구를 만든 출판사 관계자가 워첼의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 Trivia #2
워첼의 글에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등 유명 작가의 책이 잠깐 언급된다. 306쪽에 마거릿 앳우드(애트우드)의 《떠오르기(surfacing)》에 대한 워첼의 짤막한 평이 나온다. 《떠오르는 집》(서숙 역, 지학사, 1987)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늦은 후기’에 워첼은 우울증 체험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윌리엄 스타이론의 《가시적 어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책은 《보이는 어둠》(임옥희 역, 문학동네, 2011)으로 번역되었다.
* Trivia #3
워첼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병이 있었고, 그녀가 복용했던 조증 치료제인 ‘리튬’은 갑상선에 문제가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20대 시절 모습과 최근 모습을 비교하면, 외모에 큰 변화가 있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녀의 얼굴에 오랜 투병 생활과 약물 복용의 후유증에 시달린 흔적이 남아 있다. 2015년에 워첼은 유방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 Trivia #4
2015년에 열두 살 연하의 제임스 프레드와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워첼은 만나던 남자에게 실연당했고, 자연 유산까지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오랫동안 쭉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