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500년 미술사와 미술 시장의 은밀한 뒷이야기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외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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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 얼마에요?"

 

 

 

 

 

빈센트 반 고흐  『탕기 영감』1887년

 

 

두 달 전에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하는 반 고흐의 그림 전시회를 둘러보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도슨트가 반 고흐의 초상화 <탕기 영감>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을 빙 둘러싼 채 그림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현재 이 그림의 가격이 얼마인지 아세요?" 그러자, 관람객 중 한 사람이 질문에 대한 침묵을 깨고 용감하게 대답을 했다. "1억이요!" 도슨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1억 조금 넘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아시는 분 없나요?" 전시회는 갑자기 경매장처럼 변했다. 관람객 한 명 한 명씩 아무 가격을 불러댄다. 2억, 3억 심지어 가장 큰 액수인 5억도 나온다. 고흐의 그림 가격을 정확하게 맞춘 관람객은 없었다. 도슨트는 "고흐의 <탕기 영감>은 아직 경매에 나오지 않아서 정확한 가격을 책정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략 10억 정도를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림 좋다. 이 그림 돈 좀 되겠지?"

 

 

그림 전시회에 가면 그림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관람객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돈 되는지 보는 유형이다. 가끔 그림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도슨트에게 질문을 한다. "이 그림, 얼마에요?" 엉뚱하거나 잘못된 질의는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확대되고, 미술품 경매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일반인들도 전시회 속에서만 보던 미술품을 쉽게 접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미술품은 곧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해 버렸다. 신문지상에서도 ‘OOO 작가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XX그룹 또는 사업가 XXX가 몇억 원을 지원했다.’라는 기사보다는 ‘45억 원의 박수근 작품이 비자금으로 세탁되어…. 유명 작가 작품을 이중 담보로 수십억 원 불법 대출’ 등의 기사들이 눈에 띈다. 예술이 속물로 전락하고 있다.

 

 

 

 값비싼 그림, 돈만 있으면 만사 OK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장 멋진 그림일수록 그림의 가격은 비싸다고. 여기서 말하는 '가장 멋진 그림'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묘사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말한다. 쉽게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불가사의한 미소로 수많은 세계의 관람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가격은 어마어마한 액수라고 한번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술 시장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잘 그렸고,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한 화가의 그림만 값비싼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오랜 무관심과 창고의 먼지 속에 파묻힌 무명 화가의 그림 한 점이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지 간에 말이다. 그림 한 점을 런던 소더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값비싼 가격의 옷을 입히는 건 간단하다. 그림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그림의 예술적 가치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부호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도 가능하다. 돈으로 돈 되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찰스 윌슨 필  『프린스턴 전쟁 직후의 조지 워싱턴』 1779년

 

 

미국 화가 찰스 윌슨 필(1741~1827)이 그린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전신 초상화는 미국인 초상화로는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2129만 6천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무려 241억 원이 넘는 액수다.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 이 초상화가 애초 예상가 100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 비싼 값에 낙찰되었다. 필은 이와 비슷한 작품을 7점이나 더 그렸으며 이외에도 여러 점의 복사본도 제작되었는데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미국과 나라를 이끌어가게 될 신흥 정치가로서의 조지 워싱턴을 유럽에 알리는 데 큰 일조를 했다. 이 그림은 총 8점의 워싱턴 초상화 중에서 유일하게 익명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미국인은 나라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미국 독립의 핵심이자 미국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워싱턴이 승리의 기쁨에 만취한 채 여유롭게 서 있는 포즈를 보라. 영국을 완파하고 미국 독립의 선포를 상징하고 있는 이 그림을 미국인, 특히 돈 있는 미국의 부호들이 눈독 안 들일 리가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  『의사 가셰의 초상』 1890년

 

 

반 고흐의 그림은 화가 생전에 달랑 한 점만 팔렸을 뿐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가 화가 사후에 가장 값비싼 가격으로 책정된 유형이다. 고흐의 작품성이 후대에 와서야 빛을 보게 되어 가장 비싼 그림으로 된 것도 있지만, 소유와 경매의 과정에서 '돈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고흐의 또 다른 초상화인 <의사 가셰>가 그랬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출신의 평범한 의사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은 백 년 동안 12명의 주인을 만나야 했다. 돈으로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서 <의사 가셰의 초상>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그림은 고흐가 자살하기 수주일 전 그렸다. 가셰 박사는 고흐의 정신 치료를 맡았던 신경과 전문의였다. 환자였던 고흐는 의사인 가셰에게 자신과 닮은 병적인 징후를 보았고 가셰의 얼굴을 자화상 그리듯 그려냈다. 그림은 고흐의 누이동생 요한나가 소유하고 있다가 300프랑의 가격으로 그림 수집가에게 판매하면서부터 거래의 여정(?)은 시작된다.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 독일, 영국 그리고 다시 독일. 이때 그림은 '퇴폐 그림'으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겪게 된다. 히틀러의 수하였던 헤르만 괴링은 박물관으로부터 초상화를 압류, 외국에 판매함으로써 전쟁비용을 충당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그림은 독일 출신 은행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유대인 금융업자에게 또 다시 팔게 되면서 주인의 얼굴이 자주 바뀌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금융업자는 그림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팔게 됨으로써 가셰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술관에 전시된 지 30년이 지난 1990년에 가셰의 얼굴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주인은 일본 제지회사의 회장인 료헤이 사이토. 가격은 8250만 달러(한화 93억 2만 9천백만 원). 15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이토는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3년 후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유언으로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수집한 그림들' 중에 가셰의 얼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이토의 유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유자가 고인이 된 상태에 지금 가셰의 얼굴은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 그림의 소유자가 누군지 모른 상태이다.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못지않게 고흐의 그림 또한 부호의 지갑을 열게 할 정도로 투기가 심했다.

 

 

 

 

파블로 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1905년

 

 

고흐와 더불어 가장 비싼 그림의 화가는 바로 파블로 피카소(1881~1973)다. 단순히 파이프를 들고 있는 파란 옷의 소년을 그린 이 그림 한 점은 피카소의 작품 활동 초창기 시절인 청색 시대 때 제작되었다. 이 그림 역시 억만장자가 구입해서 소유하고 있다가 2004년에 경매에 내놓았는데 앞에 소개한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화>의 가격을 경신하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 동시에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은 기록 또한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어마어마한 고가의 액수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세계적인 재벌 화상인 래리 가고시언을 이긴 익명의 구매자가 현재 이 그림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래리 가고시언이라면 지금도 세계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화상이다. 그의 재력을 제치고 이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루시안 프로이트  『잠자고 있는 사회복지 감독관』 1995년

 

 

 

 

프랜시스 베이컨  『삼면화』 1976년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뚱뚱한 사회 감독관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그린 그림,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세 가지 형체가 그려진 그림.이 두 가지 그림을 처음 본 사람 대다수는 그림의 가격과 두 점의 그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면 놀랄 것이다. 200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현재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FC 구단주인 러시아의 '큰 손'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외국 축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첼시 구단주 로만의 명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로만은 유독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부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첼시 FC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은 물론이고 세계 클럽 대항전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1년 안에 감독을 여러 번 교체할 정도로 구단주로서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인내심 없는 그의 칼 같은 감독 해고 러쉬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팬이 있을 정도이다. 로만은 루치아 프로이트의 <잠자고 있는 사회복지 감독관>을 우리나라 돈으로 약 38억 원의 가격으로 구입했고 바로 이튿날에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를 무려 약 980억 원에 구입했다.

 

사족으로 로만의 현대미술 관심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모델 출신 애인 또한 현대미술 컬렉터다. 최근에는 로만이 '러시아 현대미술의 기수' 일리아 키바코프의 회화 39점과 설치미술 19점, 드로잉 100여점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림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사지 않는 미술 거래  

 

사실 세상에 돈 되는 화가와 그림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니 지금은 유명하고 비싼 가격으로 그림이 거래되어도 몇 년 지나면 유명세나 작품 값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화가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투자는 하지 않고 화가가 유명해 지고 작품 값이 올라가기만 바라는 마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품 한 점 사면서 몇 년간 그 작가를 후원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화풍의 취향이 하나의 유행처럼 많은 변화가 있듯이 미술 시장 거래의 추세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미술품을 자주 보다 보면 귀가 열리고, 많이 듣다 보면 눈이 트인다. 작품에 대해서 많이 알려고 하면 미술품 혹은 작가의 과거 이력과 미래 전망이 고스란히 나만의 생각, 나만의 그림 보는 법으로 정리된다. 이런 자세야말로 진정한 '미술 애호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 '미술 애호가'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다. 미술 애호가라고 자처하는 모든 컬렉터들이 미술 지식에 무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그림을 남들에게 '보여 주기'식 명품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큰 돈 들여 구입한 그림을 자신의 자택 한쪽 벽에 걸어둔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림의 가치를 알려주기보다는 자신의 재력을 마음껏 자랑할 것이다. '나, 이 그림 1억 원으로 사들인 거야. 어때? 1억 원 그림 한 점 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잘먹고 잘살고 있어'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했던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1867~1939)는 타고난 심미안을 가지고 시대를 앞서 간 화가들의 재능과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안목 덕분에 르누아르, 폴 세잔, 앙리 마티스 그리고 피카소 등의 화가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가 유럽미술을 키워냈다는 후대의 평가는 과언이 아니다. 요즘처럼 돈만 중요시하게 여기는 세상에 볼라르와 같은 '미술 애호가'는 다시 나올 수 없을까? 요즘 미술 시장을 보면 씁쓸한 속물근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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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3-1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미술 작품도 재테크의 시장이 되기 때문이겠죠.많은 분들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더군요.

cyrus 2013-03-16 23:26   좋아요 0 | URL
그림에 어느 정도 지식과 식견이 있는 상태에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식투자차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돈 벌기 위해서 그림을 구입하는 건 좀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