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라딘 중고서점(대구)에서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민음사, 2008)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하던 공부를 멈추고 바로 그곳으로 갔다. 이런 상황이 오면 극심한 불안 증세가 찾아온다. 중고서점으로 향하는 버스가 밉게 느껴진다. 내가 타는 버스가 빨강 신호등에 자주 걸린다는 생각도 한다. 손님이 내가 찜을 한 책을 먼저 발견하고 사갈까 봐 걱정한다. 사실 대구 중고서점에 들뢰즈의 책이 판매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사야 할 이유가 있었다. 《감각의 논리》는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해석한 책이므로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텍스트다. 최근에 베이컨의 인터뷰가 실린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디자인하우스, 2015) 발간 소식에 맞춰 베이컨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 각종 도서를 읽고 있어서 들뢰즈의 책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손님이 중고서점에 판지 얼마 안 된 책들이 꽂힌 지점은 책을 사려는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핫 코너이다. 이렇다 보니 내가 사고 싶은 책은 손님들의 눈에 발견되기 쉽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허탕을 친다. 서점에 도착해서 사고 싶은 책을 찾지 못했다면 그 책은 이미 다른 사람이 산 것이다. 《감각의 논리》를 찾을 때도 그랬다. 《감각의 논리》가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에 푸른 색깔을 띤 책이 보이지 않았다. 인문학과 예술 분야의 책들이 꽂힌 서가에 여러 번 살펴봐도 《감각의 논리》를 찾지 못했다. 보통 책 한 권 찾으면 서점 전체를 한 시간 남짓 둘러본다. 책성애자인 탓에 서점이나 책방에 가면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길 잃은 아이처럼 이리저리 서점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그 책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걸 확인했다. 차라리 그 책이 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속 시원하게 포기했을 텐데. 손님의 장바구니 안에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아쉽고,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두 눈은 자꾸 손님의 장바구니에만 향한다. 그날따라 그 손님이 고른 책들이 부러웠다. 눈으로 어림잡아 세어보니 일곱 권의 책을 골랐다.《감각의 논리》뿐만 아니라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책세상, 2006)도 있었다. 흠,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손님이 부러웠다. 아쉬움을 잊기 위해 발길을 돌려 대구시청 쪽에 위치한 책방으로 향했다.

 

하루에 중고서점과 책방 한두 군데를 집중적으로 둘러본다면 적어도 좋은 책 한 권은 발견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힐만한 가치가 있고, 품절 또는 절판된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찾고 싶은 책 1순위는 신간이 아니라 대형서점에서도 구하기 힘든 오래된 책이다.

 

 

 

 

 

 

 

 

 

 

 

 

 

 

 

 

책방에 가면 중고서점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 책방도 자세히 살펴보면 읽어볼 만한 무궁무진한 책들이 숨어 있다. 가끔 이런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면 재출간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어제 책방에서 산 베아트리스 퐁타넬의 《치장의 역사》(김영사, 2004 / 절판)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책이다. 책의 부제는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욕망, 그 매혹의 세계’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류 아니 여성들의 화려한 풍속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들이 어떻게 외모를 꾸며왔는지 시대별로 내력을 기술했다. 

 

 

 

 

 

 

책방에서 1장만 읽었는데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성들의 화장 기술법과 몸매 관리법, 각종 미용 도구 등을 살펴보면 아름다워지려는 보편적 욕망이 끊임없이 역사 속에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열망은 한 사회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얼굴을 화려하게 돋보이는 화장 뒤에는 지금으로선 상상을 뛰어넘는 여성들의 말 못한 노고가 있다. 15~16세기 유럽 여성들은 수은 화장품을 사용했다. 당시 연금술에서는 수은이 금 다음으로 고귀한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화장 유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예전에 금 조각이 들어간 고급 화장품이나 금 조각을 얼굴에 바라는 미용법이 유행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금속 성분이 피부를 보기 좋게 만든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지만, 그래도 수은과 금 둘 중의 하나를 얼굴에 바르라면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수은을 얼굴에 바른다는 것은 얼굴에 독성 물질을 바르는 것과 같다. 유럽 여성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는 이보다 더 심하다. 결핵 환자처럼 수척한 몸매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성들은 조금이라도 더 창백해 보이려고 벨라돈나 풀이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마약과 동공을 확장하는 아트로핀을 복용했다. (최근 해외에 판매되는 영유아 유기농 죽 제품에서 아트로핀 성분이 검출되어 독일, 영국 등지에서 해당 제품을 회수된 적이 있다. 아트로핀을 과다 복용하면 신경계 마비, 환각, 체온 하강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인터넷 직구로 주문하지 마시길) 지금까지 소개한 것 이상으로 더 엽기적인 화장법과 미용법이 나온다. 지금은 건강 친화적인 화장법이 나오고 있지만, 시대만 다를 뿐이지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책의 특징은 치장의 역사를 문장으로만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대 유행했던 화장법이나 여성들이 외모를 가꾸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장식하고 있어서 보는 눈이 즐겁다. 글과 그림(서양화)이 적절하게 섞인 미시사 관련 책은 세계사를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와 유사한 책을 고르면 슈테만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2 / 품절)과 파스칼 보나푸의《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이봄, 2013)이 있다. 특히 파스칼 보나푸의 책은 《치장의 역사》와 함께 읽어보면 좋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단지 여성들만 전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싶었던 이유는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소유하고 싶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치장에만 국한된 주제를 벗어나 인류가 추구하던 미적 열망과 그 변화 과정을 더 자세하게 알려면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열린책들, 2005)를 참고하면 좋다. 서양이 아닌 한국의 미용문화사를 소괘한 책으로 김남일의《한방화장품의 문화사》(들녘, 2013)가 있다.

 

 

 

 

 

 

 

 

 

 

 

 

 

 

 

《치장의 역사》의 저자 베아트리스 퐁타넬은 여성 문화에 관한 책들을 펴냈는데 그밖에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이봄, 2012)이 있다. 이 책도 《치장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부엌, 식당, 침실 등을 묘사한 그림을 곁들여 여성의 삶에 늘 함께했던 실내 장식의 변천사를 조명한다. 판형이 커서 마치 화보집처럼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 책도 품절되었다. 나온 지 고작 3년이 되었는데 품절되었다니. 요즘 절판된 책을 타 출판사가 판권을 얻어 새 표지로 재출간하는 추세이다. 《치장의 역사》도 여성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펴내는 이봄출판사에서 새롭게 단장하여 나왔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재판과 같이 나오면 더 좋고. 그렇게 된다면 《치장의 역사》는 일단 제목부터 바꿔야 한다. ‘화장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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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1-30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한 책 다 재밌어 보이는데_ 외모가 예쁜 여성보다는 역시 내면이 아름다운 여성이 갑_ 그나저나 전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습니다. 뚱땡이가 되어서 완벽한 절구통 아줌마야 ㅠㅠ 읽고 자극 받고프네요.

cyrus 2015-01-31 09:03   좋아요 1 | URL
다이어트하신다는 말, 작년 이맘 때쯤에도 들은 것 같은데요. ㅎㅎㅎ

blanca 2015-01-30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완전 흥미로운데요. 왜 이 좋은 책이 절판일까, 아쉽네요.

cyrus 2015-01-31 09:05   좋아요 1 | URL
10년 전에 나온 책인데다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절판된 것 같습니다.

만병통치약 2015-01-30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들뢰즈와 가타리 책 본다고 까불었는데 요즘 다시 보니 뭔 정신에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ㅋㅋ 글자만 본것 같아요

cyrus 2015-01-31 09:09   좋아요 1 | URL
저는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해서 <감각의 논리>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들뢰즈의 책은 직접 사서 읽고 싶더라고요. 저도 이 책의 절반을 이해 못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