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대재앙을 일으킬 가능성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대답은 지금까지는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상과학영화 속의 얘기만은 아니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
* 칼 세이건 《혜성》 (사이언스북스, 2016)
* 다치바나 다카시 《21세기 지의 도전》 (청어람미디어, 2003)
* 게릿 L. 슈버 《대충돌》 (영림카디널, 2004)
* 콜린 윌슨 《세계의 불가사의 1》 (간디서원, 2004)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Tunguska) 지역의 원시림 위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정체불명의 폭발로 인해 약 2,000㎢의 숲이 완전히 타버렸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 1,000개가 폭발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었다. 미제로 남은 ‘퉁구스카 폭발 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소행성과 혜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임에도 우리나라에 퉁구스카 사건의 경위를 소개한 책이 많지 않다. 내가 알아본 바로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의 4장, 다치바나 다카시(たちばなたかし)의 《21세기 지의 도전》, 게릿 L. 슈버의 《대충돌》 그리고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세계의 불가사의 1》이 전부다. 《혜성》에는 퉁구스카 사건을 조금만 언급했다. 칼 세이건과 다치바나 다카시는 퉁구스카 사건의 원인 가설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퉁구스카 대폭발의 이유를 ‘운석 충돌’이라 설명했다. 즉, 수십 미터 크기의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일으킨 폭풍 때문에 그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폭발 지점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기지 않았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이 땅에 떨어졌다면, 미국의 애리조나 운석구덩이(Meteor Crater)와 같은 거대한 접시 모양의 흔적이 남아야 했다.
칼 세이건은 ‘혜성의 조각’이 지구와 충돌했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퉁구스카의 대폭발은 정확히 1908년 6월 30일에 일어났다. 매년 이 날을 기점으로 유성우가 떨어진다. 이때 지구는 앵케 혜성(Encke’s Comet)의 궤도에 지나게 된다. 혜성과 유성우가 충돌하면서 떨어져 나간 혜성의 조각이 퉁구스카에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소행성은 지구의 대기권에 진입 · 통과하면 속도가 감속되고, 대기권의 공기층에 의한 마찰열로 인해 분해된다. 불에 타오르면서 지구에 떨어지는 자잘한 부스러기가 운석이다. 그러나 대기권을 통과하는 혜성의 조각이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땅에 충돌할 때 지진과 유사한 엄청난 충격이 일어나고, 삼림을 한 번에 다 태워버린다. 혜성의 조각은 얼음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거대한 불덩어리’로 변하는 과정에서 얼음 덩어리가 녹아버렸기 때문에 엄청난 충돌에도 땅에 구덩이가 생기지 않는다.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퉁구스카 폭발 현장을 조사하면서 미세한 다이아몬드 알갱이를 발견했다고 한. 이 다이아몬드 알갱이는 혜성과 운석 물질을 이루는 구성 성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다른 가설은 ‘UFO 충돌설’이다.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운석 및 혜성의 조각 충돌설’에 완전히 밀린 가설이다. 칼 세이건과 다치바나 다카시도 코웃음 치는 가설이다. 상상력에만 너무 의존하는 사람들이 ‘UFO 충돌설’을 선호한다. 우리보다 월등히 수준 높은 외계 지적 생명체가 탑승한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를 지나갔다. 그런데 우주선이 고장 나는 바람에 퉁구스카에 추락했다. 과학소설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다. 일단 우주선의 일부로 보이는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콜린 윌슨은 ‘혜성의 조각 충돌설’에 동의하면서도 공중에 폭발한 물체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별에 날아온 우주선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역시 오컬트에 심취한 작가다운 주장이다.
며칠 전에 퉁구스카 사건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중에 흥미로운 보도 기사 한 건을 발견했다. 그 보도 기사에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퉁구스카 폭발 현장에서 UFO 잔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게 정말 사실이면 가장 신빙성이 높은 ‘운석 및 혜성의 조각 충돌설’은 폐기된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발견한 잔해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란다. UFO를 믿는 사람들은 이것만 듣고도 흥분하겠지만, 회의주의자들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외계 우주선 잔해 말고도 ‘50kg에 달하는 암석’을 발견했다고 하던데, 아마도 국내 기자가 ‘운석’을 ‘암석’으로 잘못 적은 것 같다.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기자가 ‘운석’을 몰라서 ‘암석’으로 고쳐 썼을 수도 있다. 아무튼 ‘50kg의 돌덩어리’라면 그리 적지 않은 무게이다. 이 정도 무게이면 맨눈으로 확인 가능한 크기이다. 그런데 1926년부터 총 여섯 차례에 걸쳐 현지 조사를 진행했던 레오니드 쿨리크(Leonid Kulik)는 폭발 현장에 운석 부스러기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1958년 이후에 재개된 현지 조사에서도 운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주선의 잔해와 ‘50kg에 달하는 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2004년 이 보도 이후로 우주선의 잔해와 ‘50kg에 달하는 암석’의 실체를 규명한 새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아마도 ‘오보’일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과학자들의 발견을 처음 보도한 언론이 인테르팍스 통신(Interfax, Интерфакс)이다. 이 언론사는 러시아 최대의 민영통신사인데, 오보율이 높다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혜성의 조각 충돌설’을 반박한다. 얼음 덩어리로 된 혜성 조각이 폭발 지점으로 추정되는 상공의 7,000Km 지점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녹아 분해되었다고 주장한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 녹아버려 거의 분해되기 일보 직전인 혜성 조각이 ‘거대한 불덩어리’가 될 수 없게 되고, 충격의 힘도 약해진다.
칼 세이건은 구소련 시절에 활동한 러시아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외국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만 확인한 것이 아니라 퉁구스카에 거주하는 몽골계 소수 민족 에벤키족(Evenki, 과거에는 ‘퉁구스족’이라고 불렀다)의 후손들에게 전해 내려온 폭발 사건 당시의 증언까지도 채록했다. 발품 들여 조사해서 검증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분석에 당연히 신뢰할 수밖에 없다.
1908년 퉁구스카에 살았던 에벤키족이 대폭발을 가까이에서 본 목격자이다. 그리고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으나 대폭발의 충격으로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에벤키족은 폭발이 일어난 퉁구스카 현장을 자신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으로 여긴다. 그래서 러시아 당국은 현지 조사 진행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또 그들이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퉁구스카 폭발로 사망한 에벤키족의 희생자 수를 집계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외국에서는 퉁구스카 사건이 지구 멸망을 초래할 뻔했지만,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역사상 최악의 행운’(《대충돌》 174쪽)으로 소개한다.
칼 세이건은 에벤키족을 ‘미개한 퉁구스족’(《코스모스》 165쪽)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로 그 자리에 사망한 에벤키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미개한’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그의 표현에 어폐가 있다. 에벤키족은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를 나뭇잎으로 직접 만들 정도로 뛰어난 지리학 지식을 가지고 있다.
칼 세이건과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지성(知性)들이 왜 백 년이나 지난 폭발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생뚱맞은 주제를 들고 나와 뭐 이리 길게 쓰고 있을까. 당연히 알아두면 좋은 내용이라서 썼다.
《21세기 지의 도전》의 독자 서평 중에는 이 책에 퉁구스카 폭발에 대한 내용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독자는 퉁구스카 사건을 한낱 사라져버리는 ‘나무 한 그루’ 정도로 봤다.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안목을 지닌 칼 세이건과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 사건을 지구 생존 여부에 직결된 ‘나무 전체’ 수준으로 봤다. 퉁구스카 사건은 과학 교과서에 실을 만한 흥미로운 내용이다. 학생들은 이 사건을 접하면서 혜성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과정과 이유를 알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종말론’에 빠질 우려가 없다. 퉁구스카 사건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검증, 또 검증하는’ 회의주의 방법론을 체득하게 된다.
칼 세이건의 4장 끝부분에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라고 썼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퉁구스카에 다녀온 이후로 ‘푸른 별이 처해 있는 환경적 위험성’을 걱정했다. 우리는 과학이 발달하고, 여기에 투자 가능한 돈만 들인다면 거대한 혜성의 지구충돌도 예방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과학 산업이 튼튼한 강대국들이 그렇게 나서서 해주면 고마울 텐데, 정작 그들은 국가 예산을 엉뚱한 데 쓰고 있다. 힘 있는 국가들이 군사 강국이 되기 위해 지금도 생명 살상 무기와 ‘핵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핵무기가 터질 확률이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확률보다 높아 보인다.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 절반이 정신 차려서 ‘반핵 운동가’로 변신하면 좋겠는데, 이 확률도 희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