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기행문의 글쓴이는 여행에서 얻는, 길 위에서 사유하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우리는 여행에서 우리가 사는 땅과 다른 구조와 느낌들을 받는다. 그리고 그 안을 여행하며 우리와 다른 부분을 인식하고 사유한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샘터, 2006년)은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 가서 석가모니의 행적을 따라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깨달은 바를 적고 있다. 스님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 속에 꾸밈없는 매력으로 이루어진 인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사진만으로 인도의 맨얼굴을 본다고 할 수 없다. 책 속의 사진들은 25년 전의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책은 개정 3판까지 나왔다. 초판이 1991년에 나왔는데 스님은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인도를 여행했다. 2003년에 나온 개정 2판은 사진작가 김홍희가 찍은 사진이 실렸다. 그러다가 개정 3판을 통해 스님이 1989년 인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부활했다.

 

 

 

 

스님은 인도의 4대 성지 룸비니, 부다가야, 녹야원, 쿠시나가를 순례한다. 또 불교 포교의 중심지였던 왕사성, 최초의 불교 사원 죽림정사 등에도 발을 디딘다. 스님의 여정을 눈으로 따라 가다보면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에의 반성과 성찰이 가슴깊이 다가온다.

 

 

 

 

개정 3판 『인도 기행』은 10쇄를 끝으로 절판되었다. 스님의 49재가 끝나는 날인 2010년 4월 28일까지만 새로운 인지를 발급했고, 7월 30일까지만 스님의 책들이 서점에 보급되었다. 이듬해 1월 1일부터 스님의 책들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며칠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운이 좋게 산 『인도 기행』은 마지막 쇄로 나온 책 중 한 권이다.

 

스님의 책들이 모두 절판 결정이 되자마자 책을 사재기하는 독자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중고책 시장에 정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스님의 유언은 우리 중생들을 시험하게 만드는 어려운 화두로 남아 있다. 나처럼 스님의 뜻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책방이나 중고서점에 스님의 책을 발견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 검색하면 법정 스님의 책이 거래되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중고가격은 안정되었지만, 『무소유』나 불교 관련 책들은 여전히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 상태다.

 

최근에 『무소유』와 스님이 쓴 다른 책을 묶어서 고가로 파는 방식도 보인다. 『인도 기행』은 『무소유』에 비하면 중고책 시장에 쉽게 볼 수 있는 책이라서 금액에 대한 경제적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다. 4년 전보다 스님의 책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 있는 만큼, 판매자는 어떻게든 책을 팔아 보려고 희귀상품인 『무소유』를 끼워 팔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허니버터칩을 다른 과자 또는 농산물, 술에 끼워 파는 인질마케팅이 생각난다. 『무소유』를 사기 위해 스님의 또 다른 책도 사야 한다. 비록 정가를 넘는 가격이지만, 『무소유』한 권가격에 비하면 적다. 너무나 비싼 ‘1+1’ 상품이다. 과연 당신이 『무소유』를 꼭 사고 싶다면, 기꺼이 구매할 의향이 있는가. 무척 쉽지 않은 결정이다. 아니, 그런 가격으로 책을 산다는 것은 구매자 입장에서는 손해다. 『무소유』에 딸려 파는 스님의 책을 이미 구입한 독자라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똑같은 책을 또 사게 되는 어리석은 구매를 하지 않을 것이다.

    

스님의 유지를 어기면서 스님의 책을 눈에 쌍심지 켜듯 찾는 속물적인 내가 중고시장의 상황을 비판한다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가 나무라는 꼴이다. 나는 김홍희 사진작가의 사진이 있는 『인도 기행』 개정 2판이 책방이나 중고서점에 발견된다면 살 생각이다. 이제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 물적 대상을 자꾸 가지려고 하는, 이 못된 소유욕을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스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기 위해서 부족한 필력으로 알리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겨본다. 그런데 글만 쓰면 뭐 하나. 진드기같이 내 몸에 달라붙은 탐욕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떼어내지 못해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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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2-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좋은 말씀이시네요. 그리고 절판된다는 이야기에 다소 놀랐습니다. 스님의 유지가 있었다니..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4-12-22 20:52   좋아요 0 | URL
네, 꼭 읽어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