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Jean-Francois Millet)의 『만종』 같은 그림을 보면 경건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밀레는 밭에서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멀리 보이는 교회에서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실제의 종소리야 바로 그쳤겠지만 ‘그림’에 담은 종소리는 1세기가 넘도록 울려 퍼지고 있다.

 

 

 

 

 

 

 

 

 

 

 

 

 

 

 

* 드림프로젝트 《세계 명화의 수수께끼》 (비채, 2006)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형언할 수 없는(Unnamable)’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만종』이 노동의 경건함과 일상의 평화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간직한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원래 밀레는 『만종』을 부부가 아사한 어린 자식을 땅에 묻는 장면을 그리려고 했다. 달리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되면 기도하는 부부는 실은 죽은 아기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밀레는 이 장면이 너무 암울하다고 판단하여 죽은 아기가 있는 관을 감자 바구니로 덧칠하여 그렸다.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달리는 『만종』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만종』을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은 달리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외선 투시 작업을 진행했다. 감자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조그만 나무상자가 그려진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로 전해지자 사람들은 달리의 투시력(?)을 재평가했다. 달리의 해석을 신뢰한 사람들은 『만종』이 원래 죽은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믿게 됐고, 『만종』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필수적인 정설이 되었다.

 

여전히 논란이 있는 달리의 『만종』 해석이 예술 상식으로 소개되는 상황이 난감하다. 예술에 생소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흥미로워 한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예술 이야기를 접하면 어렵다고 생각한 예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밀레의 그림을 연구한 학자들은 달리의 해석이 억측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사실 의문의 나무상자가 달리의 말대로 관인지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만종』의 관 이야기는 그림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던 달리의 주관적인 해석에 가깝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심리’는 가짜 지식을 유통하는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준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때문에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만종』에 진짜로 죽은 아기의 관이 그려져 있다고 믿는다.

 

 

 

 

 

 

 

 

 

 

 

 

 

 

 

* 살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다빈치, 2004)

*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이마고, 2002)

* 살바도르 달리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 (이마고, 2012)

 

 

달리는 일생에 걸쳐 확증편향에 가까운 기행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과시욕을 보여줬다. 그는 마치 돈키호테(Don Quixote)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둘러싼 세상과 주변 사람들까지 변형해서 봤다. 그런 자신의 시선을 반영한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생뚱맞고 난해하게 느껴진다. 달리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달리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달리가 직접 쓴 글은 달리의 과대망상 세계관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이다. 《달리, 나는 천재다!》는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일기 형식에 가깝다. 달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천재가 쓴 유일한 일기’라고 밝혔다.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는 달리가 37살에 집필한 자서전이다. 달리는 스스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오만방자한 발언들을 했다. 괴팍한 성격답게 달리의 문장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내용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 연상되며 이게 과연 어디서부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앞에 언급했던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위배하기까지 한다.

 

 

일곱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나는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서 살았다. 나중에 가서는 현실과 상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나의 기억은 진짜와 가짜를 뒤섞어서, 너무나 부조리한 몇몇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한 다음에라야만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나의 어떤 추억거리가 러시아에서 벌어졌다고 할 때, 나는 어렵지 않게 그 추억을 가짜로 분류할 수 있다. 한 번도 그 나라에 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1]

 

 

이 문장은 달리의 머릿속 또는 환각과 몽상으로 이루어진 달리의 그림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기본 열쇠이다. 달리의 그림은 상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얼핏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달리는 자신의 그림들이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여 제작한 것처럼 설명했다.

 

 

 

 

 

 

 

 

 

 

 

 

 

 

 

 

 

 

 

 

 

 

 

 

 

 

 

 

* 로버트 래드퍼드 《달리》 (한길아트, 2001)

* 자비에르 질 네레 《살바도르 달리》 (마로니에북스, 2005)

* 장 루이 가유맹 《달리 :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시공사, 2006)

* 돈 애즈 《살바도르 달리》 (시공아트, 2014)

* 캐서린 잉그램, 앤드류 레이 《This is Dali》 (어젠다, 2014)

 

 

달리는 자신이 지향하는 초현실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라고 명명했다. 편집증적 비평 방법은 현실 세계의 대상(사람, 사물)을 환각 또는 상상력을 동원해 또 다른 대상으로 변형하여 해석한다.

 

 

 

 

 

 

 

 

 

달리는 ‘편집증적 비평 방법’으로 『만종』을 새롭게 봤고, 재해석했다. 그는 그 그림 속에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서사가 있길 원했고, 그가 확인한 것이 바로 ‘죽은 아기의 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달리는 농부를 어머니에게 정욕을 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지배한 아들로, 농부의 모자를 발기의 상징으로 봤다. 건초 마차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상으로 해석했다. 어린 시절 달리는 죽은 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못마땅했고, 그런 어머니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무의식 속에 품은 공포와 절망감을 『만종』에 투영해서 바라본 것이다. 그가 천재 특유의 투시력이 있어서 그림에 가려진 나무상자를 알아챈 것이 절대로 아니다.

 

 

 

 

 

 

사실 ‘편집증적 비평 방법’은 달리가 아포페니아(Apophenia)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거창하게 보여주는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현상들에서 연관성을 찾는 착시의 심리 상태이다. 이 두 가지 착시에 빠지면, 보름달을 보다가 떡방아 찧는 토끼 한 쌍을 발견하기도 하고, 화성 표면을 찍은 사진에서 외계 생명체로 추정하는 얼굴 형태를 찾는다. 『만종』의 감자 바구니를 죽은 아기의 관으로 본 달리의 시선 역시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 현상과 관련 있다. 회의주의자 입장에서는 객관성과 거리가 먼 달리의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달리의 예술을 옹호한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아포페니아와 파레이돌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떤 질서, 특히 사람 얼굴과 닮은 형상을 보려고 한다. 달리를 포함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그런 인식의 한계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이용했다.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다. 인간은 상상할 자유가 있다.

 

 

 

 

[추신] 글의 제목은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에 착안해 정해졌다.

 

[1] 살바도르 달리 《달리, 나는 천재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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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08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각이 심하면 두가지 경향의 극단으로 치닫죠.
미쳤거나, 천재거나..^^..
다행히 예술로 미친거라서 작품의 망상적 해석이
예술로 발현된듯 하네요..

cyrus 2017-03-08 18:50   좋아요 0 | URL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수준 미달 정도가 아니면 예술에서 망상 허용은 인정합니다. ^^

갱지 2017-03-08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죠. 소통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이와 단절시키고 스스로만 공고해져가는 이가 있을 뿐. 달리는 후자의 끝 쪽이었던 듯해요, 재밌는 글 잘 읽고갑니다-.

cyrus 2017-03-08 18:5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달리의 삶을 살펴보면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하고, 고집스럽고, 자신의 아내에만 의지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가 아내를 만나지 못하면 자신만만하게 살아가지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