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재 클래식스’ 14번째 시리즈가 출간된다. 내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인터넷 교보문고에,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전국 교보문고 매장에 판매된다. 올해 1월에 13번째 시리즈로 《장자》, 《열자》, 《바가바드 기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되었고, 이번 14번째 시리즈로 나올 책은 《산해경》, 《박물지》, 《춘추좌전 1, 2》다.
《산해경》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고대 동양의 백과사전이다.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후에 나온 것으로 추정하면 이 책을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하나라 우왕 또는 백익이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리, 역사, 문학, 동물, 의학 등을 포괄하는 방대한 문헌을 담고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책에 나오는 내용 하나를 예를 들어보자면, 생김새가 말의 몸에 새의 날개, 사람의 얼굴에 뱀의 꼬리를 한 짐승이 소개된다. 이 짐승은 사람을 안아 들기를 좋아하며 이름을 숙호(孰湖)라고 한다. 《산해경》은 이미지를 중심에 맞춘 텍스트다. 괴이한 짐승들을 묘사한 그림이 실려 있는데 이번에 나올 《박물지》에도 도판을 수록했다.
사마천은 《산해경》을 괴상한 기서(奇書)라고 말하면서 감히 손댈 수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진시황제는 이 책이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깊숙이 감추고 열람하지 못하게 했다. 신화에 투영된 중국고대 문화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最高)의 문헌이다.《산해경》은 총 23권이었으나 이를 전한 말기 사람 유흠 또는 진나라 사람 곽박이 권수를 줄여 주석을 붙이고 재정리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도 몇 가지 번역서들이 나와 있고, 가장 널리 알려진 판본은 정재서 교수가 옮긴 것이다.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에 나올 《산해경》은 연변인민출판사 편집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장수철이 옮겼다. 장수철 역의 《산해경》은 2005년에 현암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었다. 10년 만에 재출간한 셈이다.
고대 동양의 상상력 백과사전이 《산해경》이라면, 서양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가 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국내에 번역된 적이 없는데 ‘박물지’라는 제목만 보면 《산해경》과 짝을 맞추어 나온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올래 클래식스의《박물지》는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산문집 제목이다. 르나르는 어린이용 문학전집 단골 작품인 《홍당무》를 쓴 작가이다. 《홍당무》는 아이용, 어른용 등등 해서 수십 종의 버전이 출판되어 르나르의 유일한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물지》도 초판 출간 당시 큰 인기를 얻은 명작이다. 《박물지》는 르나르가 온갖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하면서 기록한 짤막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박물지》를 잘 모르거나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이 문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박물지》중 뱀에 관한 내용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다. 번역의 차이가 있겠지만, 르나르가 보는 뱀은 이렇다.
너무 길다 (원문: Trop long)
달랑 저 한마디다. 개미를 표현한 르나르의 문장을 보자. 땅바닥에 기어가는 개미의 행렬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한 마리 한 마리가 3이란 숫자를 닮았다.
참 많기도 하다.
얼마나 되나?
3, 3, 3, 3, 3, 3, 3. 3, 3 .....
끝이 없다.
('나태주 명시여행 102'에서 인용)
이처럼 르나르의 문장은 시적인 정의와 재치 있는 유머가 적절하게 섞인 재미있는 산문집이다. 여기에 르나르가 직접 그린 스케치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박물지》는 이미 《뱀 너무 길다》(바다출판사, 1997 / 품절),《자연의 아이들》(문학동네, 2008)에서 출간된 적이 있으며 동서문화사는 《박물지》를 《홍당무》와 《일기》 그리고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 3편까지 포함하여 출간했다. 르나르의 작품들을 한 권에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춘추좌전》은 2백 년 넘는 춘추열국의 역사가 기록된 책이다. 춘추열국의 사회현실과 그 당시 활동했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작자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있지만, 공자가 지은 《춘추》에 좌구명이 해설하는 방식으로 썼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춘추좌전》은 원래 ‘좌씨춘추’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 전하는 춘추의 해석서는 '춘추좌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의 이른바 '춘추 3전'이다. 이 가운데 《춘추좌전》은 공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책으로 조선 시대 왕과 선비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춘추좌전》의 역자는 올재 클래식스 13번째 시리즈로 나온 《장자》를 번역한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 소장이다. 올재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2006년, 한길그레이트북스로 세 권짜리로 나온 《춘추좌전》의 기존 번역을 바로 잡은 판본이라고 한다. 한길사의 《춘추좌전》 세 권을 모두 합한 가격에 알라딘 10% 할인을 적용하면 7만 2000원이다. 적지 않은 《춘추좌전》의 분량을 두 권으로 축소하여 5800원으로 구입할 수 있다. 참고로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 한 권당 가격은 2900원이다. 적은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활자가 작은 것이 단점이다. 작은 활자를 장시간 읽으면 눈이 쉽게 피로할 수 있다.
너무나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만드는 올재 클래식스 출판사의 행보에 대해 타 출판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안 그래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 책 사는 이가 점점 줄어지는 판국에 일부 출판업자들은 싼 가격이라는 장점을 내세우는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를 못마땅해 할 수 있다. 교보문고에 판매되자마자 하루에 몇 백 부 이상은 팔린다니, 출판사들의 시기와 우려(가 있다면)를 어느 정도 이해된다. 그렇지만, 올재 클래식스는 비영리 사단법인체로 독자의 후원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연간 기부금 및 모금액수와 활용실적을 공개한다. 시리즈 한 종당 4000권을 찍어 6개월 동안 한정 판매되며 1000권은 시골 공공도서관, 공부방, 군 부대 등에 기증한다. 독자도 자신이 구입한 책을 기부할 수 있다. 그래서 수준 높은 고전작품과 역자를 선정하고, 공익에 초점을 맞춘 올재의 출판 사업을 긍정적으로 본다.
※ 사진은 올재 클래식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올재 클래식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공식 홈페이지(http://www.olje.or.kr/) 에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