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들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 있다. 친척에서부터 친구들 그리고 온라인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몇 몇분들 또 교수님까지, 사진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스토리에 간단한 댓글 또는 문안인사를 남긴다.
이렇다보니 항상 카카오스토리 어플을 열면 제일 먼저 내가 친구추가했던 사람들이 업데이트한 스토리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매일 카카오스토리에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사촌동생이 있다. 이번에 고등학생에 입학하게 된 여자아이인데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크게 재미 들린 모양이다.
어느 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스토리 업데이트에 5~10분 간격마다 사촌동생의 스토리들이 쭉 올려져 있었다. 나는 장남삼아 카카오스토리 하는 것을 줄이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차마 거기에 댓글을 달 수가 없었다. 동생이 쓴 글들이 대부분 짤막하면서도 학교 생활에 대한 불평,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나도 입원해서 학교 안갔음 좋겠다 ㅇㅇ
방과후 진짜 싫다 --
방과후째고싶엉ㅠㅠㅠㅠ 집에가고싶엉
아 학교개짜증나 -- 수학진짜때리고싶다
학교에서 이따구로 가르치면 학교 갈 이유가 없지
아 진심 짜증터진다 자꾸 욕나오네
글의 내용이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게 싫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며칠동안 쭉 사촌동생이 남긴 스토리 글들을 관찰(?)해봤는데 동생이 스토리 글에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와 말이 '불만', '짜증', '화난다', '싫다' 가 제일 많았다. 이런 단어와 말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날 때 사용한다. 그동안 꾹 눌러져왔던 불만과 분노의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대화 속에서 표출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이런 의미상 좋지 않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정확한 뜻도 모르는 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비속어를 청소년들의 입에서 많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다보니 비속어는 단순히 또래에게 하는 장난스러운 말이 아닌, 자신보다 나이가 높은 웃어른에게 반항을 한다거나 분노를 표출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돌발적인 반항심과 분노로 인해 어른 앞에 해서는 안 될 비속어를 자신도 통제하지 못한 채 내뱉고 마는 것이다. 결국에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불만 섞인 비속어가 입 밖에 자주 나온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청소년들의 잘못된 심리상태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이 청소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
좋은 명문대, 아니 안정된 삶을 위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수능시험 공부에 3년동안 매진해야 한다. 3년동안 노력한 공부의 결실은 1년 중 단 한 번의 시험에 의해서 당락이 결정된다. 자신이 원하는 고득점을 받게 된다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지만 반대로 목표했던 점수에 못 미친다면 3년 동안 쌓아놓은 공든 탑이 너무나 쉽게 와르르 무너지듯이 큰 절망감에 휩싸인다. 여기서 수능시험을 치뤄지고 난 후의 수험생들의 반응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갑은 재수를 선택함으로써 비용이 더 들더라도 공부 과정을 반복한다. 을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점수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려고 한다. 대학의 전공이 자신의 취미에 적합한 지 아닌지는 안중에 없다. 어떻게든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고졸자의 취업 우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수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름 듣도 보지 못한 지방 변방에 위치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병은 원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자신의 수능점수만으로는 도저히 갈 만한 대학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그는 대학에 입학해서 몇 년 동안 더 공부하는 것보다는 먼저 직장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고졸자를 채용해주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이렇다보니 병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정은 앞에서 언급한 세 사람에 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고통스러워하고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인생의 허무함을 견뎌내지 못해 옥상 위에서 떨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다음 날에 뉴스에는 수험생의 투신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갑, 을, 병, 정. 이 네 사람이 취한 삶의 태도와 방식으 서로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경쟁과 성적을 강조하는 입시교육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경험에 인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행복하지가 않다. 초, 중, 고, 총 12년 동안 '공부'만 해서 정작 이들의 손에 쥔 것은 초라한 점수가 적힌 수능 성적표일 뿐이다. 그 길고 긴 노력의 과정이 평가받는 것이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허무하기만 하다.
이런 불합리한 교육제도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공부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의 의미도 변질되었다. 단순히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가는 데 실용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성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광주의 모 여고에서 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빠진다는 이유만으로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자퇴서를 강요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피해 학생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것보다는 조용한 독서실에서 공부하기를 원해서 담임교사에게 정해진 기간에 자율학습에 불참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사를 전화상담을 통해서 피력했다. 그러나 학생에게 돌아오는 것은 요구에 수긍하기는커녕 되려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려면 차라리 자퇴서를 쓰라고 답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광주학생인권조례에도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학습은 강제적으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몇 고등학교에서는 법규의 내용을 피해 강제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담임교사 입장에서는 학기 초에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의미로 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꼭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능시험에서 좋은 점수 받을거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학생이 원하는 의사대로 독서실에 공부하는 것이 전혀 문제될 거리가 없었다. 오히려 인권조례의 사항대로라면 학생의 자율적인 학습권을 보장해줘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부를 학교 내, 그것도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교내 규정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교육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가 단일적으로 정해진 시간 규칙은 학생들의 학습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정해진 틀 안에서 공부를 하루 내내, 그것도 3년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해야될 판이니 학교 자체를 하나의 '감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교육 세 가지
그러나 학생들이 공부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은 비단 학교 책임만은 아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데 투자를 하는 부모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말 그대로 내부의 적인 셈이다. '감옥' 같은 학교에서 하루의 절반을 공부하고 난 뒤에 학생들은 집이 아닌 입시학원으로 향한다. 얼마 안 되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외우고 문제를 푸는 방식만 되풀이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원 유명 강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이범은 절대로 자녀들에게 해서는 안 될 사교육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학원 강사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입시전문가답게 그의 세 가지 경고는 이제 막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 둔 부모라면 귀 기울여도 좋다.
첫째, 초등학생 시기에는 선행 학습을 절대로 시키지 말 것. 물론 공부하는 데 있어서 선행학습의 효과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선행학습'의 문제점은 일관적으로 반복하는 데 그치는 과정이다. 학원에서 선행 학습으로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면 반복 효과로 인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지나친 선행 학습으로 인한 반복 학습은 오히려 학생의 학습 유도를 저하시키게 되는 역효과가 있다. 처음에 본 드라마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 드라마를 여러 번 재방송으로 보게 된다면 그 때 봤던 재미와 흥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부하는 내용도 너무 반복되면 공부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그는 이것을 '수동적 학습' , '관광식 공부'라고 비유하고 있다.
둘째, 초등학생 때 선행 학습으로 공부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종합학원에 다니지 말 것. 일반적으로 종합학원은 학생들의 공부 계획을 설정해주고 학생들은 학원의 계획에 맞춰서 수동적으로 학습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학습이 유지된다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형성할 수 없다. 특히 중학생이 되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해지게 되는데 이 시기까지 종합학원에 의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자신이 배우고 있는 학습 내용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된다. 자기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남이 정해준 공부가 더 익숙해진다.
셋째, 고등학생들은 문제집만 열심히 풀지 말 것. 특히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들을 풀다 보게 되면 항상 처음 접하는 문제들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주도학습 과정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에만 치중하게 된다. 특히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시험제도 때문에 학생들은 답만 찾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매일 한 손에 들고 다니면서 풀고 있는 문제집 뒤에는 정답과 해설집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스스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이해하면 좋은 공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공부 방법이 익숙치 못한 학생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문제집 뒤에 딸려 있는 정답에 먼저 본다. 그러고는 정답 해설집에 소개된 해결 과정을 머릿속에 암기한 채 학습한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이 매년 수능에 등장하게 되는 신유형의 문제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범 씨를 이러한 학습 과정을 '정답 중독증'이라고 비유했는데 말 그대로 학생들은 공부할 때 너무 정답에 의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보충'의 성격이 강하다.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만 '0교시 제도'와 '야간자율학습'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겨진다. 사교육 더 시키기를 경쟁전략으로 선택하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를 무조건 많이 시키게 된다. 이러한 부모들의 강요에 자녀들은 공부에 압박감에 느끼게 된다. 결국 사교육비 지불능력과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교육 본래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돌변한다. 계층 상승의 희망이 아니라 계층 고정이라는 좌절의 빌미로 작용한다.
학생에 대한 관심과 진실한 애정이 결여된 사교육은 대부분 공부 부담만 키울 뿐이다. 선생님은 학생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공부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의욕을 보일 수 있는, 그렇게 정서적으로 격려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자발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학생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교육은 대부분 부모의 대리인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부모는 비싼 돈 들여서 하게 된 사교육인데 효과를 못 보면 본전심리까지 발동해 자녀들에게 더욱 공부에 대한 강요를 가하게 된다. 자신의 의견은 묵살한 채 사교육을 강요당한 자녀는 부모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불만과 원망을 끝내 표출하지 못한 채 방치한다면 폭력 또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는 공해
가스펠 가수로 유명한 홍순관은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닌, 그저 삶의 목표만을 위해서 공부밖에 모르고,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하는 사회제도는 그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는 공해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습득 정도가 아니라 검소한 태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남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삼갈 거란 말이지. 공부 잘해 출세하려고 선거에 몸을 던진 사람들 약력을 읽어보면 다들 일류대학에 나왔잖아. 그런데 막상 자리에 오르면 하는 짓들이 제 배 채우고, 남 괴롭히고, 나라 망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과정을 밟지. 너무 진부하고 뻔해서 식상할 따름이야. 왜 그럴까? 왜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올까? 그래, 바로 공부라는 공해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공부는 본디 숲처럼 다양하고 푸르고 맑고 신선한 것인데, 오염이 되어 그런 거야.
- 홍순관『춤추는 평화』중에서, pp 103 -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회 교육제도, 아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했던 것 또는 지금도 하고 있는 이 공부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공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미 공부로 인한 공해는 수험생들이 있는 교실에서부터 발생하고 있다. 단지 일류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출세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면 급우의 학습노트를 훔친다거나 심지어 일부러 분실하게 할 정도로 교실은 영화 속 '배틀 로열'처럼 경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교실 속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게 되면 겸손, 협력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공부가 만들어버린 공해는 우리의 삶을 비뚤어지게 만들거나 심하면 질식시키게 만든다.
제대로 되지 않는 공부로 인해서 생긴 사회의 공해를 말끔하게 걷어낼 수는 없지만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게 되듯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그리고 실천이 있다면 이전보다 좀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비록 이것이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면 사회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