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z.  다음 이 시에서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정치적 의미를 찾아서 100자 내외로 설명해보시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오늘 아침부터 정말 '황당한' 신문기사를 접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통합민주당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시와 산문 등 모든 작품들을 국어 교과서에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는 내용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새누리당 소속의 이자스민 의원이 일반인 시절 찍은 영화 <완득이> 사진이 수록된 교과서도 수정 보완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평가원 측에서는 이러한 권고를 내리게 된 기준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 중립성'이다. 평가원은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면 교육의 중립성이 훼손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러 매체에 소개된 도종환 시인의 작품 삭제 논란에 대한 기사들을 쭉 훑어보면서 나는 평가원이 말하고 있는 '교육의 중립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그 의미와 기준이 무척 궁금했다.  그동안 작품성을 인정받아 교과서에 멀쩡히 실려 있던 문학 작품을 단순히 작가나 특정 인물이 정치에 입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삭제 대상'으로 분류해야하는 결정적인 명분 또한 없어보였다.

 

먼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도종환 시인의 대표작 [담쟁이]를 읽어보자. 이 시는 절망을 극복하는 담쟁이를 통해서 삶의 의지와 생명력을 묘사하고 있다. [담쟁이]는 1993년에 출간된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수록되어 있는데 시인이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투옥생활을 한 경험을 비추어볼 때 시인이 투옥생활을 하고 있는 시기 때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과거에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서 옥살이를 했다는 점 그리고 현재 대선에 출마하게 되는 문재인 상임고문의 핵심 후원조직 '담쟁이포럼' 소속의 정치인이라고 해서 과연 [담쟁이]를 포함한 그의 시와 산문들이 특정 인물을 가리키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계에 몸 담기 이전에 쓰여진 특정 작가의 글이 학생들의 교육에 유해할 정도로 정치적 중립성에서 어긋난 것일까?  

 

 

 

 

 

 

 

 

 

 

 

 

 

 

 

 

 

 

 

 

 

사실 평가원의 도종환 시인의 작품 삭제 권고 논란 기사는 참으로 뜬금없는, 한편으로는 첫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그렇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실소를 머금케 하는 '웃음'을 대중들에게 선사해주었다. 대중들 앞에서 평가원 스스로 우스운 처사를 단행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원이 내세우고 있는 그 '정치적 및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기준을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에 적용한다면 굳이 도종환 시인의 작품만 권고할 필요가 있을까?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은 수많은 국어, 문학 교과서에 많이 실려 있으며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애송하고 있는 시작품 중 하나이다. 그런데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과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춘수 시인의 [꽃] 이외에도 다른 작품들은 생전 시인이 현직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는 물론이요, 지금도 중, 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김춘수 시인의 작품들을 국어시간에 배우고 있다.

 

 

 

 

 

 

 

   

 

  

  

 

 

 

 

 

 

 

 

 

김춘수 시인의 작품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쓴 산문 또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평가원의 검인정이 통과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18종 중에서 1963년에 이어령 고문이 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수록되어 있는 '풍경 뒤에 있는 것'은 총 1종('천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중 일부인 '폭포와 분수'는 총 3종('블랙', '상문','지학(박)')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평가원은 교과서 공통 검정 기준을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 영역에서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 그리고 '정치적·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거나 특정 종교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 내용이 있는지' 여부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중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국어 교과서보다는 오히려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문학 교과서에 평가원의 공통 검정 기준에 적용되어지고 삭제 검토되어야 할 작품들이 꽤 있다.

 

 

 

 

 

 

 

 

 

 

 

 

 

 

 

 

 

 

 

다음 소개하는 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카프(KAPE,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서 활동했던 월북 시인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 중 일부다.

 

 

 

(중략)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섰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섦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야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꼬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어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는 총 3종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디딤돌', '대한'. '민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인 '누이동생'이 감옥에 갇힌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서사시'다. 카프에 활동했던 시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는 그 당시 1920~30년대에 국내에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서사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노동 운동과 계급 투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감 있게 그려냈다.

 

시적 화자 누이동생의 오빠와 동생 영남이가 가입되어 있는 '피오닐'은 '개척자', '선구자'라는 뜻의 러시아어이며 '소련 공산당원'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생략된 시의 전반부에는 피오닐에 가입한 누이동생의 오빠는 노동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화로'는 '가족애'와 '불타는 계급 투쟁 의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을 담을 수 있는 화로의 속성은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한 집안의 가장인 동시에 계급 투쟁에 열성적이었던 공산당원으로서의 이미지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몰락해버린 지금, 고등학교 교과서에 왜 '계급 투쟁'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임화의 시를 고등학생들은 왜 배우고 있는가?  카프(KAPE)는 1920~30년대에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작작가들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당시의 퇴폐적, 감상적 문학예술 활동을 비판하고 신경향파 문학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인 사상을 주장, 민중을 같은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데 목적을 둔 창작을 강조하였다. 카프는 이념 지향의 차이점에서 비롯된 작가들 간의 분열로 인해서 얼마 못 가 와해되었지만 그 당시 문단을 지배하고 있었던 감상주의를 비판한 카프의 활동은 문학사적인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공산당'을 연상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를 문학작품에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월북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 전에 쓰여진 카프의 작품들이 현재 평가원이 말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성'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임화 등과 같은 카프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정치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편견을 전파하고 있으며 노동자(프롤레타리아)를 착취, 억압하는 자본가(부르주아) 간의 계급 갈등 및 차별을 뚜렷하게 강조,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초 홍명희의 대표작 <임꺽정>도 일부의 내용이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2종에 수록되어 있는데 나 또한 <임꺽정>이 수록된 문학 교과서('문원')를 통해 수업시간에 작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우기도 했다. 

 

'임꺽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10권이나 되는 이 소설이 단순히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낸 평범한 대하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도적 임꺽정의 이야기를 허구화한 이 소설은, 천민계층의 반봉건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양식을 다룬 데 그 특징이 있다. 또한 봉건 귀족을 우월성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천민계층을 이상화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집단의식을 현저하게 드러냈다. 벽초는 <임꺽정>을 통해 계급의 관점에서 식민지적 모순보다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겨냥하는 특수한 역사의식의 시야를 노출시켰던 것이다.

 

그는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좌익운동에 가담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지만 곧 바로 월북하여 부수상 등 주요 요직을 맡으면서 이제 막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김일성 공산당 정권 수립에 일조를 했다.

 

<임꺽정>이라는 작품 속에서 전체적으로 계급의식과 자본주의적 모순이 깔려 있다는 점 그리고 작가가 김일성 정권 수립에 큰 기여를 한 이력으로만 살펴본다면 애초에 10권짜리 <임꺽정>은 출판해서도 안 되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평가원의 기준으로 의해서 교과서에 삭제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참에 국방부는 60여 년 전에 발표된 벽초의 소설을 '불온서적'으로 추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금서목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가원이 이번 국어 교과서 검정에서 적용했다고 밝힌 세부 검정 기준을 살펴보면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불거진 평가원의 기준 논란뿐만 아니라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을 규정하는 기준 또한 그렇다. 명확힌 기준이 없다고 해서 평가원이 예전 1970년대의 공연윤리위원회(공윤)처럼 우리나라에 모든 문학작품들 그리고 지금까지도 쏟아져나오고 있는 신진 작가들의 문학적 창작물들을 대상으로 제목. 특정 구절만 가지고 ';정치성'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시시비비 따져가면서 검열을 하고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에 퇴출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다시 자유표현을 억압하는 시대로 역행하는 것이며 문화적 발전을 지체하는 요인이 된다. 문학에서 적정한 선에서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성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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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아주, 도종환 시인 글을 교과서에 넣어라 말아라
생쇼를 하더만요..... 기가 차서. 수준 미달입니다. 정말 생각할 가치가 없어요.
오늘 결국 한 발 슬그머니 빼는 꼴이란. 제일 꼭대기가 문제면 밑에도 모두 머저리가 되는걸까요?

cyrus 2012-07-11 20:30   좋아요 0 | URL
결국엔 어제 선관위까지 나서게 되었죠.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았던 논의를 선관위까지 가게 되다니 어제 평가원의 결정들이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2-07-1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관위가 나서기 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평가원 측에서 사람이 나와 도종환의 시를 삭제해야 한다는 소신을 매우 진지하게 펼치던데 하루만에 꽝! 아유~ 그 분이 다시듣기로 듣는다면 얼마나 민망할까요...이제 영원히 그 파일이 인터넷상에 남을텐데...여하튼 글조심 말조심...인터넷은 무서워요.절대 안 지워지니까요.

cyrus 2012-07-14 23: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진짜 민망하겠네요. 하여튼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내세우다가 그만 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어버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