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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조선잔혹사 ㅣ 사탐(사회 탐사) 2
허환주 지음 / 후마니타스 / 2016년 5월
평점 :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다. ‘안전제일’ 표지판은 안전을 주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공통기호다. 그렇지만 ‘사람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내세운 안전제일주의는 생산제일주의 앞에서는 무용하다. 조선소들이 생산제일주의에 집착, 안전을 무시하고 작업을 강요해 산업재해가 급증하고 있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 드리워진 산업재해, 그 죽음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어지지 않았다.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는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조선소에 일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바짝 쫓아다녔다. 그 그림자를 붙잡을 수 없었지만, 하청노동자들이 어떻게 조용히 죽음 속으로 사라졌는지 낱낱이 파헤쳤다. 《현대조선잔혹사》는 ‘세계 1위 조선소’라는 허명에 숨겨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담아낸 르포다.
조선소 산재 사고 희생자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다. 하청노동자는 원청업체와 하청계약을 맺은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를 일컫는다. 기업이나 회사는 그때그때 고용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하청노동자들을 선호한다. 이러한 사업주의 욕심이 하청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몰아넣는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니 4대 보험과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권리는 남의 얘기다.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가 회피하는 위험한 작업을 맡고 있다. 급증하는 일감을 처리하기 위한 무리한 조업일정 강행으로 인명 사고가 일어난다. 하청노동자들을 옥죄는 것은 산업재해에 대한 공포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칙적으로 원청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산재 건수를 많아지면 행정적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원청은 산재가 발생하면 그 노동자가 소속된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끊어버린다. 하청업체는 하청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더라도 쉬쉬한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업체에 의해 철저하게 법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안전보다는 당장의 경비 절감을 위해 동원되는 각종 편법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부실한 안전설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일수록 전혀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투입하는 하청업체의 구조적 문제점은 죽음의 그림자를 숙성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세워 산재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자신들의 처지를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안전 불감증에 의한 단순한 사망사고로 보는 조선소의 입장이었다. 안전 교육을 담당하는 원청업체가 노동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고작 ‘정신 바짝 차리면서 일하라’고 말할 뿐이다. 사업주는 무재해 명예를 위하여 노동자들의 부상과 사망을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사업주 지정 병원은 그들의 조치에 순순히 동조한다. 사람 목숨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업주와 병원의 은밀한 결탁이 노동자들을 두 번 울린다.
지금도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조건으로 작업하면서도 산업안전에 대한 대책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회사 측 관계자들은 사고원인과 책임문제를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현대중공업 현장에는 근로기준법은 남의 나라 법이다. 자산과 소득뿐 아니라 위험까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위험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매해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결코 흘려들을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개미처럼 일하다가 허무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의 비보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분석한 기사도 또는 그 사고의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조선소 산업재해 문제를 폭로하고, 규탄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것이 ‘극한직업’이라서 너무나 많이 다치고, 죽는 현상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조선소 담장 안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고에 굳게 입을 다무는 현대중공업과 정규직 노조의 반응보다 더 심각하다.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빨리 잊히기를 원하는 현대중공업을 옹호하는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안전제일’ 표지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선소에 있는 안전제일 표지판은 ‘안전을 제 일’처럼 여기는 냉정한 작업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을 때 회사는 ‘자사의 안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회사가 많은 사회에 노동자들의 진지한 분노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