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속어 중에 ‘세호야, 또 속냐!’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속아서 당한 일을 또 다시 당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줄여서 ‘세또속’이라고도 한다. ‘세또속’의 유래에 관한 설명은 ‘나무위키’ 링크로 대체한다. (링크: '세호야 또 속냐' 나무위키 항목)

 

 

 

 

 

 

 

 

 

이와 관련된 바리에이션이 많다. ‘구라야, 또 속냐!’, ‘중일아, 또 속냐!’ 등이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책의 날’ 질문 이벤트 관련 글을 작성하면서 독서 습관을 한 번 되돌아봤다. 읽다가 포기한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한 번이라도 다 읽으면 된다. 다시 읽을 기회는 얼마든지 많다. 그렇지만 그 기회를 놓치거나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읽고 싶은 책에 눈길을 주면 끝까지 다 읽어내는 집중력이 떨어진다. 특히 2권 이상 책일 경우, 완독 실패 확률이 높다. 작년에 완독 성공률이 낮은 독서 습관을 자조적으로 비유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2권 계왕권’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시리즈로 된 책 2권을 끝까지 다 읽지 못하는 저질 집중력을 의미한다.

 

‘2권 계왕권’의 전형적인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은 두 권으로 되어 있다.

 

(2) 일단 시작은 좋다. 1권을 열심히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3) 1권 150~200쪽까지 읽었다. 여기서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슬슬 잠이 온다. 잠시 책을 덮고, 스마트폰으로 알라딘 어플에 들어간다. 신간도서나 온라인 중고샵, 알라딘 서점에 있는 책들을 확인한다. 사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4) 《장미의 이름》 1권을 계속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책을 읽고 있다.

 

(5) 다른 책으로부터의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장미의 이름》 1권을 다 읽었다. 소설의 절반이 남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6) 그리고 다른 책을 읽는다. 《장미의 이름》 2권에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예 포기한다. 완독 도전은 다음으로 기약한다.

 

(7)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뒤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기로 결심한다. 어디서부터 읽어야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무한 루프가 반복되는 패턴을 잦아지면, 완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른 책에 관심을 주지 않고, 시리즈 책 완독에 집중하면 길어야 일주일 내에 다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무한 루프를 빠져나오지 못하면, 몇 달 혹은 일 년이 지나서야 완독이 달성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장미의 이름》한 번 완독하는 데 걸린 시간이 6년이나 걸렸다. 《장미의 이름》을 2008년에 교보문고에서 샀다. 군 입대 한 달 전에 책을 샀는데, 여기서부터 6년 동안 이어지게 될 무한 루프가 시작되었다. 1권 반 정도 읽은 상태에서 훈련소에 들어갔다. 전역할 때까지 《장미의 이름》을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 전역하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지만, 역시나 2권을 펼치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 과정만 수차례나 반복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무한 루프에 걸리기 쉽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반납한다. 시간이 지나서 같은 책을 또 빌린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완독에 실패한다. 그리고 책을 반납한다. 생각나면 또 책을 빌려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중간에 읽어야 할 쪽수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쪽수를 알아도 읽었던 부분의 내용이나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귀찮지만, 처음부터 읽을 수밖에 없다. 이래서 한 번 읽은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하는 법이다.

 

주말에 《아라비안나이트》를 1권부터 다시 읽었다. 작년에 읽다가 만 책이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완독하지 못한 책에 오래 매달리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 자신의 안일한 성격 탓에 다 읽지 못한 책에 매번 집착한다. 어리석은 나에게 이 말 한마디 해주고 싶다.

 

‘사이러스야, 또 읽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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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6 20:33   좋아요 0 | URL
님이 읽은 책은 제가 읽어볼 생각도 안한 것들입니다. 《돈의 철학》 그 책 엄청 두껍잖아요. ㅎㅎㅎ

표맥(漂麥) 2016-05-1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그런가 싶었는데... 글을 읽으면서 꼭 제 모습 같아서 혼자 킥킥~ 거립니다.
1권만 읽고 다 읽은 양 하는 책, 그러다가 1권부터 다시 읽어야 할 책 더러 있습니다.^^

cyrus 2016-05-16 20:34   좋아요 0 | URL
중간부터 읽으면 되는데, 그러면 다 읽은 것 같지 않더라고요. ^^

syo 2016-05-16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자란 제 친구놈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를 도서관에서 빌리고 못 읽고 반납, 분개하여 다시 빌리고 또 못 읽고 반납, 다시 분개하여......를 5번 반복했으나 처절하게 패배했습니다. 시리즈물도 아니고 천 단위 책도 아닌데 말이죠.

그 친구를 지금은 `오패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cyrus 2016-05-16 20:36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다섯 번 빌렸으나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아요. 《원더풀 사이언스》 책이 궁금해서 방금 확인해봤습니다. 400쪽 넘네요. 사실 저도 400쪽 이상 책을 끝까지 읽는 게 힘들 때가 있습니다. ㅎㅎㅎ

찔레꽃 2016-05-1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 ^

cyrus 2016-05-17 12:54   좋아요 0 | URL
책 읽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이 있을 거예요. ^^

그리고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며칠 전에 찔레꽃님이 언급하신 `그 책`이 그것인 줄 몰랐습니다. ^^;;

찔레꽃 2016-05-17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잉, 서운해라. ^ ^

아, 지난 번 님께서 페이퍼 작성하신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를 읽고 냉큼 책을 샀는데, 딱 제 취향입니다.


cyrus 2016-05-17 15:36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

블랑코 2016-07-0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질 집중력, 제 얘기네요. 그래서 요즘 아는 분들과 함께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간 정해놓고 읽고, 다 읽으면 스포 포함해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안 읽을 수가 없더라고요. 혼자 읽었다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책들 완독해서 기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