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 37인이 생각하는 마음, 생명 그리고 우주
에두아르도 푼셋 & 린 마굴리스 엮음, 김선희 옮김, 최재천 감수 / 이루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의 '과학' 콤플렉스
SERI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핵심인재가 2020년까지 약 9만명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향후 국가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의 석. 박사급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부족한 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과학기술 핵심인재 10만 양병설'이 제기되었다. 우리나라의 9대 미래 유망산업 분야가 발전되기 위해서 연간 1만명 규모의 과학기술 핵심인재를 추가 공급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을 수립해야 하고 기초, 원천, 융합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기초 분야의 신속한 학위 취득이 가능한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2012년 2월 22일)
과학기술 핵심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연간 1만명의 석. 박사급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제안으로서의 취지는 좋으나 과학에 대한 기피하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는 이상 목표 연도까지 10만 명을 육성한다는 것이 조금은 힘들어 보인다.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되면 이에 대한 세계적인 공로로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 의학상을 수여한 세계적인 과학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업적을 낸 과학자가 등장하게 되면 어김없이 언론에서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노벨상 수상자 발표 기간이 다가오는 시점에 맞춰 해외 유명 과학자들로부터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수준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학술기관이나 잡지에 당당히 한국 출신의 과학자의 연구 결과 또는 논문이 발표되는 사례가 있었으며 한 번은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자주 인용되고 있는 논문으로 한국 출신의 과학자가 쓴 학술논문이 선정될 정도로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노벨상에 인연이 없는 것일까? 여기서 반대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우수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꼭 노벨상을 수상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노벨상'은 뛰어난 업적을 남겨야지만 받을 수 있는 명예로운 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무조건 어느 분야에 있어서 '최고'가 되어야하며 '과정'보다는 '목표', '결과'에 집착하는 특유의 한국식 사고는 노벨상의 가치를 일반인도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라면 꼭 받아야 할 명예로운 훈장쯤으로 여기며 그것이 과학자들이라면 한번씩 꿈꾸게 되는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매년 말에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상 수상자 명단 발표에 촉각에 곤두서게 되고 한국인의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없으면 모든 국민 모두 아쉬워하는 나라가 또 대한민국이다. 한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히 과학기술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기초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낮은 인식 그리고 이공계 기피 현상만 증가하고 있으며 점점 과학자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 등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7인의 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과학자'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떠올릴 것이다. 과학자가 장래희망으로 꼽은 어린이들을 제외하면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차지한다. 연구 성과에 집착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실험 조작도 하고 마는 비양심적인 학자 그리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것이 아닌 순전히 자신만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과학을 연구하는 괴짜로 보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박사 사건는 우리나라 첫 노벨상을 기대했던 대중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본의 아니게 황우석 박사, 단 한 사람에게만 실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과학 연구에 이바지하고 있는 다른 과학자들마저도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소설, 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지적이라기보다는 엉뚱한 연구에만 골몰하면서 은둔하는 괴짜 또는 인류의 평화를 방해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과학자에 대한 인식은 비단 대중들만 잘못한 것이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할 줄 몰랐던 과학자들의 태도는 오히려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직업소명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을 기피하는 성향을 부추기고 말았다. 제임스 왓슨은 자신의 자서전『이중나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과학자들의 본 모습들이 공개했고 에르빈 슈뢰딩거, 칼 세이건,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은 뛰어난 글쓰기로 대중들을 위해서 과학의 세계를 소개하는 기여를 했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하도록 노력한 과학자들이다. 그리고 대중들과 소통할 줄 알았으며 그들이 왜 과학을 어려워하게 여기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과학자처럼 사고하기』에는 그동안 대중들이 접할 수 없었던 과학의 흥미로운 단면들로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대중적 과학 프로그램 연출자 겸 사회자인 에두아르도 푼셋이 인터뷰어로 나서 세계적인 과학자 37명의 생생한 육성을 담아냈다. 리처드 도킨스, 스테판 제이 굴드, 제인 구달, 올리버 색스 등 37명은 자신의 연구를 통해 얻은 심오한 통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주의 본질, 생명의 진화, 인간의 마음 등 다양한 분야를 통틀어 현대 과학의 신비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 제목만 본다면 독자들은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은 일반인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논리적이며 합리성으로 무장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37명의 과학자들을 보게 된다면 '과학자의 사고방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일단 여기서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과학에 무지한 대중들을 기만하는 지적 허영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대중들이 알고 싶어하는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물론 수준 높은 인터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푼셋의 진행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연구영역의 범위 안에 갇혀버린 과학적 사고를 지향하지 않는다. 폐쇄적인 과학적 사고를 벗어나 과학의 발전을 인류의 삶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야말로 곧 '진보'라는 인식을 반박하고 있다.
지능심리를 연구하고 있는 니콜라스 매킨토시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유사하게 진화를 진보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인간을 세상의 중심으로만 보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평생 침팬지 연구와 영장류 보호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제인 구달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관점은 오늘날에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탈 인간중심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국 우리를 동물계에서 분리시키는 경계선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개성과 사고, (가장 중요하게는) 감정을 지닌 유일한 존재가 아니에요.
(제인 구달, pp 75)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개미 연구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을 지구를 파괴하는 운석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파괴를 남발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고 있다.
지금 인간의 활동은 (종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으며 우리는 '여섯 번째 멸종'의 첫 단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많은 글에 다루는 '병목현상'이란 이런 것입니다. 병목은 과다한 인구입니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너무 많이 파괴하므로 다른 종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전 세계 사람들이 소비하는 음식과 자원의 양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 현상은 1인당 소비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인구와 개인적 소비의 증가가 합해지면 이른바 세계의 '자연자본'을 고갈시킵니다.
(에드워드 윌슨, pp 87)
인간, 거대한 푸른 지구에 존재하는 그저 작은 동물
"하늘은 캄캄하고, 지구는 푸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한없이 아름답다."
1961년 4월 12일 소련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찬탄했다. 가가린의 말은 인간이 보지 못했던 거대한 땅덩어리와 바다로 이루어진 지구라는 존재에 대한 경의에 찬 감탄사가 아니다. 인간은 이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 안에 살고 있는,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작은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게해주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은 지구상 생명의 한 종에 불과하기에 겸허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가이아 이론을 제시한 제임스 러브록의 말은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닌 그저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일하게 아는 사실은(아주 중요한 점인데)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우주의 일부라는 것이 큰 행운이라는 것입니다.
(제임스 러브록, pp 340)
과학자들은 '과학'만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오만과 지적 허영심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겸손할 줄 알며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기여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전문가의 오만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과거처럼 전문가라는 권위를 이용해 일방적인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대중들도 인터넷에서 얻은 조각 지식으로 근거 없는 편견을 형성하지 말고 선입견 없이 진실에 다가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초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