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릐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한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 지성사, pp 24~25 -
요즘 매일 아침마다 읽고 있는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얇은 분량, 한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가벼운지라 등교 길 버스 안에서 읽고 있다. 항상 시 몇 편씩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남자의 손에서 이런 멋진 문장이 나올 수 있다니, 감탄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인의 감성이 부럽기도 하다.
특히 시집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가 '좋은 일들'이다. 제목부터 읽는 이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생각날 때마다 읽어도 좋고 말이다. 이 시, 특히 마지막 구절은 그 날 하루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과 설레감을 불러일으킨다.
"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개강한 지 이제 2주째 정도 지났는데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되었다. 사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과목의 수업을 혼자 들었을 때는 낯설기도 했다. 평소에 듣었던 주전공 과목을 혼자 듣는 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서 혼자서 수업 듣게 되는, 이 분위기가 '강의실 속의 고독'이다. 게다가 수업 진행도 주전공 수업과 많이 달라서 어떻게 수업이 진행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조금 있으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은 조가 되어 몇 개의 과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나름 긍정의 힘 덕분인지 점차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움츠려들었던 마음을 다시 추스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일상의 변화를 유도해준 긍정의 힘의 근원에는 내가 좋아하고 있는 심보선 시인의 시 덕분이다.
시 마지막 구절처럼 인간의 생은 정말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들도 생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고 간혹 예기치 못한 하나의 운명으로 인해 사람의 전체적인 인생이 확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무심코 해 본 로또 복권에 수억대의 상금을 타게 되는 행운이 느닷없이 찾아올 때도 있다.
자신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예기치 않는 행운이나 행복을 맞이하게 되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최고의 기억으로 남게 되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매일 반복해왔던 일상, 그 순간 속에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거나 거기에서 오랫동안 찾고자 했던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그냥 지나쳤던 하늘 속 구름 위에 거대한 천사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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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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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대가족』 1963년
르네 마그리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 '이성', '당연한 것', '예측할 수 있는 것', '확고한 진리' 등을 거부했고 그러한 자신의 삶의 태도를 예술로도 표현했다. 그는 예기치 못한 상황, 즉 우연의 일상을 좋아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대상을 통해 새롭고도 낯선 분위기를 만들어 낼 줄 아는 화법을 구사했던 마그리트다운 발상이다.
전혀 체험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낯선 일상 속에서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즐거움이나 능력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환경 속에 놓여진 무(無)가 유(有)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끔 행정학과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나에게 농담삼아 하는 말이 있다. 경영학과 수업만 듣지 말고 이쁜 여자 한 명이라도 꼬셔 오라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듣는 경영학과 과목 수업에는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팀별 과제가 많이 부여되는 수업 특정상 그것을 잘 이용하면(?) 여자친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수업을 듣는 나를 부러워하는 녀석도 있다.
사실 친구들의 농담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친구 중에서도 팀별 과제를 계기로 만 타 과 학생과 캠퍼스 커플이 된 경우도 있으니까. 친구의 농담대로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만 아직 제대로 된 팀별 구성이 되지 않아서 일단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만약에 친구의 농담처럼 그렇게 된다면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예기치 못했던 최고의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그리고 '나'라는 주체적인 존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생이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