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6
질 랑베르 지음, 문경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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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심 있게 알아보고 있는 화가가 이탈리아 출신의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다. 이름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와 비슷한데 국내에선 카라바조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에선 미켈란젤로 못지않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고흐를 능가하는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불같은 성격, 시대를 앞서갔지만 결국 외면 받아야만 했던 남다른 천재 그리고 요절. 이러한 카라바조의 삶에 비하면 고흐는 양반에 불과하다. 경쟁 화가들 그리고 자신에게 그림을 주문했던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은 예사였고 수차례에 걸쳐 폭행 및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여러 번 투옥되기도 했고 탈옥을 감행하여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카라바조의 초상화를 보라. 딱 얼굴만 봐도 그의 격정적인 성격이 인상에서도 묻어 나온다. 예술적인 삶보다는 카라바조의 무시무시한 전과 이력이 제일 먼저 떠올려서 그런지 초상화 속에서 그가 쥐고 있는 것이 붓이 아니라 생전에 품속에서 지녔다던 단검처럼 보인다.

『성 마태오의 소명』1599~1600년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부터 도제 생활을 거쳐 예술적 능력을 점점 키워나갔다. 콘타랠리 예배당에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와 <성 마태오의 소명>이 각광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권력자였던 델 몬테 추기경이 후원자로 나서고 로마 최고의 화가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양식을 추구한 그는 악마적 화가,‘회화의 반(反) 그리스도'라는 비판도 받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집시나 부랑자, 창녀의 모습을 성자나 예수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사회의 비판과 조롱을 비웃기라도 하듯, 충격적인 주제 선택과 표현 방식에 대한 고집이 묻어 나 있는 카라바조의 붓은 절대로 꺾이지 않았다.


『마리아의 죽음』1606년경






임종한 성모 마리아를 그리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은 매춘부의 썩어가는 시신을 모델로 사용했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로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부탁했던 가톨릭교회 관계자들은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히려 그림 모델에 대한 출처불명의 소문보다는 교회 관계자들을 더욱 실망하게 만든 것은 카라바조의 표현 방식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왼팔이 축 늘어진 채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임종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슬픔에 빠져 있다. 교회 관계자들은 이러한 그림 구도를 마음에 들지 못했다. 성모의 죽음은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장면이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성모 가까이에서 임종을 지켜본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속 성모의 모습에 대해서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맨 발을 드러낸 채 죽은 성모의 모습이 저속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를 들면서 카라바조의 그림을 비난했다. 그나마 그림 속 죽은 여자가 성모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희미한 후광만 그려져 있을 뿐, 이것마저 그려 넣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 또한 거절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카라바조는 지극한 성스러움은 결국 지독한 세속적인 삶에 기초해 있으며, 성(聖)과 속(俗)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성 마태오와 천사』1602년 (첫 번째 그림, 현재 소실됨)






『성 마태오와 천사』1602년 (수정된 그림)


카라바조는 그림 제작 주문자들로부터 총 두 번이나 거절당할 정도로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 마태오와 천사>다. 첫 번째 그림 속 성 마태오가 너무 초라하고 천사가 마태오 옆에 너무 가까이 묘사되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천사의 영감을 받아 마태복음을 기록하는 마태오의 모습은 평범한 하층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마태오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탓에 그의 발바닥은 그림을 보는 관중들 앞으로 드러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본 순간, 마태오가 성인으로써의 면모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레토의 성모』1604~1605년


비록 성당이 요구하는 작품을 위해 카라바조는 고귀하고 근엄한 성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도록 그림을 수정했지만 평범하고도 세속적인 종교화를 추구하고자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성 마태오와 천사> 두 번째 그림이 완성된 지 2년 뒤에 그려진 <로레토의 성모>에서는 성모와 아기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은 늙은 순례자의 맨발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카라바조는 그 당시로서는 독창적인 사실주의적 화법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1593~1594년경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던 초창기의 카라바조 그림을 보게 되면 이미 사실주의적 표현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과 <과일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처음 보는 독자라면 훗날 그려지게 될 종교화에 비하면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점의 그림을 박물관에서 실제로 보게 된다면 좀 더 가까이 살펴 볼 것. 과일과 이파리가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과일은 먹음직스럽게 윤기가 흐를 정도로 싱싱하게 느껴진다. 특히 포도는 너무나 사실적이다. 각각의 포도 알맹이가 하얗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는데 포도 열매 위에 묻은 하얀 가루를 보는 듯하다. 이것을 사람들은 농약이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다행히도 농약 성분은 아니다. 그리고 카라바조가 살았던 시대에는 농약이라는 게 나오지도 않았다. 포도 속 당분으로 포도 껍질이 변해 생성된 것뿐이다. 하얀 가루가 많은 포도일수록 당분이 높고 신선함이 유지되어 있다. 과연 카라바조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그렸던 것일까?

『참회하는 막달레나 마리아』1596~1597년


카라바조는 종교화를 그렸던 화가이면서도 동시에 폭행, 살인 전과가 적지 않은 범죄자라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독특한 화가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등장할 수 있게 명암법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극적인 순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방식은 훗날 조르주 라 투르와 쿠르베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미술은 정당한 대우를 받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카라바조의 종교화를 반복해서 볼수록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물론 화가의 생애를 자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본다면 그림이 주는 감동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카라바조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참회하는 막달레나 마리아의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 한 점을 남겼는데 불같은 성격의 화가가 그렸다는 생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고요하다. 두 눈을 감고 얼굴을 숙인 막달레나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면 눈물 한 방울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막달레나의 얼굴에 흐르고 있는 이 눈물 한 방울은 이 그림을 보고 있는 관객마저도 숙연하게 느껴진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년


카라바조의 생애와 미술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찻잔 속의 태풍’이다. 카라바조는 평범한 기교의 예술에 의한 마니에리즘(Mannerism)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나 독특하고 파격적인 주제와 표현법으로 세상을 뒤흔들 젊은 천재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범죄 이력과 도주 생활은 활짝 펴야만했던 예술적 능력의 꽃을 시들게 만들었다. 카라바조의 예술이 세상에 가져다 준 파급 효과는 한 순간일 뿐이었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점점 소멸되어가는 태풍처럼 카라바조는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요절하고 말았다. 아마 반 고흐를 제외하면 이처럼 파격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짧은 삶을 살았던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이제는 르네상스 거장 중의 한 사람인 미켈란젤로에 맞먹을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는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카라바조‘라는 성은 화가가 태어난 지명으로부터 유래됨)를 고풍스러운 미적 취향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림 장면의 절반을 지배할 정도로 어두컴컴한 흑(黑)의 영역이 많이 차지하고 있는 명암법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줄까? 그리고 과거의 불미스러운 이력만 가지고 장점을 무시하고 심지어 끝까지 냉담한 선입견을 거두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서 과연 전과자의 그림들이 그러한 선입견 없이 예술적 평가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의 목을 참수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 자화상으로 그렸던 카라바조의 파격적인 예술을 아직 우리 사회는 받아들이기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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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8-2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라바조를 다시 보게 돼서 정리가 돼요. 예전에는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오는 화가 일대기 종종 읽었는데 요즘은 통-_-;; 저도 현대미술에 관심 좀 가져야 될 듯 싶어요. 아는 사람이 앤디 워홀 뿐이라니 orz

카라바조 페이퍼에 앤디 워홀 얘기하는 쓸데없는 댓글..

cyrus 2012-08-31 22:32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부터 마로니에북스 시리즈 완독 도전해보려고요. 분량도 많지도 않고 시리즈 중에 제가
관심 있는 화가들이 꽤 있어서 이번 기회에 화가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요.
그런데 내일 모레부터 2학기 시작이라는 게 함정이네요.. ㅋㅋㅋ ㅠㅠ
다음 마로니에북스 시리즈는 앤디 워홀을 읽어보겠습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