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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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그대가 흘린 땀의 피,

  노동의 땀,

  노예 생활의 노동,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중략)

 

 

  -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아프리카의 참상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케빈 카터 「독수리와 소녀」1994년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던 아프리카 수단. 카메라를 목에 건 당신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비쩍 마른 여자아이가 보급품을 받기 위해 급식센터를 향해 네발 짐승처럼 기어가고 있고, 그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서 있다. 독수리의 눈초리는 노골적이다. 얼른 소녀가 기력을 잃고 쓰러지길 바라는 포식자의 시선이다. 게걸스러운 독수리는 소녀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줄곧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밟고 있다.

 

아프리카 기아 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수단 남부로 들어간 남아공 출신의 케빈 카터는 우연히 기운을 잃고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녀 뒤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 다음 그는 독수리를 쫓아내고 이 소녀를 아요드 식량센터로 데려갔다.

 

카터가 찍은 사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반향은 대단했다.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편지가 신문사로 폭주했다. 이듬해 카터가 권위 있는 사진작가들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을 받으며 문제적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사진가에 대한 비난의 여론 또한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굶주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은 채 사진 촬영을 단행한 작가의 선택에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 작품이야말로 과연 퓰리처상의 수상 취지에 부합되는 사진인지에 대해서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카터를 독수리 맞은편에서 비슷한 눈높이를 한 채 쪼그리고 있었을 카터 또한 독수리와 다를 바 없는 모리배라는 인신공격성 비난이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져만 갔다. 그칠 줄 모르는 대중의 냉담한 비난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카터는 결국 퓰리처상을 받은 지 두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Black & Blue, '아프리카'에 대한 이중적 시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끔찍한 광경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질병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며 정치적 내전으로 인한 잡읍은 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모습들은 케빈 카터의 사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사진들 또는 그러한 장면을 TV를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무덤덤해 져서 그 때만큼 충격을 받지 않는다. 비슷한 장면을 계속 봄으로써 신선함과 충격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이미지 중독' 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 대중의 시선은 '이미지 중독'에 빠져 있다.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과 관련된 일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지갑 안이나 옷 주머니 구속 어딘가에 있을 단돈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 2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성금한 총 금액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모 건설기업 CF '아프리카' 편 장면 중에서

 

 

 

 

'이미지 중독'에 의한 아프리카의 시선 및 인식은 단순히 아프리카의 비극을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 것만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는 항상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를 넘어 신흥시장으로, 현지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암흑대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5~7%대의 성장세를 이루며 '지구의 마지막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은 제2의 중동으로 떠오르는 아프리카 공략을 위해 원조 및 경제 협력 카드를 제시하며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이제 우리나라도 아프리카 진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작년에 모 건설기업에서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 사례를 토대로 한 광고가 제작되었다. 모 건설기업의 '아프리카' 편 TV 광고는 자사기업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통해 남들과 다른 생각과 도전정신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광고 배경음악으로 아프리카 유명 어린이 합창단 '지라니 합창단'의 잠보(JAMBO)라는 곡을 삽입했고 광고음악 사용료는 지라니 합창단 어린이들을 위해 전액 후원했다는 점에 있어서 타 기업 광고와 차별화된 방식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TV 광고 한 편 덕분에 기업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공적인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아프리카는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자원이 많은 시장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또 국내 기업이 참여한 개척 사업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광고 카피처럼 아프리카의 미래가 밝아지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모 건설기업 이전에도 수많은 세계의 기업들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아프리카의 땅을 '수많은 자원의 보고'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 곳에서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해주거나 향상시켜줄 수 있는 국제개발적 사업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굴지의 글로벌 은행들마저도 자본창출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아프리카를 눈여겨 보고 있다. 세계 경기 이중침체 우려 및 유로존 재정위기의 악영향을 받고 있는 글로벌 은행이 아프리카 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JP모건, 스탠다드차타트(SC) 등과 같은 글로벌 은행들이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손실을 피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금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가난,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많은 기아의 나라, 끊임없는 발생하는 내전이 일어나는 암흑(Black)의 대륙'이면서도 '풍부한 자원이 있는 블루(Blue)오션'이라는 서로 상반되면서도 이중적인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블랙 아프리카'를 만들어 낸 서구인들의 편협된 인식

 

요즘 인터넷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 중에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다'와 '슬프다'라는 형용사를 조합한 단어다. 즉 어떠한 상황이나 장면에 대해서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다라는 뜻이다. 우리를 포함한 서구인들이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시선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웃프다'.

 

정작 아프리카를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원이 넘치는 무한한 대륙으로 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 낙후되면서도 미개한 지역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아프리카를 '믿을 수 없는 병으로 신음하는 국가'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프리카라는 대륙에는 애초부터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의 망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속에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무시하는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사업 진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제국주의를 내세운 19세기 정치인들의 사고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실 지금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된 인식들이 만들어 낸 함축적인 암흑의 결정체다.

 

아프리카인을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라고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부터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키라인이 최초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중 태양신의 아들인 파에톤이 혼자서 태양마차를 모는 장면에서 '아이티오피아(에티오피아)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이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이유를 파에톤의 서투른 태양마차 운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이윤기 역, 민음사, pp 73 -

 

 

그리고 17세기부터는 검은 피부색이 생기게 된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문화적 진보를 기준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입증의 시도 역시 등장했다.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리카인들을 퇴화된 인종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다. 검은 피부가 인종적 퇴화의 증거라는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까지 이어져오게 되면서 열등한 아프리카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로 변화되었다.

 

또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미개한 인종의 역사일뿐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도적으로 세계사에서 삭제시키려고 했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구전 전승되는 형식이라서 이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아프리카의 역사 존립 자체를 무시하였다. 다시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대목에서 잠시 다시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마치 유럽 탐험가들이 도전 끝에 얻어낸 전리품처럼 묘사된다. 기존 세계사에서는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는 애써 기술할 필요가 없는 분야로 취급됐다.

 

이는 헤겔이『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를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한 데서 정점에 이른다. 이후 아프리카 인을 성경의 족보에서 지워 유럽의 인종적·종교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지키려 했다. 제1차 대전 무렵엔 지능지수 결과가 더해져 흑인들은 저능하고 미개하며 야만적이라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했다.

 

 

 

 

 메마른 아프리카에서도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폭력사태와 그에 따른 난민들, 각종 전염병에 신음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기아의 땅, 그곳이 아프리카인 것이다. 대부분 아프리카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그저 감상적인 동정주의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익과 헤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보물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아프리카를 안다고 하기에는 교류의 양이나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 오랫동안 서구 국가들이 제공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를 통해 전해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서구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자원의 보고', '미래를 위한 마지막 거대 소비 시장'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상처들은 고무와 금 그리고 노예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했던 서구 열강들의 흔적들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 역시 경제적 논리를 앞세운 것으로 과거 서구 열강들의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아프리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는 경제적 진출은 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해적활동을 조금 자세히 생각해봐도 서구의 경제적 논리가 얼마나 아프리카에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실 내전이 장기화 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내전 국가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군들은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대부분 다이아몬드 같은 자원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채취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확보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무기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즉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용하는 무기 생산국들이 있기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장기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내전의 악순환은 아프리카 전체를 병들게 할뿐더러 아프리카인들의 피와 눈물을 온 대륙 전체에 적시게 만들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 어린이들은 굶주리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를 구입하고 내전이나 종족 간 전쟁 또는 영토 쟁탈전을 위해 쓰는 돈은 넘쳐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차라리 식민통치 시대가 오히려 더 살기 좋았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에서의 경제 발전 및 민주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의 부(富)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이 많지가 않다. 작년에 리비아에서 불기 시작한 재스민혁명으로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해왔던 카다피가 축출당했한 이후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비극은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빈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명목상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이 되었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메마른 아프리카 대륙에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쟈스민혁명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이 당면한 현실적 과제는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 식민지적 구태를 벗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변화의 흐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자유'라는 것은 단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유의 맛이 달콤한 만큼 쓰디쓰기도 하는 인고의 지혜를 알고 있어야하며, 초조하지만 꿈이 성취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유롭고 옹감했던 과거의 역사를 잊은 채 현재는 암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드렝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의 끈을 끊고 끈질기게 일어설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서는 가운데 자유의 참의미를 깨달아, 그 열매 속에 자유를 채워 갈 늘푸른 나무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아프리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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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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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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