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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2012년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물질의 질량 생성에 관여하는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Higgs Boson) 발견에 성공했다. 대단한 연구업적으로 현대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뉴스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단위조차 생소한 미시의 세계에서 원자보다도 더 작은 입자들을 충돌시키고 관측하는 입자물리학 연구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신의 입자(God particle)》가 뒤늦게나마 다시 번역돼 나온 것은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이 책은 일명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에 한발씩 다가선 책이다.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리언 레더먼(Leon Lederman)은 미국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명예소장을 지냈고,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힌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원자론으로부터 돌턴(J. Dalton), 러더퍼드(E. Rutherford)의 원자모형을 거쳐 현대적 원자모형으로 발전해오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물리학자가 축적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이 책이 나온 이듬해에,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의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톱 쿼크(Top Quark)’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로써 물질의 형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인 쿼크 6종 모두 발견되었다.
90년대에 힉스 입자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는 ‘물리학의 성배(聖杯)’를 찾는 일이었다. 물리학에서는 우주가 보이지 않고 신비스런 장(場, field)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입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입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이 무거워진다. 톱 쿼크가 무거운 것은 힉스장과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질량이 없는 광자는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이처럼 힉스 입자는 입자들이 성질은 비슷하지만 질량이 크게 다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힉스장을 풀장에 비교하면 입자는 수영선수들이고, 수영선수들이 헤엄을 치면서 물과 부딪칠 때 비로소 질량이 생성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스코틀랜드 출신 과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의 이름을 따 명명된 힉스 입자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 고안된 개념이다. 힉스 입자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거대한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태초의 환경을 재연하는 것이다. 힉스 입자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특별히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물리학의 기초이론에 변혁을 일으킬만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정말 많다. 과학자들은 축적된 이론을 바탕으로 계속 진보했다. 고전물리학의 기틀을 완성한 뉴턴(I. Newton), 상대성이론을 정립하여 뉴턴의 시대를 넘어선 아인슈타인(A. Einstein), 불확정성 이론을 주창한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 등이 있다. 아무튼, 더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런데 레더먼은 자신의 책에 과학과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의외의 인물을 페르미 연구소에 소환한다. 그 인물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다.
고대로부터 여러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동안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 현상이 신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자연 속의 물질이 극히 작은 기본 구성 요소들로 결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물질을 계속해서 잘라 나가면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작고 단단한 입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입자에 그리스어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원자(atom)’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과학적으로 접근한 실험적 연구라기보다는 사색과 직관에 의한 것이라서 오늘날의 과학이론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존재성을 놓고 철학적인 고뇌로부터 시작, 만물의 근원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전자란 전류를 느끼기에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다. 이렇게 검증이 가능할 때 이를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 실체가 검증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끝에 힉스 입자를 알아낸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레더먼이 《신의 입자》를 출간하기 전에 원제를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지으려 했다. 그 당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이 대단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입자의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고 팽창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궁금증은 아주 오래전 데모크리토스가 먼저 시작했고, 아인슈타인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에 도달하기 위해 시도했다. 힉스 입자는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궁극의 이론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것은 틀림없지만 모든 것들의 의미는 여전히 희미할 뿐이다. 그래도 과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의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신은 우주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을까”라는 아인슈타인의 질문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느냐를 밝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영역이다. '신의 입자'는 실생활에 쓸모 없고, 무척 어려워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존재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신의 입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좋은 입자(Good particl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