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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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비군 훈련을 받았다. 올해가 6년 차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군복만 입으면 왜 이렇게 힘이 빠지는 걸까?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나무 그늘서 쉬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 있는 예비군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헝클어진 앞머리를 손으로 정리한 다음 바로 셀카를 찍었다. 훈련이 아닌 쉬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된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장에 와서 셀카를 찍는 건 이해하지 못하겠다. 분명 SNS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예비군 훈련을 맨 처음 받았을 때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쉬는 시간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나와 함께 훈련 받는 친구가 찍은 셀카를 봤다. 그 날 내가 본 예비군들의 셀카 사진은 열 장 넘었다. 예비군 셀카의 기본은 군복 앞가슴에 부착된 전역 마크가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찍은 셀카를 SNS에 올리면 대부분은 ‘지금 예비군 훈련 중’이라는 글로 시작한다. 그다음에 ‘덥다, 배고프다, 얼른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식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이 남자들, 왜 이러는 걸까?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나? 남자들은 군대에 다시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군복만 입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자신들이 떳떳한 예비군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전역 마크와 소속 부대 마크는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를 상징하는 기호다. ‘나, 군대 다녀온 남자야!’ 셀카 사진을 통해서 군필자임을 공개한다. 예비군 교육장에 현역 군인들을 만나면 ‘말년 병장 코스프레’를 한다. 일단 예비역 군인들을 통솔하는 현역 군인의 계급을 살펴본다. 작대기 두 개 있는 일병이다. “선배님들, 일렬종대로 모여 다음 훈련장으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말년 병장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예비군들의 모습에 기가 죽은 건지 목소리가 작다. 그러자 예비군 한 사람이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짬밥 덜 먹은 놈이 우리에게 명령하잖아. 야! 너 군 생활 몇 개월 했냐?” 예비역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현역 군인에게 반말로 대한다.

 

대한민국 남자는 ‘군필자’와 ‘미필자’로 나뉜다. 남자라면 군대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대가 ‘국방의 의무’가 ‘남자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라는 진부한 말은 미필자나 사회복무요원(舊 공익근무요원)의 심리를 위축한다. 공익 출신 예비군은 소속 부대 마크가 없는 군복을 입는다. 어차피 전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부대 마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별한 얘깃거리가 없으면 자신들의 소속 부대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다들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공익 출신 예비군은 소속 부대 마크가 ‘현역의 상징’이 아닌 ‘남자의 상징’으로 여긴다.

 

 

 

 

 

 

 

 

예전에 북한이 군사 도발에 대한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던 시기에 있었던 황당한 일이다. 군필자들은 느닷없이 자신들의 군복을 꺼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들의 타임라인은 비장했다. ‘김정은 모가지 따러 갈 준비 완료’, ‘사격 실력 녹슬지 않았다. 지금도 국가를 위해서라면 총을 쏠 수 있다’ 식의 오글거리는 문구가 장식했다. 여기에 공익 출신 예비군이 ‘남자들만의 유행’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자신도 군복 인증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전쟁 나면 자신이 직접 나라를 지킬 테니 여자들은 안심하라는 식의 글을 올렸다. 그의 애국심에 감동한 지 타임라인의 ‘좋아요 수’가 천 개 넘었다. 그런데 그는 페이스북의 흔한 ‘관심종자’였다. 공익 출신 예비군이 현역 군필자로 속여서 사진을 올리는 게 문제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 그리고 ‘여자를 보호하는 용감한 마초’ 코스프레를 한 것이다. 오찬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티 나게’ 애국하는 남자다.

 

군복은 남자들의 동질성은 증가시킨다. 특히 예비군 훈련을 할 때나 북한의 도발이 높아지는 시기가 되면 남자들의 눈에는 옷장에 쳐박아둔 군복이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군복을 입은 남자는 ‘용감한 개인’으로 변신한다. 군복을 입은 남자는 여자를 ‘보호받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들만의 세계인 군대를 잘 모른다고 무시한다. 이런 태도를 보일수록 군복 입은 남자는 ‘강한 남자’처럼 행동한다. 예비군 훈련이 귀찮더라도 훈련장에 오면 셀카를 찍는다. 자신의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서. 군복 인증은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유치한 현상이다. 군복만 입는다고 해서 ‘애국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군복을 안 입은 여자들도 애국심이 있다. 남자들아,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을 거든 아낙네들의 활약상이 빛난 행주대첩의 승리를 잊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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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0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이젠 허세부릴 군복도 없는 퍠경의 남자가 된듯합니다...ㅎㅎㅎㅎㅎ
그러고 보면 한국남자들은 민방위 끝날때까지 불려 다녀야 하죠,,,,

cyrus 2016-09-01 18:11   좋아요 0 | URL
이제 여자들 앞에서 군대 영웅담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군대 얘기하는 남자들이 여자들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남자들이 ‘남자다움’을 드러내려고, 예비군 훈련 때만 입는 군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립니다. 군 입대하기 전에 저와 제 친구들은 최전방에 배치 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녀석들이 페이스북에 군복 사진을 찍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언급하지 않던 애국심이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왜 그럴까용? 니미, 이젠 부릴 게 없어서 군복부림이구나... ㅎㅎㅎ

cyrus 2016-09-01 18:15   좋아요 0 | URL
제가 존경하는 교수가 군복 사진을 올린 제자들의 사진을 보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다, 젊음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식으로 칭찬의 댓글을 남겼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교수님이 제자들의 허세에 깜빡 속으셨어요. 만약 제가 이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으면 페북 친구인 남자들한테 까였을 겁니다. 니가 뭔데 자신들 애국심을 가짜로 취급하냐고요, 심하면 ‘너 좌빨이지?’ 소리까지 들었을 거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