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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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높은 인사고과와 승진을 위해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분주히 움직이는 직장인들, 좋은 성적과 각종 스팩, 외국어와 컴퓨터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혈안이 된 학생들, 가사와 양육뿐만 아니라 집안 인테리어, 가족들 건강 챙기기, 자녀 학교 및 학원 데려다 주기 등 하루가 빠듯한 주부들.

 

이들은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과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하루 24시간을 시, 분 단위로 쪼개서 나눠 쓰는 워커홀릭들로 현대인의 자화상의 일면이다. 워커홀릭은 원래 현대 산업사회에서 일중독자나 업무중독자를 가리키는 말로 여가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가정에 소홀한 직장인을 주로 지칭하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직업과 계층과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각자 맡은 바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기 위하여 심리적·육체적으로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삶, 합리적으로 계획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삶이 건강과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시간계획표를 작성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고 작심삼일로 실패하면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며,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 희망고문을 통해 또다시 계획하고 활동한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 긍정의 구호로 가득한 피로사회는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노곤한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외침 소리, 발걸음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가 가득한 요란한 사회다. ‘활동적인 삶이 지배하는 사회다.

 

 

 

 ♣ 가속화된 시간은 '금'이 아니라 '병'이다

 

이런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느낌은 시간의 가속화. 허둥지둥하며 살다 문득 뒤돌아보니 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갔더라, 하는 게 시간의 가속화다. 슬로푸드, 느림의 미학 그리고 힐링.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다.

 

이 모든 사회현상의 원인을 근대 이래 계속 강화돼온 활동적 삶을 절대화, 찬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노동이나 활동적 삶의 절대화는 모든 시간을 일로 치환시키며 여가시간도 일을 준비하기 위한 보조적 의미로 인식시킨다. 인간다운 향기가 사라지는 시간이 되고 만다. 신자유주의와 성과주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본주의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저자는 <시간의 향기>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번역된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를 성과사회라고 진단한다. 성과사회의 개인은 복종하고 순응하는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이다. ‘할 수 있다가 지배하는 사회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적도 올릴 수 있고 취업도, 승진도 할 수 있으며 아름다워질 수도 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세상이다.

 

'할 수 있다'라는 긍정성의 과잉상태는 끊임없이 노동하게 하고, 활동하게 한다. 투잡, 쓰리잡을 뛰는 직장인이 적지 않으며 생활에 큰 지장이 없어도 야근과 특근을 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 주변인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얼짱과 몸짱 스타를 보며 나도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 긍정하며 열심히 몸 관리를 한다.


노동 및 활동의 과잉, 긍정성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는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생산을 최대화 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열망이 있다. 능력의 긍정성은 금지나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생산적이다. 성과주체는 이미 규율의 기술을 습득하고 당위의 명령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생산성의 수준을 극대화한다.

 

이렇게 비판도 없이 따라가다 보니까 시스템의 압력이 굉장히 강해서 피로하게 된다. 그런 시스템, 사회가 문제인데 지금 한국은 개인이 문제라며 치유하라, 힐링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강제하는 성과사회의 부정성은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우울증의 증상은 자신이 부족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느낌, 실패에 대한 불안, 끝없는 자책과 자학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사회, 자기 자신을 착취함으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지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이 나타나며 이는 성과사회, 긍정의 과잉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시간의 향기>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오늘의 시간은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됨으로써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늘날 시간은 자연적 순환과 같은 리듬도 구원이나 종말, 진보라는 서사적 긴장감도 없다원자화된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날아가는 시간의 끝자락으로 겨우 인식하게 한다. 그저 끝없는 현재들의 사라짐뿐이다. 삶의 가속화는 삶의 양은 증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충만한 삶으로 채워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 잃어버린 시간의 향기를 찾아서  

 

천천히 가는 게 치유가 아니다. 시간의 위기는 가속도가 아니다. 병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하는 것보다 남에게 시간을 주는 게 해결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시간을 창조해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의 향기를 찾아야 한다. 마르셀이 부드럽게 적셔진 마들렌 조각을 한 숟갈의 차 속에 담아 입술에 가져갔을 때 온몸에 퍼진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처럼 말이다.

 

우리는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유속 한가운데 있다. 설상가상으로 깊은 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처해 있다. 세상은 잠시도 IT기기를 벗어나서 생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가정에서도 자라목이 돼서 24시간 인스턴트 정크 푸드와도 같은 정크정보들에 온통 주의를 빼앗기고 있다. 더 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아니라 어쩌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멍한 무용지물의 시간이 생긴다.

 

새롭고 갑작스레 찾아온 문명의 사회구조로 인해 경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간의 지각은 파편화되고 분산된다. 저자는 이것을 정보화 사회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진보라기 보다는 퇴화라고 여긴다. 수렵자유구역의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보호하고 짝짓기 중에도 경계를 하는, 다양한 다중업무에 주의를 분배하느라 깊은 사색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은 다양한 과업, 정보소스와 그 처리과정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산만한 시대를 살게 되었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하며 기존의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뿐이다.

 

'여행은 일상처럼, 일상은 여행처럼하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을 여행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1780년 42일 동안 가택연금으로 자기 방을 여행하 <내방 여행>이란 책을 출간했다. ‘내 방 순례 같은 자발적 유배시간은 조용하지만 강한 혁명 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적인 향기를 머금고 사색이 가득한 시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잊혀진 시간이다. 우리 삶 고유의 시간인 것이다. 새로운 삶의 창조를 위해서는 정신적 이완이 가능한 사색적 삶의 원천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일상을 여행처럼 사색하는 자발적 시간으로 우리 삶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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