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기 위한 유일한 도구는 내 손에 쥔 펜이었다.”

 

발자크는 펜 하나로 ‘문학의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산더미처럼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하는 ‘생계형 소설가’였다. 출판업, 인쇄업 등 사업에 손을 대다가 모두 실패하고 많은 빚을 떠안았다. 발자크가 글을 쓰던 집(현재는 발자크 기념관이 되었다)에는 앞문과 뒷문이 있다.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오면, 발자크는 뒷문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발자크는 커피를 즐겨 마셨고,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렸다. 귀족이 되고 싶어서 자신의 이름에 귀족 칭호(‘de’)를 붙여 지금의 ‘오노레 드 발자크’가 되었다. 외출할 때는 커다란 보석이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낭비벽과 여성 편력이 심한 발자크는 누군가를 비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언론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었다. 그래도 발자크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정말 남들보다 열심히 썼다. 오후 4시에 잠자리에 들고 자정에 일어나 매일 14시간 이상을 글쓰기에 매달렸다. 발자크는 애초에 글을 쓰지 않았으면서도 출판사에 미리 출판 계약을 맺었다. 너무나 많은 출판 계약을 맺는 바람에 계약을 어기는 일이 많았지만, 발자크는 빚을 갚기 위해서 출판 계약을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20년간 쓴 소설이 100편을 넘었는데, 빚이 그를 ‘다작하는 기계’로 변하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발자크는 자신이 만든 소설들을 묶어 만든 <인간 희극>을 구상할 수 있었다.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 풍속사의 전모를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 대부분에 ‘인간 희극’이라는 총체적인 제목을 붙여 사회사적 구상 아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야말로 <인간 희극>은 19세기 프랑스 풍속사를 다룬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발자크는 <인간 희극>을 총 세 가지 주제로 분류했고, 장편과 단편이 포함된 총 137편의 작품을 쓸 생각이었다. 그중에 ‘1부 풍속 연구’는 여섯 개의 소주제로 나뉘며 <인간 희극> 항목 중에서 제일 많은 작품이 포함되었다.

 

 

제1부 : 풍속 연구 (사생활 풍경, 지방 생활 풍경, 파리 생활 풍경, 정치 생활 풍경, 군인 생활 풍경, 전원생활 풍경)

 

제2부: 철학 연구

 

제3부: 분석 연구

 

 

<인간 희극>에 압축되는 세상은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허위와 허영으로 가득한 곳이다. 도시 경쟁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골 출신 젊은이, 물질적 어려움이나 출세에 대한 압박으로 사회나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탕진하는 이들이 <인간 희극>의 주인공들이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2천여 명이다. 여기에 재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총 573명이나 된다.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 라스티냐크는 25번이나 재등장한다. 이처럼 발자크는 동일인물을 다른 소설에서 재등장시켜 독자들이 서서히 특정 인물에 대한 인상을 파악하게 했다.

 

한창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발자크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원대한 기획은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에 기획했던 137편의 작품 목록 중에 완성된 작품만 해도 총 91편이다. 국내에 번역된 발자크의 <인간 희극> 작품은 20여 편에 불과하다. 발자크가 ‘<인간 희극>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희극>의 전체적인 면모를 비중 있게 소개하는 책은 많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발자크 번역본들은 <인간 희극>의 구성방식만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 희극>의 작품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 피에르 바르베리스의 《발자크》(화다, 1989)가 있다. 여기에 소개할 <인간 희극> 작품 목록은 바르베리스의 책을 참고했다.

 

앞으로도 발자크 관련 책을 더 찾아보면서 궁금하거나 미흡한 점을 보완할 것이다. 발자크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참고도서 또는 국내에 번역되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발자크의 작품을 알고 있다면, 여기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다. 

 

 

 

 

 

 

 

 

 

 

 

 

 

 

 

 

 

※ <인간 희극>의 총 작품 수와 완성된 작품 수가 출판사 해설마다 차이가 있다. 《나귀 가죽》(문학동네, 2009)의 역자는 <인간 희극>이 총 89편의 작품만 남겼다고 소개했다. 《고리오 영감 / 절대의 탐구》(동서문화사, 2012) 해설에서는 <인간 희극>의 수록 작품을 125편이라고 잘못 소개했다. ‘총 137편 기획, 완성 작품 91편’이라고 언급한 책은 《프랑스 근대 문학 - 볼테르, 위고, 발자크》(웅진지식하우스, 2010)와 《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들녘, 2003)이다.

 

 

 

 

※ 작성 공간이 부족하여 작품 목록을 따로 페이퍼로 작성하여, 먼댓글로 연결했습니다.

 

 

 

 


댓글(6) 먼댓글(1) 좋아요(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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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자크 <인간 희극> 작품 목록
    from 冊性愛子 2015-08-06 21:20 
    ※ 굵은 글씨체로 된 것은 국내에 번역된 작품 9. <인생의 첫출발> 문학과지성사, 200813. <사랑과 행복의 비밀> 큰나무, 200028. <무신론자의 미사> 펀앤런, 1996 (절판) 34. <유르슐르 미루에> 만남, 199747. <골동품 진열실> 국학자료원, 1999 (절판)49. <잃어버린 환상> 서울대학교출판부, 2012 51. <랑제
 
 
지금행복하자 2015-08-06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귀가죽을 읽다가 도대체 읽히지 않아 중도 포기한 저에게는 비운의 작가네요~~
츠바이크의 발자크평전도 궁금해요~
카사노바 읽고 있거든요~~

cyrus 2015-08-06 21:32   좋아요 0 | URL
행복하자님의 심정을 저도 이해합니다. 발자크는 인물과 장소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듯이 묘사하는 편이라서 문장이 길어요. 장황하게 묘사하는 문장을 읽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져요. 발자크 평전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발자크의 삶을 먼저 알고 나서 소설을 읽어보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Dora 2015-08-0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귀가죽이 프로이트가 임종직전 읽었던 작품 아닌가요?

cyrus 2015-08-07 17: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최근에 <나귀 가죽>을 읽다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stella.K 2015-08-0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지금도 의문인게 발자크가 무슨 영감이 그리도 많아
하루 14시간씩 글을 썼냐는 거야.
보통 작가들이 작품 하나를 쓰려면 여러 가지 자료도 모으고
조사도 하고 그럴텐데 쓰는데만도 꼬박 14시간이었다면 그럴 시간은
없었을게 아닌가 싶어. 그러고도 책을 냈다는 게 놀랍다는 거지.

한때 츠바이크를 좋아해서 몇 권 읽었는데 내가 발자크 평전도 읽었더라구.
물론 기억은 당연히 안 나고...ㅋㅋ


cyrus 2015-08-07 18:00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기에는 발자크는 글 쓰는 실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문장이 길고, 투박해서 그냥 교정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발자크가 대단한 게 뭐냐면 특정 인물이나 장소를 세밀하게 관찰하듯이 묘사했다는 점이에요. 발자크가 무명작가 시절에는 거의 백수처럼 지냈다고 해요.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거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 쓰는 일 밖에 없을 거예요. 역시 폴 오스터의 말처럼 정말 고독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야말로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쓸 땐 정말 확실하게 끝장 보는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