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나온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론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영국 런던경제학교의 진화학자 올리버 커리는 앞으로 10만년 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나고 잘생긴 엘리트 집단과 키가 작고 괴물처럼 생긴 저능한 집단 2종류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커리는 배우자들이 짝을 찾는 습성과 운동량, 사회적 습관 등을 근거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처럼 지능이 높거나 혹은 더 높은 배우자를 찾으며, 본성을 추가하면 신체적으로도 건장한 사람을 배우자로 찾게 돼 결국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인간은 3000년쯤 되면 키가 190cm로 훌쩍 커지게 되고, 수명도 120살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오늘날 기준으로 치면 분명 거인 족이고 초장수족이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열림원, 2007년)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 거인 족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공허한 느낌을 주는 전망이다. 1000년 후, 나아가 10만년 후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한 예측. 말이 1000년이요 10만년이지, 오래 살아봐야 70∼80살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가히 측량불가의 세월이다. 다만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그것은 후손들의 모습이자 인간이라는 종(種)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인체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의학 등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다면 커리의 예견처럼 인류는 점점 더 신체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과 의학에 대한 과잉 의존으로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육체는 쇠약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이만 해도 찜찜한데 인류가 2종류로 양분되는 인간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내 후손이 장신에 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와 정반대가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웰스의 『타임머신』에 나오는 시간여행자라면 커리의 예견이 무척 궁금해서 당장 자신의 타임머신을 타고 10만년 후의 세계로 떠났을 것이다. 시간여행자는 802701년의 인류를 만났다. 그는 타임머신을 타기 전에는 8만년 후의 인류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모든 면에서 진보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본 8만년 후의 세계는 무척 암울했다. 인류는 엘로이와 몰록, 두 종족만 살고 있을 뿐이었다. 엘로이는 지상, 몰록은 지하에 사는 종족인데 전자를 부르주아, 후자를 프롤레타리아로 비유하기도 한다. 지능은 전 시대보다 떨어졌지만 순한 성격의 엘로이는 똑똑한 수준의 인간 집단이라면, 엘로이를 잡아먹는 난폭한 몰록은 저능한 인간 집단이다. 웰스는 이미 2종류로 나누어 발전된 인류의 모습과 그 시대를 묘사했다.
시간여행자는 몰록이 감춰 놓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번에는 더 먼 미래로 갔다. 그곳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도도 없고 달의 흔적도 없는데 일식이 일어나고, 세상은 침묵뿐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시간 여행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다.
웰스의 『타임머신』과 함께 언급되고 비교하는 작품이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필맥, 2008년)이다. 원제는 News from Nowhere, 우리말로 풀이하면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작품이지만, 유토피아 문학을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된다. 이 소설은 1891년에 발표되었다. 4년 뒤에 웰스가 『타임머신』을 발표했다. 『에코토피아 뉴스』의 부제는 '유토피아 로망스 중 평안의 시대'이다.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소설을 쓴 저자의 분신)은 사회주의자동맹 모임에서 미래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뒤 귀가한다. 윌리엄은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2050년대의 런던 템스 강 근처에서 일어난다. 이때부터 새로운 유토피아 세계를 경험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곳 사람들은 땀 흘리는 노동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육 제도도 없다.
"아이들은 여름에 종종 무리를 지어 숲에 와서, 보시다시피 텐트에서 함께 몇주일씩 놀며 보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장려하지요. 그들은 스스로 사는 법을 배우고, 야생의 생물들을 관찰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62쪽)
"보통 아이들은 15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두세 가지 이야기책을 읽는 것 외에는 많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일찍 책을 좋아하도록 권장하지 않습니다. (중략)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어른을 닮는 경향이 있고, 대부분의 주위 어른들이 건축, 도로 포장, 정원 가꾸기와 같은 일을 마음으로부터 즐겁게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67~68쪽)
미래의 런던은 기계가 가득한 차가운 금속의 세상이 아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목가적 세상이다. 모리스는 이 소설을 통해 자본과 기계에 종속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다. 모리스가 『에코토피아 뉴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회주의 세상은 민주적 사회주의에 가깝다. 미래의 런던은 자유와 자치가 인정되며 모트하우스라는 곳에서 공적인 문제를 토의하는 집회가 열린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아고라(agora)를 연상시킨다.
모리스의 진보적 사회주의는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한 웰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웰스는 이미 20살에 모리스의 집에 열린 사회주의자 모임에 참석했다. 모리스처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진보의 힘을 믿었고,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웰스는 모리스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타임머신』의 8만년 후의 세계는 『에코토피아 뉴스』에 나오는 미래의 런던이 너무 평화롭게 느낄 정도로 암울하다. 오히려 인류의 계급 갈등이 심화된 문명이 퇴보된 세계이다.
이러한 웰스의 미래 세계관은 1897년에 발표한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초록달, 2014년)에서도 보여준다. 22세기 런던을 묘사하는데 마천루가 늘어나고, 전기가 발달한 편리한 세상이다. 그 곳 사람들은 굶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며 빈부 격차가 심하다.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는 미래 도시에 사는 엘로이와 몰록을 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웰스는 모리스의 사회주의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이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는 사회주의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지 않았다. 그가 가입한 협회의 이름인 페이비언은 'Fabian'은 '점진적인', '신중한'이라는 형용사에서 유래되었다. 웰스는 점진적인 개혁을 믿었고,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원칙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다. 비록 초창기 페이비언 협회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여론이 점차적으로 늘어났지만, 웰스는 글쓰기를 통한 사회주의 전파를 포기하지 않았다.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한 애착은 『타임머신』이 나오고 다음 해에 발표한 단편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 힐은 사회주의자이자 대학 생물학과 소속 학생이다. 그는 생물학 실험실에서 자신의 동료 학생들에게 책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그 책이 바로 모리스가 쓴 것이다. 단편에서는 책 제목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책이 『에코토피아 뉴스』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에코토피아 뉴스』의 주인공 모리스가 작가 윌리엄 모리스의 분신이라면,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의 주인공 힐은 한창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웰스의 분신이다.
웰스는 사회주의자로 살았지만, 인류 문명에 대한 비관론도 견지하고 있었다. 특히 두 차례 세계 대전을 목격한 이후부터 그의 비관론적 시각은 뚜렷해졌다. 젊은 시절에 웰스의 머리에 조그만 뿌리로 시작한 미래 비관론은 과학기술의 힘이 총동원된 두 번의 전쟁 기간을 지나면서 거대한 생각의 나무가 되었다. 미래 비관론의 뿌리가 이제 막 웰스의 두뇌 속로 뻗기 시작한 시기에 『타임머신』이 나왔다. 웰스가 습득한 과학 지식은 미래 비관론의 뿌리를 자라게 만드는 영영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