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창 헌책방의 매력에 푹 빠진 시기에 운 좋게도 구하게 된 책이다. 손석희 앵커가 쓴 유일한 책이다. 사실 ‘손석희’라는 이름의 활자가 적힌 책이 『풀종다리의 노래(1993년, 역사비평사)』와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아침이슬, 2000년)』, 단 두 권뿐이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단독 저자로서 손석희 앵커가 쓴 책이 아니다. 월간 『말』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유명 연사들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책 또한 절판 상태다) 손석희 앵커를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친구들은 그가 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나도 몰랐다. 헌책방에서 『풀종다리』를 만날 때까지는.

 

 

 

 

 

 

 

『풀종다리』가 출간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첫 해였다. 이 때 뉴스에서 많이 회자되었던 그 당시 사건사고에 관한 단상부터 시작해서 뉴스와 보도에 대한 자신의 신념 그리고 1992년 문화방송 노조 파업 이야기까지 책에 수록된 글의 사연은 다양하다.

 

글의 장르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책의 출판사는 ‘역사비평사’다. 『역사비평』이라는 학술지도 만드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손석희 앵커의 감상적인 에세이와 역사 전문 출판사의 조합. 이렇게 본다면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에세이를 쓴 필자와 역사 전문 출판사의 만남은 ‘진보에 가까운 정도(正度)’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풀종다리』가 나온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지라, 아무리 우리나라에 대중적 영향력이 높은 방송인의 글이라도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2004년에 정식 재판되고 난 이후, 절판이 되었다. 절판된 사연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남아 있는 손 앵커의 인터뷰 내용이나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출판사에서 더 찍겠다는 걸 말렸다고 한다.  손 앵커는 왠지 책을 더 내면 책 장사하는 것 같아서 재판을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 알라딘 중고샵에 판매되는 『풀종다리』.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20년 전 이야기로 가득한 글인데다가 손 앵커가 재판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지금 다시 나올 리 만무하고, 심지어 출판물 DB가 최적화되어 있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에 정식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 서점 전문 중고샵에 한두 권은 볼 수 있을 정도다. 절판 상태인데다가 유명 방송인이 쓴 유일한 책이라서 그런지 꽤 비싼 가격으로 헌책방 매물(?)로 나온다. 제일 비싼 가격은 55000원(책의 정가는 9000원). 시중에 구할 수 없고 나름 희귀한 가치가 있는 책은 터무니없이 높게 잡은 금액으로 헌책방에서 판매된다.

 

대구에서 알아주는 헌책방에서 구했을 때 판매가는 30000원이었다. 헌책방의 매력은 시중에 구할 수 없는 한 권의 책을 숨겨진 보물을 찾는 소유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웬만한 부탁을 해도 가격을 절대로 깎지 않으려는 고집 센 헌책방 주인과의 가격 흥정에서 승리하는 기쁨(?)도 맛봐야 한다. 헌책방에서 자주 출몰하는 젊은 단골손님이 아니었다면 반값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정한 끝에 15000원으로 구입했다.

 

 

 

 

 

손때와 먼지가 전혀 묻지 않았을 정도로 워낙 깨끗한 상태로 보존된 책이라서 그런지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매일 보면서도 시간이 딱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풀종다리』가 손석희 앵커 특유의 변함없는 ‘바른 이미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역시 손석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신 있으면서도 잘못된 세태를 비판하는 ‘바른 말’로 이루어졌다. 글이 참 읽기 쉬워서 거의 ‘칼럼’에 가까운 에세이로도 볼 수 있다. 20년 전에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기시감이 느껴진다. 20년 전, 손 앵커가 아쉬워하던 세상의 부조리한 장면은 얼굴과 시간만 달라졌을 뿐이지 여전히 남아 있기에 씁쓸한 기시감이기도 하다.

 

 

 

 

 

 

이틀 전 토요일에 중앙일보 오피니언에 대학생 칼럼을 쓴 학생분들과 함께 JTBC 방송국에서 손석희 앵커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만남일 것 같아서 저자로서의 ‘손석희’의 친필 사인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꼭 그 분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혹시 글이나 책을 쓸 계획이 없냐고. 만약에 손석희 앵커의 칼럼이 중앙일보 오피니언에 게재된다거나 또 새로운 책이 발간된다면 대중의 엄청난 반응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시간 부족 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4시간 걸리는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때도 『풀종다리』를 다시 읽었다. 그 4시간이 지루할 법한데 책 한 권 덕분에 시간 빨리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여러 번 『풀종다리』를 읽고 나서 느꼈지만, 손석희 앵커를 직접 뵈면서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문장으로 책의 소개를 마무리한다. ‘손석희 클래스는 영원하다’

 

 

 

 

 

 

 * 방송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 뉴스는 다 외워서 합니까?”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의문이겠지만 매번 그런 질문을 받다 보면 좀 답답해질 때가 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 많은 부분을 외워두었다가 카메라 앞에서 밑에 있는 원고를 보지 않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진행자로서의 나는 그저 단순한 ‘전달자’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진행자 개인이 부각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략)

 

진행자들이 아무 의미 없이 때로는 현학적 수사로 포장된 기사를 외우고 있고 화면상 보이는 모든 요소들을 치장해 거기에 자족하고 있다면, 또 시청자들 역시 그에 매몰돼 있다면 우리의 방송은 불행하다. (「그 뉴스는 다 외워서 합니까」128쪽, 130쪽)

 

 

 * 오락 일변도의 시청률 경쟁은 결국 비판적 감시 또는 견제 역할이라는 공공성을 중시하는 방송의 이념적 목적지마저도 그 생존의 싸움터에 매몰시켜 버리거나, 아니면 신기루처럼 날려 버릴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우려하는 것은 이것이다. (「문화관은 슈퍼마켓이 될 수 없다」141쪽)

 

 

 * 문화방송 뒤쪽 아파트 상가의 패스트푸드점 주인 아주머니는 요즘도 날 잘 알아보지 못한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는 것이란 표현이 맞겠다. 기억력 탓이 아니니까...

연전에 동료들과 그 집에 처음 들렀을 때 주인 아주머니는 날 보더니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했다. 나는 쑥스럽기도 하여 “이 집에 몇 번 왔었지요”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 그랬었지 참”하고 되받는 것이었다. 그냥 웃고 지나갈 참이었는데 우리 중 한 사람이 장난기로 말을 했다.

“아주머니 이 사람 모르시겠어요?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인데.”

“테레비?”

“예. 저녁 때 채널 11번 틀면 이 사람 나와요.”

“아, 그래요? 무슨 시간에?”

“뉴스시간에요. 아나운서거든요.”

나는 옆에 앉아 있기가 영 곤혹스러워 이 친구를 연신 쿡쿡 찌르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다음 얘기를 듣고는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번이면, 그러니까 그게 TBC지?”

세상에 웬 TBC란 말인가. 십여 년 전에 없어진 동양방송이 멀리도 아니고 문화방송 바로 뒤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통해. 채널 11로 부활한 것이다. (「아나운서, 팔방미인 박명시대」142~143쪽)

 

- comment : 만약 아주머니가 지금 살아 있다고 가정하고 TBC가 채널 15로 부활한 JTBC 뉴스9를 진행하는 손 앵커를 브라운관에서 본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아니, 사실 이 글의 문장만 손 앵커에게 보여주고 싶다. 본인도 20년 전에 만난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중앙일보의 앞 글자 이니셜 ‘J'가 붙은 TBC에서 일하게 된 운명에 파안대소했을 것이다.

 

 

* 우리가 진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광기 어린 시대에 부화뇌동의 차원을 넘어 상쇠 노릇을 한 것만이 부끄러운 것인가. 아닐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시기에마저도 침묵한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잉크물에 담긴 63빌딩」168쪽)

 

- comment : 지금은 말할 수 있는 시기에 침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시기를 부정하고,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세력이 존재하니, 이마저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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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석희 아나운서가 책을 낸 적도 있었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은 여전히 담백한 모습이라 참 좋아 보여요~

cyrus 2014-01-16 23:19   좋아요 0 | URL
네, 그 날 손석희 아나운서를 직접 가까이서 처음 만났는데요, 역시 정직하고 바른 이미지는 평소에도 여전했어요. 그리고 뉴스와 언론에 대한 소신이 변하지 않았고요.

hnine 2014-01-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제는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군요.
전 이 책 나온지 얼마 안되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어요. 그때는 그저 인기 앵커라고만 생각했지 20년 후 지금과 같은 지명도를 같는 인물이 될지 짐작도 못했어요. 20년이 참 훌쩍 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yrus 2014-01-16 23:20   좋아요 0 | URL
20년 전에 나온 책을 썼을 당시에도 손석희 아나운서 본인도 그렇고, 그 누구도 훗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 될 지 예상하지 못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