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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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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과학자는 되고 싶지 않다?

 

 

 

 

 

 

아들: 아빠, 꿈이 뭐였어?

아빠: 천문학자

아들: 그런데 왜 안 했어?

아빠: 어...? 수학이 안 돼서...

아들: 아...

아빠(내레이션): 수학이 너의 꿈을 방해하지 않도록

 

 

모 어린이 학습지 CF 속 대사이다. 아빠는 아들에게 자신의 꿈인 천문학자가 되지 못한 이유에 관해서 얘기를 해준다. 그러자 아들은 뇌리를 스치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왜 안 했어?” 꿈을 왜 이루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그 이유가 나온다. 바로 이유는 수학을 못해서. 그리고는 아들은 짧은 탄식과 함께 아버지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수학이 너의 꿈을 방해하지 않도록”

 

굳이 수학 때문에 천문학자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 광고를 보는 부모 자녀들에게는 일리가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계기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단지 수학을 못한다고 해서 천문학자가 될 수 없는가. 질문의 요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학습의 기초가 제대로 되지 못한다면 과학자가 될 수 없느냐는 것이다. 학습의 밑바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과학자를 꿈꾼다는 것은 질퍽한 진흙 위에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수학 지식의 습득 또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학생의 과학, 수학 학구열은 외국의 학생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나다. 잠을 줄일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많은 분량의 학습을 소화한다. 그래서 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수학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학생의 입상 순위가 꽤 높은 편이다. 현재 국제올림피아드 종목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정보, 천문 등으로 총 7개다. 매회 각 종목의 올림피아드에서 한국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선전에 비하면 이공계열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의 수가 적은 점은 아이러니하다. 작년에 작성된 '공학기술계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공대생들이 갖고 싶은 직업 1위는 의사, 한의사였고, 그다음이 공무원과 금융인이다. 정작 전공을 살려 공학자나 과학자, 기술자가 되겠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할 뿐이다. 공대생 10명 가운데 공학과 관련된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채 1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과학을 하는가

 

우리나라 과학자들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학습의 노력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과학을 공부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가 중요하다. 그러한 문화가 제대로 발달한다면 학생들은 과학적 경험을 통해 ‘과학적 사고’를 배양할 수 있게 된다. 이공계 학생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진출을 돕기 위한 인센티브 도입 또는 연구 환경 개선 등과 같은 정부의 정책만으로 이공계의 척박한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면서 다방면으로 대중과학을 위해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인 로런스 크라우스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과학에 참여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들을 과학자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을 과학자처럼 생각하게 만들면 이 사람들은 다른 상황에서도 문제에 더 잘 대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 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과학 연구의 발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p 262)

 

크라우스는 자신의 직업인 과학자를 지원하는 현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는 고도의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한정된 직업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과학, 수학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습득했다고 해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자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선결 조건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선결 조건을 이루는 중요한 핵심의 근원은 바로 과학적 경험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경험’이란 강제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참여의 연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 접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을 통해 과학자처럼 생각해보는 과정을 의미한다. 과학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인공 화산을 만들어 실험하거나 눈의 결정체를 사진으로 촬영해서 과제로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교육 활동’ 역시 과학적 경험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에디슨, 뉴턴과 같은 호기심이 왕성하면서도 벌써 과학적 사고를 하는 습관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러한 교육 활동도 특별한 과학적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학생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연구 실습과 과제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편이다.

 

크라우스의 대담자로 나선 디자이너 나탈리 제레미젠코는 적극적 참여로서의 과학적 경험이 축소되어가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옳든 틀리든 간에 자신만의 연구와 관찰을 토대로 과학적 사고를 표현하고 형성할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정부 및 교육기관은 누가 과학을 하며 또는 어떻게 과학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전문가라는 과학자들을 앞세워 대중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일을 할 뿐이지 대중이 과학에 쉽게 접근, 참여하는 유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와 대중들 간에 세워져 있는 벽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이상 누구나 과학자가 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에디슨의 어머니를 본받아야 한다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끝없이 발전하고 있을 무렵인 1860년대 당대의 물리학자였던 영국의 캘빈 경은 물리학의 발전은 이미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캘빈 경의 낙관적인 믿음은 섣부른 판단이 되어버렸다. 세기가 넘어간 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뉴턴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밀렸으며 양자역학의 등장은 기존의 상식과 자연을 대하는 시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린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도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과학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복잡성, 네트워크가 강조되는 지금까지도 과학에 관한 관심과 추세가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과학은 캘빈 경의 시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컴퓨터과학, 복잡성 과학 그리고 빅데이터(Big date) 과학 등 학문 분야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 과연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네트워크 과학 연구에 이바지한 바라바시가 소개한 일화는 과학에 관한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대중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 아들은 이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달에 가고 싶지 않니?”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뇨, 관심 없어요.” 그러나 페이스북과 인터넷에는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웹에도 관심이 많죠. (p 389)

 

만약에 나로호 발사 장면을 실제로 또는 TV 생중계로 본 아이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나로호와 같은 로켓을 만들어 보고 싶지 않니?” 이 질문에 분명 일부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아뇨, 관심 없어요.” 이 아이들은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에 관해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이들이 더 관심을 두는 것은 페이스북과 인터넷이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어린 시절 닭이 알을 품는 과정에 병아리가 부화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궁금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알을 가슴 품에 안아보는 실험을 했다. 에디슨의 실험은 바보 같은 일이었지만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의 실험을 반대하거나 크게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풀 수 있도록 칭찬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 폭이 점점 좁아지는 상황 속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르네상스의 도래를 예언한다는 것은 수백 년 전 캘빈 경의 오류를 범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인간성의 해방과 창조성의 발견에 길을 열어 준 새로운 사회의 형성이었다. 과학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과학 참여와 과학적 사고를 철저히 무시하는 사회적 풍토를 버려야 한다. 오늘날 과학자는 에디슨의 어머니를 본받아야 한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과학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과학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지금 과학자들은 자신들 때문에 아이들, 아니 과학자를 희망하는 이공계 학생들의 꿈을 방해하지 않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대중의 시선으로 과학이 처한 현실을 파악할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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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2-2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번에는 패스하렵니다. 꾹 참고 절반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네요. 그래도 읽던 것이 아쉬워서라도 조만간에 서평을 써야겟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