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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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멀티 아티스트' 호크니

 

 

 

 

 

 

데이비크 호크니 「무제, 2009년 7월 5일, No. 3 」 2009년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친구로 두었다면 매일 아이폰으로 그린 새벽 풍경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를 누리게 될지 모른다. 그의 아이폰 그림은 붓으로 그려낸 듯한 섬세한 터치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폰의 브러쉬 기능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뒤 갤러리에 판매하고 있다. 호크니의 드로잉에서 ‘보는 것’이 주는 기쁨을 발견하는 순간 당신을 둘러싼 세계 역시 달라질 것이다.

 

1960년대 영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새로운 접근의 포토 콜라주를 시도한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무대 미술가 그리고 최초의 스마트폰 화가. 영국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수식하는 단어는 매우 다양하다. 호크니에 대한 설명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저명한 미술 평론가인 마틴 게이퍼드는 이 ‘멀티 아티스트’와 나눈 10년간의 대화를 한 권으로 정리했다. 호크니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란 어떤 것인지에, 인간은 어떻게 그것을 재현하고 있는지 등 주제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호크니는 청년 같은 왕성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으로 다양한 매체와 예술 영역을 유랑했다. 그가 평생 몰두한 미술은 ‘사람과 그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그림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3차원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겨 놓은 그림이 어떻게 무엇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일까.

 

호크니는 관찰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렸다.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꽃병도, 방금 벗어놓은 모자나 슬리퍼도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것과 다양한 것을 품고 있는 피사체였다. 길을 가다가 차를 세우고 스케치북을 열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풀들을 스케치하곤 했다. 호크니는 그 풀을 사진으로만 찍었다면 드로잉을 할 때만큼 유심히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피사체의 고유한 특징과 매력은 열심히 관찰한 사람들만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보는 것’은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였고,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 매력적인 풍경화를 많이 그린 호크니에게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은 무한한 다양성을 지닌, 그래서 보면 볼수록 많은 것이 보이는 그런 주제였다. 호크니는 렘브란트, 반 고흐, 모네의 그림이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화가가 많은 것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Scene #2  눈을 커지게 만드는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모티브에 관한 회화」 2007년  

 

 

호크니의 미술에 관한 열정과 통찰력은 진정 감동적이었다. 책 초반부에 월드게이트 숲을 그린 장부터 이미 인상적인 풍경화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특히 5장 ‘점점 더 커지는 그림’을 읽다가(66~67쪽) 입이 딱 벌어졌다. 거기에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모티브에 관한 회화」가 담겨 있다. 게이퍼드는 아마도 미술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라고 소개한다. 적어도 전적으로 야외에서 그린 가장 큰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 작품은 소설과도 같은 시각 경험을 제공해 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책의 도판을 보면서, 그저 그림의 떡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걸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다. 지금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에서 올해 2월말까지 호크니의 큰 나무들이 그 무성함을 직접 뽐낸다. 이 그림은 높이 4.5m, 폭 12m에 이른다. 총 50개의 캔버스를 이어 하나의 대형 풍경을 펼쳐낸 대작이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한다. 해가 환하게 미소 짓다가도 금방 심술궂은 먹구름이 온 세상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때때로 굵은 빗줄기를 대지에 쏟아 붓는다. 나무와 들풀도 바람에 몸을 파르르 떨며 잠시도 똑같은 몸짓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양화가들은 하나하나의 정지된 순간을 고정된 시점으로 포착할 뿐이다.

 

호크니는 이런 게 불만스러웠다. 그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려면 이런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 중 하나다. 50개의 캔버스는 하나의 풍경을 포착했지만 각각의 캔버스는 서로 다른 순간을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었다. 관객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수십 개 또는 그 이상의 나무 풍경을 감상하게 되는 셈이다.

 

 

 

 Scene #3   결국,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개로비 언덕」 1998년

 

 

현대인의 눈은 스스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보다 카메라 앵글로 조작된 세상(사진, 영화, 광고 등)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재료의 거친 날것이 주는 신선함보다는 조리된 인스턴트 음식의 편안함에 손이 가듯이 말이다. 최근 미술에서의 ‘사실화 경향’ 중 하나도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기록된 것이거나, 카메라의 기록과 컴퓨터의 조작, 손을 통해 재생산된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호크니의 미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그림은 화가의 내부세계와 그림의 소재가 된 외부의 세계가 발가벗고 만나는 과정, 생생한 라이브 쇼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지각의 주체로서의 시각 인식의 중요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작품 소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신감의 근원은 어디 있는 것일까. 오랫동안 작가 자신의 생활 태도와 경험에 의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면에 담는 대상을 정확히 관찰하고 소화하고 이해해서 ‘나의 것, 나의 이야기, 나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작업의 시작이다. 반복되는 스케치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동시에 이런 요소들을 큰 화면으로 구성하는 작업인 것이다.

 

호크니는 인간의 눈, 더 이상 과거 이성을 대변하는 눈이 아닌 여타의 감각을 담아내는 눈을 이야기하고 있다. 호크니는 카메라의 눈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변화와 생생함을 회화, 즉 그림만이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그리기 위해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를 자신의 눈으로 실천했다. 실제로 밖에서 자신이 본 풍경을 최대한 그대로 관객에게 전하고자 관객을 둘러쌀 정도의 거대한 멀티캔버스 회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가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스쳐지나갈 수도 있을 법한, 어쩌면 큰 특징이 없기까지 한 자연 풍경은 작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눈에 포착되어 우리 앞에 자리한다. 아니 우리가 그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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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2-2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다녀오셨군요! 저도 꼭 보고 싶은 그림인데.. 이번 주말이 마지막 기회네요. 음...

cyrus 2014-02-20 22:27   좋아요 0 | URL
서울에 들릴 때 정말 큰 맘 먹고 과천까지 이동해서 그림을 봤어요. 서울에 한 번 전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아이리시스 2014-03-0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에 있는 기능을 듣긴 했는데 저처럼 그림그릴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그림의 떡인데... 요즘은 드로잉이라도 연습해야하나.. 그러고 있어요. 하다보면 어떻게 안될까.. 잘그려서 화가 될것도 아닌데...

저 논밭 그림 예뻐요!

cyrus 2014-03-04 23:58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아이리시스님. 잘 지내시죠? 요즘 스마트폰으로 손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알려주는 어플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보기가 힘들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