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빌 게이츠는 욕심이 많다. 일전에 미국 대학생들과 대화하는 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물었다. “만약 당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제일 먼저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책을 빨리 읽고 싶어요.”
어린 시절 책벌레로 통했던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5월 11일에 시행되었던 제1회 한국독서능력검정 대상을 받은 책벌레가 미래의 빌 게이츠가 된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독서능력검정이었다.” 한국독서능력검정에 처음 응시하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은 빌 게이츠의 소원을 바라는 심정일 것이다. 한국독서능력검정위원회가 선정한 도서를 다 읽어야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 총 100권이다.
주최 측은 이번 독서능력검정을 “대학생들이 독서를 통해 오늘날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을 함양하고 취업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는 독서능력검정을 두고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어떤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를 알면 구직자의 지적 수준과 창의력은 물론이고 인성까지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러한 반응에 동의할 수 없다. 독서능력검정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다.
독서는 좁은 의미에서 보면 활자로 된 책을 읽는 행위지만, 좀 더 넓게 해석해 보면 지식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독서를 통한 성장은 책을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활자 속에 갇힌 지식이 맞는지 틀렸는지 고르는 과정만으로 한 사람의 지적 성장을 평가할 수 없다.
어릴 적 수영을 배울 때 누구나 기억하는 주의사항이 있다. ‘몸에 물을 묻힌 뒤 들어가라.’ 준비운동이 없으면 자칫 탈이 날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스펙을 위해 무턱대고 책 속으로 뛰어들면 머리에 쥐가 난다.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기는커녕 엄청난 부담감만 가질 뿐이다.
어린 시절 책벌레 소리 들어 본 대학생들이라면 독서능력검정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해서 진짜 책벌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일본의 책벌레 다치바나 다카시는 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느냐는 물음에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100권의 책을 억지로 폭식하고 있는 전국의 책벌레들은 책을 제대로 먹을 줄 모른다. 자신이 ‘스펙’의 불빛에 향하다가 청춘의 시간이 타 죽어가는 나방인지 아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