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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근대마술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16
하니 레이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6월
평점 :
마술(魔術)을 뜻하는 영어의 ‘Magic’은 라틴어 ‘Magus’에서 유래했다. ‘Magus’가 처음에는 ‘동방박사’, ‘점성술사’라는 의미의 단어였으나 나중에 ‘마법’으로 발전했다. 마술의 역사를 논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사람이 시몬 마구스(Simon Magus)이다. 흔히 ‘마술사 시몬’으로 알려졌다. 그는 마술로 사마리아인들의 병을 고치기로 소문이 난 유명인사였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마술이 몇 가지로 구별됐다. 첫 번째 마귀를 쫓는 마술이 있었고, 두 번째 병을 고치는 마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는 남을 속이면서 돈을 받는 마술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 마술을 선보였던 시몬은 베드로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매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마술은 기성 종교와 서로 대립한다. 마술의 행함이 비도덕적인 면이 많고 악령을 통해 일으키기 때문이다.
《도해 근대마술》은 속임수를 이용한 마술(Magic trick) 이전에 성행했던 각종 금단의 마법과 주술 그리고 관련 비밀 단체 및 종교 등을 소개한 책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던 ‘의심스러운 책’이다. 서구의 수많은 학자가 마술을 학술적으로 규정하느라고 애를 썼으나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을 정도로 마술의 범주는 애매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다. 공통된 것은 마술은 통상의 감각기관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힘들의 상호연관성을 전제하며, 과학과는 다른 작동 원리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마술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과학과는 다른 법칙을 주장하기에 허황하고 불합리하다고 비난받는다. 또 기독교가 유일신의 의지에 순종함을 주장하는 데 반해, 민간신앙에 두드러진 마술은 인간의 뜻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적 오만함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와 근대과학의 배경을 가진 서구문화에서 마술은 항상 박해를 받아왔다. 르네상스 말기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술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마법, 신비주의, 심령술 등에 심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도 예외가 아니다. 말년의 에디슨(T.A. Edison)과 코난 도일(Conan Doyle)은 심령술의 지지자였다. 독자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개념을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는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가 만든 신지학 협회의 회원이었다. 신지학 협회는 근세 최대의 신비주의 단체이다. 여기에 유명 인사들이 협회에 가입되었는데, 월리스뿐만 아니라 에디슨, 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등이 있다. 신지학(神智學)은 우주와 자연의 불가사의한 비밀, 인생 근원의 본질을 직관으로 인식하려는 학문이다. 합리성을 내세우는 서양 사상의 전통에서 신지학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신지학에는 불교, 힌두교, 심령술, 카발라(Kabbalah, 유대교의 신비주의) 심지어 진화론까지 섞여 있어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논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지학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은 왜곡된 진화론이다. 열등 인종의 제거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이론으로 작용했다.
마술이 주술이나 마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도해 근대마술》은 ‘비과학적’이고 ‘악마적’인 마술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비현실적인 마술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서문에서 마술의 세계관을 믿는 건 독자의 몫이라고 밝혔다. 당신이 건전한 회의주의자라면 마술의 세계를 흥밋거리 정도로 받아들여도 된다. 다만 마술이 사이비 과학으로 둔갑하면 검증해야 한다. 딱 봐도 의심이 드는 이상한 현상이나 논리를 막연하게 믿어선 안 된다.
이 책에 ‘심령술’ 항목의 사례로 ‘하이즈빌 사건’이 소개됐다. 하이즈빌(Hydesville)은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도시인데, 이곳에 살았던 마거릿 폭스(Magaret Fox)와 케이트 폭스(Kate Fox) 자매가 유령과의 교신에 성공하여 심령술사들 사이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지금도 폭스 자매가 살았던 집은 그대로 보존되어 오컬트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매는 유령과의 교신이 속임수라는 것을 자백했다. 폭스 자매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심령 현상으로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단골 떡밥으로 거론된다.
마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심리적 현상은 사회가 정서적으로 병들었을 때 현실도피와 불안감 해소 등의 기능을 하며 형성된다. 일종의 왜곡된 신앙처럼 구성원들은 무조건적인 결속력과 배타적인 집단 심리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사회를 교란하는 사이비 종교가 생겨난다. 그러나 이 단점만 가지고 오컬트 문화가 ‘악마 숭배’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오컬트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입장도 ‘검증’ 대상이다. 사람들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마술의 매력이다. 마술에 흥미를 느끼는 일은 인간의 ‘상상할 자유’이다. 상상력마저 통제하면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으려나.
※ 《도해 근대마술》은 일본에서 발간된 책이다. 일본의 오컬트 문화는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됐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정말 의심스러운 책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심지어 오컬트 전문 잡지도 있다. 일본어 책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겨서 그런지 집시들이 점을 볼 때 사용하는 타로 카드(Tarot card)가 이 책에선 ‘타로트(タロット)’로 되어 있다. 그밖에 국내 외래어 표기법이 지켜지지 않은 외국 인명 몇 개 지적해본다.
* 98쪽 : 블가코프 → 미하일 불가코프(러시아의 소설가, 대표작이 <거장과 마르가리타>인데, 《도해 근대마술》에서는 ‘거근과 마르가리타’로 되어 있다)
* 117쪽 : 유이스만스 →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프랑스의 상징주의 작가)
* 128쪽 : 예츠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의 시인, 책의 목차에 ‘예이츠’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편집상 실수로 생긴 오자로 추정된다)
* 137쪽 : 영국인 코린 윌슨
프랑스의 마녀 모니크 니키 윌슨의 남편. 이름만 봐서는 《아웃사이더》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동일인으로 볼 수 있다. 콜린 윌슨가 오컬트에 심취하고 연구한 작가였으니까 마녀와 결혼해서 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인 코린 윌슨’은 ‘콜린 윌슨’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