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는 일상세계로부터 단절을 추구하는 사조다. 회화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로 화면을 꾸미는 장르를 말한다. 또한, 대상을 과도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리되 그것을 약간씩 비틀어 생소한 느낌을 주어 혼돈을 체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화가들에게 강조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보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뛰어난 상상력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꿈과 욕망,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세계를 상상력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변용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기욤 아폴리네르였다. 그는 생전에 시인으로만이 아니라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에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이 초현실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브르통은 일상의 상식에 매몰돼가는 인간을 해방하고 꿈과 잠재의식이 엮어내는 초현실의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로 인간을 안내하는 길잡이인 초현실주의 회화의 기법을 마련한 것은 막스 에른스트였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콜라주(collage)를 보고 브르통은 이것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시금석’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에른스트는 다양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선보였는데, 프로타주(Frottage)는 20세기를 거쳐 오늘날 작가들에게 유용한 실험적인 기법이다. 누구나 어릴 적에 백 원짜리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검게 문질러 그려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게 프로타주다.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것이다. 프로타주의 어원은 '문지르다'는 뜻의 프랑스 단어 '프로테'(frotter)에서 파생됐으며, 화가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 에른스트가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한 것도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비가 내리던 그날 저녁, 나는 프랑스의 해변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룻바닥에 깊게 파인 홈들을 흥분한 가운데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명상과 환각 능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나는 마루 위에 종이 몇 장을 아무렇게나 놓고 연필을 문지르기 시작해 몇 장의 스케치를 떴다.

 

(막스 에른스트, 베르너 슈피스의 책 《막스 에른스트 : 프로타주 기법과 예술세계》 14쪽)

 

 

 

 

그라타주(Grattage) 또한 에른스트가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이것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그림 제작 방식이다. 종이에 크레파스로 여러 가지 색을 칠한 뒤에, 까만색을 덧칠해 날카로운 물건으로 원하는 형상이 나오도록 긁어낸다. 에른스트는 캔버스에 물감을 여러 겹 바른 후 표면을 긁어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이성과 상식을 거부하는 초현실주의 미술은 192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서구 미술 흐름의 중추적인 사조였다. 그러나 국내 화단에서 초현실주의는 상대적으로 별로 활발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은 있었지만, 이들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초현실주의 그림의 난해성은 관객의 접근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에른스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그림들은 어둡고 불길한 징후를 간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에른스트의 『세 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 예수를 때리는 성모』는 기존의 성모자 상을 뒤집는 도발적인 그림이다. 성모는 벌거벗은 아기 예수의 엉덩이가 벌겋게 되도록 손바닥으로 때린다. 힘이 세게 들어간 성모의 엉덩이 스매싱 때문에 아기 예수의 광륜(halo)이 바닥에 떨어졌다. 성모 뒤에 에른스트, 브르통, 엘뤼아르 세 사람은 무심한 눈빛으로 폭력의 광경을 바라본다. 에른스트는 도발적으로 종교의 금기를 우롱한다. 그러면서 종교적 금기 속에 감추어진 폭력성을 보여준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행위는 언뜻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연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인간이기도 하고 또 일상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상 폭력성을 두려워한다. 살풍경한 현실, 이해 불가능한 인물들의 태도를 보면서 관객은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비 온 뒤의 유럽 II』는 1차 대전이 휩쓸어 황폐해진 유럽을 초현실주의적인 연출로 극대화한 작품이다. 에른스트는 군 복무 중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유럽을 목격하면서 ‘반 문명, 반이성’을 표방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 사정은 이해되고 남음 직하다. 에른스트에게 전쟁은 인간 내면의 증오와 파괴성에서 시작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광란의 현실을 그리면서 인간 무의식의 지층 속에 새겨진 폭력성을 더듬었다.

 

에른스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게 될 때 화가의 생명은 끝”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에른스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굳이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정답에 가까운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상한 불길함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만 즐기면 된다. 이 불길한 환영을 보라, 그리고 긴장하라. 초현실주의 그림이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순간, 그림의 생명은 끝이다.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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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0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문예사조에 밝으시네요 ^^!: 덕분에 해설이 곁든 명화 감상 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9-09 17:00   좋아요 2 | URL
그림 해설은 책에 있는 내용을 기본적으로 참고하고요, 그림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입니다. ^^;;

yureka01 2016-09-0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서도 현실의 은유..이런게 초현실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너무 직설적인 경우 정치적인 박해가 염려될때 써먹는 고단수의 기법같은거..^^.

cyrus 2016-09-09 17:44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자 대부분은 좌파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마그리트는 벨기에 공산당원이었습니다. 달리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소재로 초현실적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

yureka01 2016-09-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주장을 직설적인 회화로 표현하기보다는 역시 예술은 한번 비틀어야 제맛인가 봐요..

cyrus 2016-09-09 17:5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화가의 메시지를 숨긴 그림을 좋아해요. 이런 그림은 관객의 호기심을 유도해요. 그리고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