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요즘 같은 계절은 딱 시집 읽기에 좋다. 꼭 낙엽과 함께 우수의 감상이 사로잡히는 가을에만 시를 읽으란 법은 없다. 봄이라는 계절도 때때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해주기도 한다. 이제 곧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할 때 오랜 겨울 추위동안 움츠린 채 메말라가던 감정을 시집으로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즘 시집을 읽긴 한데 아직 '봄'과 관련한 시를 단 한 편도 접해보지 못했다. '봄'과 어울리는 멋진 시나 구절을 발견하면 개인적인 감상문을 쓰고 싶었는데 여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봄'이라고 먼저 떠오르는 시는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뿐이다.

 

이 시를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는 나온지도 무척 오래됐다. 일제 강점기 시기인 1920년대쯤에 나온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짤막한 시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이 시를 봄이라는 계절을 고양이로 비유한 내용으로만 볼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이 시 한 편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당시 시단을 놀라게 할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그 당시 문단의 입장에서는 고양이를 봄과 연결시키는 감각적인 연상이 참신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낭만주의 시단과는 차별화된 정서와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오늘날까지에도 새로운 시적 경지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를 보게 되면 시적 분위기는 봄의 기운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생기발랄하다. 새로운 생명의 약동이 시작되는 봄 특유의 역동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봄'을 연상시키는 유일한 시로 내 머리 그리고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가 단순히 감상적이라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시의 분위기처럼 봄은 모든 사람들들을 즐겁게 해주고 얼어붙은 감정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해가 뜨면 대지에는 양지와 음지가 생기게 되듯이 봄은 우울과 애상감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특히 이장희라는 시인의 생애가 그러했다. 국권이 상실된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생의 관계들은 유약하기만했던 시인의 감정을 괴로움의 나락 속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것은 젋은 시인의 생를 단축시켜주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시인 이장희는 1900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11남 8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실상 시인은 어린시절을 그리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에 소속된 관리였고 어머니는 시인이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이후 계모 밑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의 불화 관계가 깊어지게 되었다. 부유한 관리였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라고 볼 수 있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친이 중추원 소속 관리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다.가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남 이장희를 그의 아버지는 자신처럼 조선총독부에서 일할 수 있는 명망 있는 관리가 될 것을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아버지의 제안에 한 번도 따르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시인은 극도로 빈궁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불화 관계보다 시인을 괴롭혔던 것은 바로 친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괴로운 기억이다. 어미니의 때 이른 죽음은 시인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상처로 자리잡게 되었을 뿐만 우울과 에상으로 가득찬 섬세한 감성을 형성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교우 관계도 그리 폭넓지 못했다. 그와 친했던, 지금도 잘 알려져 있는 문학가 몇 몇을 꼽으라면 양주동, 이상화, 현진건, 오상순 등이 있다. (이상화, 현진건 역시 대구 출신이며 이장희와 함께 대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대표적인 문인들이다) 문인들의 교류가 무척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생전에 시인으로서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시집 한 권도 출판해본 적이 없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시인의 삶은 더욱 궁핍하게 되었고 이미 병들고 지쳐버린 시인의 감정은 피폐해져만 갔다. 상실된 주권의 나라에서 살아야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 절망과 허무감에 빠졌던 젊은이들은 어떻게든 그러한 괴로움의 정서를 떨쳐내버릴 수 있는 삶의 해방구를 찾으려고 했다. 이장희도 마찬가지였다. 억눌려 있는 생의 절망감과 허무감을 시를 통해서 표출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도 허사였다. 결국 이장희는 29살의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로 음독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직전 그는 기괴한 행동을 보였다고 하는데 2, 3일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배를 깔고 엎드려 수없이 금붕어를 방바닥에 그려놓았다고 한다.

 

이장희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시를 '봄은 고양이로다'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꿈'이라는 제목의 시도 썼는데 '봄은 고양이로다'의 시적 분위기와는 무척 상반된다. '고양이의 꿈'에서도 봄 기운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봄 특유의 우울함과 허무함이 묻어 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생이 일찍 마감될 것이라는 예감했던 것일까?  검은 그림자의 칼날에 베인 '푸른 고양이'는 시인 본인를 상징하고 있다. 푸른색은 우울함을, '멀리서 찾아오는 검은 그림자의 칼날'은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를 연상케 한다.  

 

 

   고양이의 꿈


                                                         이장희

 

 


 시내 위에 돌다리, 달 아래 버드나무

 봄 안개 어리인 시냇가에, 푸른 고양이

 곱다랗게 단장하고 벗겨 있소, 울고 있소.

 기름진 꼬리를 쳐들고

 밝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지요.

 푸른 고양이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스르르

 올라가 버들가지를 안고

 버들가지를 흔들며 목놓아 웁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칼날같이 은같이 번쩍이더니,

 푸른 고양이는 볼 수 없고,

 꽃다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저 쓸쓸한 모래 위에 선혈만 흘러있소.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수가 많지 않은 시에는 유독 '봄'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봄은 고양이로다'를 제외하면 요절시인 이장희에게 '봄'은 허무와 상실의 계절이었다. 29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동안 젊은 이장희는 '봄'이 주는 긍정적 양지(陽地)에 가 보지 못했다. 희망, 생성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봄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이장희에게 '봄'은 절망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살아가면서 행복과 사랑 한 번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시인은 그나마 고독함과 우울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룩한 유방'뿐이었다. 자신의 쓸쓸한 심령으로 인한 '무심한 식욕'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잠시일뿐. 이마저도 하늘 위로 쏜살같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이장희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볕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
 
 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애구)의 정(정)이 눈물 겹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이도다

 

 이 무심한 식욕
 이 복스러운 유방...

 쓸슬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러지어다.

 푸른 하늘에 날러지어다.


 

 

 

에드거 앨런 포, 샤를 보들레르, 장 뤽튀스 그리고 이상. 이들의 공통점은 빈곤한 삶을 살다 갔으며 세상은 남들보다 앞서면서도 독특한 천재성을 알아주지도 못했다.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취급 받았으며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삶을 저주하다가 일찍 이승을 떠났다. 무엇보다도 이 네 사람의 관계를 확실하게 묶어주고 있는 것이 바로 훗날 자신들의 이름을 빛나게 해준 시(詩)다.

 

이제부터 저주받은 시인의 리스트에 이장희를 추가해야 한다. 이장희 역시 앞에서 언급한 네 명의 시인 못지 않게 정말 불행한 삶을 살다 갔다. 아니, 오히려 이들보다 더 죽어서도 여전히 불행의 그림자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네 명의 시인들이 비해 생전에 남긴 시가 많지 않다. 시대를 앞서간 섬세한 감상을 강조하는 문학성을 세상 앞에서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장.희'. 이 이름 석 자의 요절시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대구 출신 사람들이라면 제일 먼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가 떠올리기 쉽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도 문학적인 면모가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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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04-0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봄과 고양이가 어울려져 노는 게 마냥 아름답네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시, 참 좋아했는데... 시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군요.(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나머지 두 편의 시 소개도 고맙습니다. 이김에 시집을 빌려봐야겠네요. 잘 보았어요!
덧) 사진이 너무 귀엽네요. 보자마자 꺆

cyrus 2012-04-28 16:16   좋아요 0 | URL
티티카카님, 제가 이번 달 내내 바쁜 관계로 뒤늦게 답글을 달게 되었네요.
아쉽지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이장희 시집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몇 편의 시는 국내 시인들의 대표적인 시들을 모은 시집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수준이라서 시인의 문학적 가치가 제대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

2012-04-07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8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4-2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을 자주 쓰셨는데
최근 전혀 글을 볼수가 없군요.
행여 그동안 알라딘을 뜨겁게 달구었던 일부의 내용이
마음에 걸려있는 침묵이라면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놓치는 것은 독자인 제게 손해가 크답니다.
너무 개의치 마시고 글을 써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마음이 딴데로 달아나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시기를....

당신의 애독자 차트랑공 드림

cyrus 2012-04-28 16:21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제가 이번 달 내내 시험공부하느라 바빠서
한동안 서재 블로그를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

사실 뒤늦게서야 오랜만에 서재에 와보니, 제가 안 들어온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더군요. 하필 제가 호감적으로 보고 있는
이웃분들이 논쟁에 휘말려 있어서 안타깝네요.

그래도 랑공님이 저를 생각해주셨다니 정말 기쁘면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시험도 끝나겠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왔으니
오랜만에 글도 쓰고 다른 이웃분들이랑 교류를 하려고 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일교차가 큰 날씨인만큼 감기 조심하세요 ^^


차트랑 2012-04-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험중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생들도 중간고사 시험을 치루는게 맞는데 ㅠ.ㅠ

워낙 고등학생들의 시험에 몰두하다보니
고등학생이 아니면 시험이 없는 줄 알았나봅니다^^

선생님을 뵈러 대전으로 내려 갈때면
모든 분들이 대전에 가고있나보다 생각하게되더라니까요^^
참으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저도 어쩔수가 없는 거 있죠..ㅠ.ㅠ

cyrus 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다 소중한 분들인데 말이지요...

책을 읽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에요^^
부럽습니다.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