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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과 패턴 - 복잡한 세상을 읽는 단순한 규칙의 발견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시공사 / 2014년 8월
평점 :
“하나의 작은 불씨가 온 광야를 불태운다" (마오쩌둥)
도산 직전의 닛산 자동차를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만든 경영자 카를로스 곤의 경영철학은 명쾌하다. ‘아마추어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프로는 단순 명쾌하게 만든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도 과학의 목적이 무질서한 세상에서 의미 있는 단순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처럼 혼란하고 복잡한 세상 모습을 단순하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살기 편해질까. 이에 대한 답으로 마크 뷰캐넌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실은 단순한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전쟁, 지진, 산불 등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대형 재난들 사이에 ‘보편적 패턴’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지진의 경우 주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도 전 세계 지진학자들은 지각이 진동하기 전에 발생하는 사전 경고를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진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맨틀 위의 지각을 이루는 단층이 임계상태(Critical state)에 이르면 지진이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런 규칙성도 없을 것 같은 이런 지진현상에도 보편적 패턴이 존재한다. 지질학자 구텐베르크와 리히터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지진의 강도와 빈도를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그러자 모든 지진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지진의 에너지 방출이 두 배가 되면 발생 빈도는 4분의 1로 줄어드는 등 지진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지진은 더 드물게 일어났다. 전 세계의 지진 목록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흔히 우리는 어떤 큰 사건에는 그에 상응하는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이 격렬한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즉 임계상태는 별것 아닌 사소한 원인에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나 복잡한 시스템을 말한다. 이런 단순한 패턴은 규모와 빈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산불이나 주가의 오르내림, 상품의 가격 변동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견된다.
1988년 일어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산불 사례를 들어보자.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산불은 잡히는 듯싶더니 점점 번져서 150만 에이커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가 변동도 예외는 아니다. 1987년 상승세를 유지하던 미국의 주식시장이 어느 순간 하락하더니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자연 세계와 인류 역사는 그 본질적인 임계상태로 인간을 괴롭혀 왔다. 세상사는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속할 것이고, 많은 부분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크 뷰캐넌은 언젠가는 폭발해버리고 마는 임계상태 현상을 역사에 대입하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다. 이날 한 청년이 나타나 황태자 부부를 저격해 살해한다. 이를 문제 삼아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와 같은 슬라브 민족 국가인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한다. 이후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에, 독일이 오스트리아 편에 선 것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맞서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19살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크가 쏜 총탄은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유럽 제국의 뇌관을 건드렸다.
오늘의 역사는 이 끔찍한 전쟁을 터지게 만든 도화선에 불을 붙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마크 뷰캐넌은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더욱 사소한 것에서 찾았다.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하기 직전, 그들이 탄 자동차는 운전자의 실수로 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 운전자의 실수가 황태자 부부의 운명뿐만 아니라 화약고가 터지기 직전 상태에 이른 유럽의 운명마저 바꿔놓았다. 저자의 관점이 약간은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간 세상을 휩쓰는 불가해한 일을 단순하게 보는 결론에 지각의 세세한 부분에 매달려온 지진학자나 사료를 통해 역사적 사전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역사가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임계상태의 틀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미세한 변화가 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카오스 이론과 유사하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 역시 임계상태 패턴과 같은 맥락에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카오스는 단순한 것이 아주 복잡한 현상으로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임계상태는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본다. 그렇다면, 세상의 경로를 한순간에 바꾸게 만드는 임계상태를 예측할 수 없는 걸까?
결국 거대한 복잡계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평형 물리학(복잡계 물리학)이 필요하다. 임계상태의 독특하고 불안정한 짜임새는 세계의 모든 국면에서 나타난다. 세계는 비평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복잡한 현상이 일으키는 임계상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비평형 물리학으로 자연현상과 역사의 예측 불가능한 임계상태 패턴을 읽을 수 있어도, 격변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강물에 안전하게 움직이는 배가 아니다. 강물 속에 있는 암초를 만나 배가 부딪혀 잠겨버릴 수 있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제어하기 힘든 임계상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평형 세계는 인간의 예측가능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복잡성과 불안정성이 늘 혼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예측 가능한 패턴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비평형 물리학의 백미다. 미래가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미세한 부분까지 다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비의 날개짓이 먼 곳에 일어날 태풍의 진로를 바꿀 수 있듯이 세상은 하나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다. 우리는 그 그물망의 아주 작은 ‘코’일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