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생각하는발님의 표현대로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는 ‘밝지 않는 새끼’이다. 그의 인생 자체에서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뭉크는 자신의 일기나 편지 등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는 내심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주길 바랐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들은 자신 영혼의 일기라고 말했으니 우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화가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게 하려면 뭉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하며, 그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롤프 스테너센 《에드바르드 뭉크》 (눈빛, 2003년)

 

 

 

롤프 스테너센(Rolf Stenersen)은 뭉크와 가장 가까이 지냈으며 그의 집안일로부터 전시회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거들어 준 뭉크의 친구였다. 그는 그림을 수집하는 증권 중개인이었다. 그가 수집한 뭉크의 작품들은 현재 그의 이름을 딴 스테너센 박물관(Stenersen Museum)에 전시되었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뭉크의 사적인 일화와 그의 다양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롤프 스테너센은 뭉크가 어떻게 우울한 감정을 형성하게 됐는지, 왜 그가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 제작에 파고들게 됐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그의 증언과 뭉크의 성격 및 그림을 분석한 의견은 후대의 뭉크 연구자나 뭉크 평전을 쓰는 작가들이 참고하고 있다.

 

 

 

 

 

 

 

 

 

 

 

 

 

 

 

 

 

* 수 프리도 《에드바르드 뭉크》 (을유문화사, 2008년)

* 스테판 크베넬란 《뭉크》 (미메시스, 2014년)

 

 

 

수 프리도의 《에드바르드 뭉크》는 뭉크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아주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뭉크 관련 도서 중에 자료가 풍부한 편이다. 스테판 크베넬란의 그래픽 노블 《뭉크》는 ‘만화로 만든 평전’인데, ‘만화’라고 가볍게 보면 오산이다. 일단 크베넬란의 책이 불친절하다. 이 만화를 만든 저자는 뭉크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주관적으로 썼다고 밝혔다. 그만큼 크베넬란의 책은 일반적인 뭉크 평전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뭉크 관련 서적 몇 권 참고한 뒤에 그래픽 노블을 본다면 조금 복잡한 뭉크와 주변 인물 간의 관계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뭉크의 생애 중에 주목해 볼 내용이 두 가지가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뭉크와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의 우정, 그리고 뭉크와 다그니 유엘(Dagny Juell)과의 관계이다.

 

 

 

 

 

뭉크는 노르웨이, 스트린드베리는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이 두 사람은 북유럽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음습한 기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했던가.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이 예민했으며 시시때때로 우울 증세에 시달렸다. 특히 스트린드베리는 우울 증세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현병을 앓았다.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보헤미안(Bohemian)이었다.

 

뭉크는 독일 유학 시절에 보헤미안들과 어울렸다. 보헤미안 그룹 일원들은 다그니 유엘을 ‘아스파시아(Aspasia)’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아스파시아는 원래 아테네의 매춘부였으나 소크라테스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똑똑한 지성을 가졌다. 그녀는 장군 페리클레스(Pericles)의 애인이 되어 사교계의 여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보헤미안 남성들은 다그니 유엘을 ‘아스파시아의 재림’으로 본 것이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추구했고,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를 포함한 여러 남자와 어울려 다녔다.

 

 

 

 

 

현재까지 뭉크와 다그니 유엘이 실제로 연인 관계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뭉크가 다그니 유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다그니 유엘은 뭉크를 위해 그림 모델이 되어주었다. 수 프라도는 뭉크와 다그니 유엘의 연인 설을 추정하는 근거로 뭉크와 자화상과 뭉크가 그린 다그니 유엘의 초상화를 제시한다. 그녀는 이 두 그림이 결혼하는 남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결혼 초상화’라고 주장한다.

 

 

 

 

 

 

 

다그니 유엘은 폴란드 출신의 시인 스타니스라프 프시비셰브스키(애칭 ‘스타추’)[1]와 결혼했다. 다그니 유엘을 자신의 연인처럼 대했던 뭉크와 스트린드베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특히나 스트린드베리는 다그니 유엘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에 휩싸여 그녀를 악의적으로 비난했다. 스트린드베리가 경멸에 찬 어조로 다그니 유엘을 비난하는 대목이 스테판 크베넬란의 그래픽 노블 《뭉크》에 나와 있다. 수 프라도는 다그니 유엘을 평가한 스트린드베리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다. 스트린드베리의 증언은 여성혐오로 가득했고, 지나치게 과장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린드베리는 사소한 것에 화를 잘 냈다. 뭉크가 판화 형식으로 친구의 초상화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스트린드베리는 뭉크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리의 이름을 잘못 썼고, 그림 액자에 벌거벗은 여인이 그려 넣었다. 스트린드베리는 뭉크의 그림을 보자마자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이성을 잃은 스트린드베리는 뭉크를 죽일 심정으로 자신의 품속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림 한 점 때문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온 것이다. 만약 스트린드베리가 그 자리에 뭉크를 총으로 쐈으면 이 두 사람의 우정은 반 고흐(V. van gogh)와 폴 고갱(Paul Gauguin)이 크게 다툰 일화 다음으로 자주 회자하였을 것이다. 고갱 때문에 한쪽 귀를 잘라버린 반 고흐의 과격한 행동이 강렬해서 뭉크와 스트린드베리의 위험천만한 우정이 묻힌 감이 있다. 스트린드베리는 뭉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스트린드베리의 과대망상증은 심각했다. 뭉크가 자신의 방에 몰래 설치해둔 독가스 배관으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 믿었다.

 

뭉크는 스트린드베리 그리고 다그니 유엘보다 오래 살았다. 스트린드베리는 정신이 피폐해지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다그니 유엘은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낀 남자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스트린드베리와 다그니 유엘은 뭉크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뭉크는 다그니 유엘을 향해 악담을 퍼붓는 스트린드베리를 지켜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감정을 묘사했다. 불타오르는 감정에 지배당해 몸과 정신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친구의 모습에서 여성에 대한 공포심의 위험성을 느꼈다. 뭉크는 그 공포심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여성을 묘사한 뭉크의 그림에는 여성 공포증이 녹아들어 있다. 여성을 바라보는 뭉크의 감정이 스트린드베리의 여성혐오와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여성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남성이 경계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뭉크의 반응은 스트린드베리의 감정 형태와 유사하다. 뭉크에게 스트린드베리는 단순한 예술인 친구가 아닌, 자신의 성격과 감정이 내포된 영혼을 솔직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뭉크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연약한 스웨덴산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을 해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조심스럽게 다룰 줄 알았다.

 

 

 

 

[1] 스테판 크베넬란의 《뭉크》(미메시스, 2014)에서는 프시비셰비스키의 애칭을 ‘스타쿠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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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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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4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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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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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들 중에는 정신이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죠..
예술은 정상의 파괴에서 창조하나 봐요...
그 대상이 자신이건 타자이건 투사되었나 싶어요.....
ㅎㅎ 여자 조심..해야죠..(여자는 남자도 조심)

cyrus 2017-03-14 17:48   좋아요 1 | URL
매우 볼썽사나운 예술가들은 공통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 예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정말 최악의 인간들입니다.

레삭매냐 2017-03-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픽노블 <뭉크> 읽기는 했는데 거 리뷰를
쓰지 못했네요. 아무리 허접해도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말이죠.

아마 당대 문화나 캐릭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cyrus 2017-03-15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래픽 노블로 시작했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만화라고 가볍게 봤었어요. 결국은 분량이 많은 뭉크 평전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니까 그래픽 노블 읽기가 수월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