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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LE - Single Spark (2disc)
박광수 감독, 문성근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지난 주 '노사관계론' 수업시간에는 노사관계의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한 시청 자료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 이어서 박광수 감독의 1995년 작「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게 되었다. 전태일. 그 이름 석 자는 수없이 많이 들어봤어도 짧은 인생을 자신과 함께 했던 노동법 책과 함께 화염에 온 몸을 던졌던 그 유명한 죽음 이외에는 정확히 그의 삶에 대해서 몰랐다. 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도 한 번이라도 읽은 적도 없었다.
지금 내가 수학하고 있는 '노사관계론' 수업은 경영학과 3학년 전공과목이다. 올해 대학교 3학년이라면 10학번, 즉 1991년에 태어났다. 영화를 시청하기에 앞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사관계론' 수업을 펼쳐지고 있는 강의실 안에 있는 10학번 중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2년 전에 전태일 사망 30주년을 맞아 그의 삶, 그리고 열악한 노동현실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으로 고발하고자 했던 뜨겁기만한 족적들을 다시 한 번 기리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는 시기라서 전태일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알리고자 했던 노동문제에 대한 현실고발은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 산업화 시대가 진행됨으로써 생겨나는 물질만능주의 팽배와 빈부 격차의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쏘공』이 지금까지도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할 정도로 읽혀지는 것처럼 전태일이 고발하고자 했던 현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故 조영래 변호사의『전태일 평전』 출간, 1995년에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그리고 최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사망 30주년에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조명받게 된 2010년을 제외하고는 '전태일'의 삶과 업적에 대해서 대중적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부각받은 적은 없었다. 단지 '비정규직'이나 극단적으로 파국에 치닫는 노사투쟁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면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이름을 빌어 노사관계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켜주는 데 그치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게 되었다. 정작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절규에 가까운 현실고발적인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주지 않은 채 말이다.
'전태일'에 대해서도 모르더라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제일 기억 남는 장면을 꼽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이구동성 전태일이 분신하게 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온 몸에 화염에 휩싸이는 전태일을 목격했을 뿐, 전태일이 그 당시 자본가들 그리고 노동문제에 무관심한 채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무지의 관객들에게 향하는 규탄의 목소리, 더 나아가 그가 왜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는 이전의 과정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잊혀져 버리게 된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청계천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22살의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보장하라"를 외치며 시장 한가운데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청년은 다음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든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노동자'는 없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는 '노예'가 있었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가 있었을 뿐이다. 전태일이 '불꽃'이 된 순간 모든 게 변했다.
1970년은 박정희 정권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였다. 표면적으로는 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개발에 따른 경제성장은 많은 노동자들에 인간적 삶을 담보로 진행되었던 보이지 않는 착취에 의한 성장이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당시 암묵적으로 이루어 졌던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노동현실을 죽음이란 수단으로 고발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의 청계천에서는 닭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열서너 살의 어린 여공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14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한참 성장할 나이에 여공들이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작업장에서의 일한 대가는 고작 50원뿐이었다. 돈을 벌어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전태일의 가슴엔 어린 여공들의 현실이 언제나 남아 있었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점심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 여공들을 위해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에서 미아리까지 걸어 다녔던 청년이었다.
어느 날 피를 토하며 쓰러져 그냥 버려지는 여공을 보면서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뜬다. 영화 속에서는 비록 짧게 지나갔지만 전태일은 피를 토하면서 몸이 망가질 때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처지에 비탄한다. 특히 양손에 검붉은 핏덩어리를 씻어내지 못할 정도로 공장 내 수도시설마저 갖춰지지 않은 현실 앞에서 절망에 찬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러한 소녀의 절망을 몰래 훔쳐보는 전태일의 장면은 그가 노동 개선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는 중요한 극적인 장면일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청계천 노동현장에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법적으로 자신들의 노동시간과 휴일 시간, 건강 지침이 마련돼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어렵사리 구한 근로기준법 책을 밤새 읽고 또 읽었다.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 밤새 읽어도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근로기준법 조문을 해석하는 게 유일한 하루의 낙이었다. 이후 생각이 맞는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를 결성하기도 하고, 노동청에 건의를 하며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사업장 안에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며 노동청과 신문사를 찾아가지만 전태일과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분신이란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 당시 인간다운 대접도 못 받는 노동자들에 현실을 고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70년대의 노동자들은 성장의 결과에 대한 분배 및 재분배에서도 정당한 수혜를 받지 못했으며,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적 대우 또한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렇듯 전태일의 외침은 바로 산업화의 위용에 가려지고 억눌려온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으며, 현실이 참혹했던 만큼 그 절규에 담긴 아픔과 공감, 그리고 설득력 또한 결코 작지 않았다. 전태일이 외쳤던 '8시간 노동'과 '휴일 보장'은, 일하고 또 일해야 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였다. 노동운동가이기에 앞서 사람답고자 했던 한 인간의 '인간선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고 또 노동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물론 노동환경은 달라졌다. 국민소득이 오른 만큼 노동자의 임금은 올랐다. 적어도 배를 곯는 사람은 대부분 사라졌다. '보릿고개'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도 완화됐다. 근로기준법이 부분적으로 정비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허울 뒤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는 짙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한층 각박해졌다. 해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힘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더 힘든 세상이다. 전태일이 우리에게 외치고자 했던 그 목소리를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부유한한 환경에서 물질적 도구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닿지 않는 외침을 온몸으로 불태운 그의 비장한 투쟁은, 비장해야 할 순간에 더없이 온순한 우리들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남긴다. 비록 그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목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중들이 '전태일' 이름 석 자 그리고 그의 강렬했던 죽음보다는 그가 우리에게 외쳤던 그 목소리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