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은 나이 마흔셋에 문명을 등지고 원시적 감성이 살아 숨 쉬는 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났다. 고갱은 이후 문명과 원시를 몇 차례 오가며 변화무쌍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그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아 노아(Noa noa》를 썼다. 산문집의 표지와 삽화를 직접 그렸고, 자비로 출판했다. 비록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이 책에 고갱의 고독했던 삶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노아’는 마오리족 어로 ‘향기’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노아 노아 : 폴 고갱의 타히티 체류기》(열화당, 1979년, 재판 1994년), 《고갱의 타히티 기행》(서해문집, 1999년)은 《노아 노아》를 번역한 책이다. 열화당 판은 출간 연도가 상당히 오래 돼서 구하기 힘들고, 서해문집 판(약칭 《타히티 기행》) 도 절판되었다. 《폴 고갱, 슬픈 열대》(예담, 2000년, 약칭 《슬픈 열대》)에는 《노아 노아》의 일부 내용만 소개되었다.

 

 

 

 

 

 

세 권 중에 비교적 완성도가 높고, 읽을 만한 판본은 열화당 출판사의 《노아 노아》이다. 이 책에 수록된 고갱의 판화는 그의 제자 다니엘 드 몽프레가 복제한 것이다. 《타히티 기행》의 일러스트는 원본이다. 고갱의 자필 문장도 볼 수 있다. 그리고 1962년에 작성된 서머싯 몸의 서문이 있다. 번역어만 가지고 고갱의 문장 실력을 평가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고갱의 친구이자 상징주의 시인인 샤를 모리스가 《노아 노아》 원고 일부를 다듬었기 때문에 《노아 노아》의 원문 전체 중에 고갱이 쓴 것을 찾아내 구별하기가 어렵다. 원고를 윤색한 친구 때문인지 은유, 상징, 관념적인 표현이 들어간 문장이 많다.

 

 

 

 

 

 

 

 

 

 

 

 

 

 

 

 

 

 

알라딘에 프랑스 원어로 쓰인 전자책 《노아 노아》를 무료로 내려받아서 읽어볼 수 있다. 프랑스 원어와 《타히티 기행》 번역문을 대조해서 읽어보고 싶었으나 프랑스어를 1도 몰라서 포기했다. 그래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서까지 《타히티 기행》 1장 전체 내용을 원문과 대조해서 읽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하지만 프랑스어 문법을 몰라서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다.

 

《노아 노아》는 보들레르의 시구를 사용한 제사(題詞)로 시작된다.

 

“말해주오... 무엇을 보았는지?” (Dites, qu'avez-vous vu?, 《타히티 기행》 13쪽)

 

《슬픈 열대》는 제사가 없다. 《노아 노아》가 시작되는 첫 번째 글이 《슬픈 열대》 중반부에 배치되는 바람에 번역자가 제사를 삭제한 것 같다. 그리고 발췌 편집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문장을 삭제한 흔적도 보인다.

 

 

* Les vahinés reprenaient le bras de leur tanés, parlaient haut, dodelinaient des fesses, tandis que leurs larges pieds nus foulaient lourdement la poussière du chemin. Près de la rivière de la Fatüa, éparpillement général.

 

* 여자(vahines)들은 다시 남자(tanés)의 팔을 잡고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면서 그 큰 발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파튜 (Fatü) 강가를 따라 흩어져 갔다.

(《노아 노아》 12쪽)

 

* 아내는 남편의 팔을 잡고 생기 있게 떠들었고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튼튼한 맨발로 길바닥의 먼지를 심하게 일으켜댔다. 파투(Fatü) 강가 근처에서 모두 흩어졌다.
(《타히티 기행》 20쪽)

 

* 여자들은 남자들의 팔짱을 끼고 엉덩이를 흔들며 먼지 이는 파타우아 강가를 따라 흩어졌다. (《슬픈 열대》 138~139쪽)

 

 

vahiné타히티의 여자뿐만 아니라 아내, 정부(情婦)도 의미하는 단어다. 원서에는 강의 이름이 ‘Fatüa’로 되어 있으나《노아 노아》와 《타히티 기행》의 번역가는 ‘Fatü’로 썼다.

 

 

 

—Tu sais, Gauguin, fit la princesse en se levant, je n'aime pas ton La Fontaine.
—Comment? Notre bon La Fontaine!
—Peut être est il bon, mais ses morales sont laides. Les fourmis….
(et sa bouche exprimait le dégoût).
Ah! les cigales, oui! Chanter, chanter, toujours chanter!

 

 

"고갱, 당신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네 나라의 라 퐁텐을 싫어한단 말이에요."

"어째서? 우리들의 선량한 라 퐁텐을?"

"아마 그는 선량한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사람의 도덕이란 게 도시 맘에 들지 않는단 말예요. 개미...?"

그녀의 입가엔 혐오의 정이 역연했다.

"오, 베짱이. 그는 좋다. 노래하고 또 노래하고 항상 노래하는..."

 

(《노아 노아》 18쪽)

 

 

"고갱 씨, 알아요?" 일어나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당신네 라 퐁텐느를 좋아하지 않아요."
"어째서? 우리 훌륭한 라 퐁텐느를?"
"아마 훌륭한 사람이겠죠. 하지만 그 사람 도덕은 마음에 안 들어요. 개미는..."
(그리고 그녀의 입은 불쾌감을 나타냈다)
"아, 베짱이는, 그래요. 노래하고 노래하고 항상 노래해요!“


(《타히티 기행》 25~26쪽)

 


"아시나요, 고갱? 난 당신네 작가 라 퐁텐을 싫어해요."
"왜 우리 선량한 라 퐁텐을?"
"선량한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사람이 말하는 도덕은 도무지 마음에 안 들어요. 개미라고!"
그녀의 입이 혐오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난 매미가 좋아요. 이것들은 노래하고 또 노래하고, 언제나 노래하죠..."


(《슬픈 열대》 145쪽)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티티(Titi)라는 타히티 여자가 고갱 앞에서 라 퐁텐의 우화를 암송한다. 그리고 그녀는 고갱에게 우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다. 라 퐁텐 우화집은 동물을 위주로 한 소재와 접근방식이 비슷한 탓에 흔히 이솝 우화집과 혼동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가 유사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오랜 시간, 전세계로 구전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살짝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가 프랑스에선 ‘개미와 매미’로 알려져 있다. ‘cigale’은 매미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이솝 우화 그리스어 원전에도 ‘개미와 매미들’로 되어 있다.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인들의 그림은 문명 세계를 떠난 순수하고 위안을 주는 예술로서 칭송받아 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은 고갱의 그림이 식민주의(colonialism)와 관광주의(tourism)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아 노아를 읽어 봐도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주의가 결합한 고갱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고갱은 원시적이고 순수한곳을 찾아 섬 깊숙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문명의 손길이 닿은 타히티의 현실에 실망했다. 그곳에는 원시의 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고갱은 자신의 몸과 정신에 배어있는 문명의 요소를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 과정에서 고갱은 자신이 원주민의 삶에 동화된다고 생각했다. 고갱과 동행한 원주민들이 그에게 친밀한 원시의 향기를 맡았는지 알 수 없다. 노아 노아는 고갱의 시점으로 야생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고갱의 타히티 정착 생활은 야생에 완벽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백인의 관광주의적 체험과 유사하다.

 

고갱은 토테파라는 이름의 원주민과 함께 산 속에 자란 장미 나무를 꺾는다. 그는 도끼로 장미나무를 꺾음으로써 마오리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확신한다.

    

토테파와 나는 무거운 장미나무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오두막까지 날랐다. 장미나무. 그것이야말로 노아 노아였다. 토테파가 나에게 말했다.

 

“Paia?(재미있었어요?)”

 

그럼!”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 그럼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장미나무의 목판에 온 힘을 다해 칼자국을 넣었다. 그리고 칼자국을 넣을 때마다 점차로 고양되는 승리와 회춘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노아 노아!

 

(노아 노아41)

 

 

제국주의 유럽은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보면서 절대적인 존재로서 지구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을 문명화하는 것이 백인들의 의무(mission)라는 명분까지 내걸고 식민지 정복의 길로 나선 것이다. 고갱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 정복을 과시하는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 그가 야생의 장미 나무를 꺾고,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노아 노아는 원시 문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근대적 욕망이 만들어 낸 환상의 상징이다고갱은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굉장히 추상적인 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건드리려고 시도했다. 고갱이 한평생 추구했던 의무는 가장 아름다울 수도, 더없이 추해질 수도 있는 이중적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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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11-22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고갱 자신이 문명 우월론자였으면서 원시상태를 꿈꾸고 그 모습을 완벽하게 그리려고 했다는 게 말이 안 됐었네요.자신이 이미 바뀔수가 없는데..

cyrus 2016-11-22 18:52   좋아요 1 | URL
고갱은 자기확신이 강한 편이었어요. 그렇지만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클수록 자신의 선택(타히티 섬 정착)에 실망했을 겁니다. 고갱의 글은 자기 합리화로 포장되어 있어요.

yureka01 2016-11-2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이 동양의 도교 사상을 알았더라면 혹시 어떻게 되었을까요..^^

cyrus 2016-11-22 18:54   좋아요 0 | URL
아마도 고갱이 동양미에 심취했으면 이인성 같은 화가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