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학점만 잘 따면 된다?
이번 주는 수강변경 기간이다. 듣고 싶은 과목이 있으나 수강인원이 차는 바람에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담당교수에게 수강허가서를 제출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대학가에서는 수강변경 기간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어진 듯하다.
이 기간동안에는 취업에 유리한 과목, 학점을 잘 주는 교수의 과목을 파악 할 수 있다. 개강 첫 날에는 수강변경 기간이라고 해서 교수들은 출석 점검을 하지 않는다. 오리엔테이션(OT)를 통해 한 학기동안 배우게 될 교과목의 내용들을 거시적으로 학생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통해서 학생들은 이 과목을 공부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수업을 변경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다. 일단 여기까지 과정은 좋다. 자신이 듣게 될 수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학점 관리하는 데 있어서 공부할 자신이 없으면 변경할 수 있는 재량적 의지는 모든 학생들마다 있으며 나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 학생들의 귀가 얇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기 또는 선배들로부터 '모 교수님의 과목은 학점 잘 준다', '이 과목은 공부하기가 쉽고 편하다.'라는 식의 이야기에 혹해 그러한 과목을 수강하는 쪽으로 변경하게 된다는 것점이다. 하긴 학점 관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학부생 3년차를 경험함으로써 느낀 것은 학과 내에서는 쉬운 과목이란 절대로 없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한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 편의상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주 내내 동기들로부터 전화, 카톡, 문자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다. 개강하는 첫 주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며 친한 친구 이외에는 전화, 문자 교류도 잘 없는 나에게는 조금은 황당했다. 이런 상황에 더욱 황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부분 전화나 문자를 보낸 목적은 수강 변경에 관한 사항이었다. 자신이 이런 교수님의 과목을 듣고 싶은데 이 수업, 학점 주는 데 괜찮냐는 식으로 물어봤다. 내가 왠만한 전공 학과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봤고 학점도 잘 나왔기에 평소에 전화도 안 하는 몇 몇 동기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동기들의 질문에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답해주었다. 물론 설명하기 전에 먼저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이 있다는 단서를 붙이고. 동기들이 물어본 몇 몇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이나 수업시간에 내주는 과제 등 정말로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동기들의 선택은 이미 공부하기가 편할 것처럼 보이는 교수의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과 학생들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공부하기 편한 교수의 수업' 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제가 많이 없다. 한 학기동안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세 개 이상 넘어가면 벌써부터 포기하는 생각부터 든다. 둘째, 팀별 과제가 없는 과목을 좋아한다. 팀별 과제 상 낯선 학생들과 한 팀으로 이루어 서로 합심하여 과제의 성과물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팀 구성원 능력 부족, 팀 내 단결력이 부족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팀별 과제를 꺼려한다. 오히려 팀별 과제는 자신과 과 친분이 있는 학생들과 같이 하려고 한다. 셋째, 학생참여형 과목을 싫어한다. 여기서 말하는 학생참여형 과목이란 단순히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데만 그치는 주입하는 형식의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질의를 유도함으로써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과목을 말한다. 넷째, 주교재가 없는 과목을 선호한다. 특히 네번째 사항은 학생들이 많이 오해하고 착각하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주교재가 없다고 해서 굳이 3만원 넘는 비싼 돈을 들어가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주교재가 없는 강의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어렵다. 주교재가 없기 때문에 그 수업내용과 관련해서 스스로 자료를 찾아 공부할 수 밖에 없다. 평소에 수업시간에 했던 공부와 관련해서 좀 더 관련자료를 찾아보거나 더 깊이 공부하려는 습관이 없다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벅차며 결국에는 학점 관리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다섯째, 오픈테스트로 시험을 치는 과목을 좋아한다. 이 또한 역시 학생들이 많이 착각하는 사항이다. 오픈테스트는 머리 아프게 암기를 안 해도 된다. 그냥 정해진 자료 혹은 교재 텍스트 외부의 자료를 찾아 그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막연하게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만 한다고 생각하는 데 말로만 쉽지 실제로는 객관식, 서술형 시험보다 더 까다롭다. 자료를 수집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료가 많다고 해서 중요한 건 아니다. 그 많은 자료를 한 가지 주제의 통일성에 맞게 결론을 도출할 줄 알아야 한다. 양으로 승부하다가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내용의 질이 중요하다. 결국에는 글쓰기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시험 성적 결과가 판가름 나게 된다. 과제 심지어 논리적 문장력이 요구되는 서술형 답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오픈테스트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사항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공부하는 과정보다는 공부의 결과에 연연한다. 즉, 그 내용을 학습함으로써 사회에 나가서 써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학점을 잘 받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학습 태도는 매 학년이 올라가면 할수록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워진다. 남에게 의존하고 너무나 편하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어려워지고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과목 앞에서 기가 죽어 버린다. 그러면 사회에 나갈 때도 공부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쉽게 하는 공부도 그리 좋지만 않다
사실 모든 사람이라면 머리가 아프지도 않을 정도로 쉽게 공부하는 과정을 선호하다. 나 역시 그렇다. 어찌 보면 시간 관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보다 편리하게, 시간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편한 공부야말로 무척 실용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추세는 요즘 서점가에서도 그런 유형을 볼 수 있다. 딱딱하고 여러운 고전을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그것도 핵심적인 내용만 발췌해서 소개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오늘은 또 신문에서 보니 2014년 수능 때부터는 문제 난이도가 나뉘어져 수험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뀐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생들의 수준을 맞추기 위한 '수준별 수능'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저 '쉬운 수능'으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본 수능을 치기 전에 예비 수험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이 세 과목을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중 택일하여 시험을 칠 수 있다. 새로운 수능 제도에 대한 사전 점검 차원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예비 수험생들은 새로운 출제 유형과 수준을
미리 접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대학별 국영수 난이도 반영 방법이다. 국어와 수학은 인문계열과 자연계열로 A. B 난이도가 나뉘지만 영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체능계열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이 영어과목에서 어려운 B형을 채택,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의 반응이다. 영어 과목 시험이 난이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난이도가 높은 시험에 학생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수준별 수능'의 제도적인 맹점이라고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시험이 수험생들에게는 공부하기에 많이 부담되고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험이기도 한다. 고득점을 얻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좋은 일류 대학에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3년동안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소수만이 좋은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특히 매년마다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수능 난이도가 쉽다고 항상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실상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수능 난이도는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등장된 것이 '수준별 수능'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개정된 수능시험 제도가 학생들에게 쉬운 공부 방법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난이도가 쉬운 A형 과목에서 고득점을 받은 수험생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고등학교와는 다른 교육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걱정이 담긴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 잘 하는 방법을 운운하기에는 내 수준을 스스로 봐서는 많이 어수룩한 면도 있고 나 역시 한창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다. 나도 학창 시절에 성적이 좋지 않은 슬럼프를 겪었을 때에는 소위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의 공부 비법을 따라 하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음으로써 노하우를 얻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부터해서 지금까지, 총 10여 년의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이미 공부를 많이 해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성과를 이루어 낸 사람들의 면모를 본다면 공통적으로 항상 빼놓지 않은 공부 방법이 있었으며 아무리 공부 잘 하는 사람의 비결이라고 해서 그 사람처럼 100% 통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에는 공부 고수들의 비결의 일부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올바른 공부 과정으로 만들 줄 알며 그것을 체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강 첫 날에는 교수님들은 과목의 개요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좋은 조언을 해주신다. 매 학기 개강 첫 날만 되면 자주 학생들에게 언급하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런 교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미 젊은 시절부터 공부를 많이 해 본 사람이 바로 학과 교수님이다. 이분들도 '인간'인지라 지금의 학생들처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봤을 터이다. 그러기에 공부에 대한 교수님들의 말씀이 정말 중요하다.
이번 학기에는 주간에는 경영학을 수업을 듣고, 야간에는 주전공인 행정학 수업을 듣는다. 과목의 내용이 다른만큼 강의 환경, 교수님의 학습 스타일이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과목이 달라도 교수님들이 첫 강의 시간에 항상 말씀하시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부하는 습관 그리고 태도의 중요성'이었다. 이번 주는 경영학과 행정학 수업을 넘나들면서 많은 교수님들로부터 공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나름 도움이 되었다.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만 역시 공부를 많이 해 본 분답게 공부하는 과정, 방법 그리고 태도에 대한 사항은 비슷했다.
첫째,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의 자세이다. 이러한 열정은 공부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이다. 으레 학기 초만 되면 주위 친구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런데 그런 학생들 중 대다수는 학기가 끝나고 나면 절망적인 성적표를 쥐게 된다.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에는 공부를 해야하는 어떠한 목표와 목적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열정 없이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이 중요하다. 열정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둘째,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김득신이라는 학자는 사마천의『사기열전』의 첫번째에 등장하는 '백이열전'을 무려 1억 1만 1천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정말 무식한 암기식 공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득신이 왜 이러한 노력을 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와 친분이 있었던 선비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득신은 많은 책을 읽은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암기력에서는 많이 부족했다는 평이 있다. 그래서 김득신은 '백이열전'만 해도 수없이 반복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기열전』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무조건 소리내어 읽었으며 1만 번을 반복해서 읽은 책은 아예 읽은 횟수로 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득신만 이런 공부 방법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훌륭한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들도 종이가 닳아지도록 반복해서 읽었다.
김득신의 사례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공부 방법만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이를 참고 견디는 능력, 바로 인내라는 점이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 사실, 공부는 결코 쉽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재미가 없는 게 보통이고, 외워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수많은 정보에 한숨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갈망하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동시에 인내가 꼭 필요하다.
셋째, 두뇌가 제대로 가동되는 시간을 파악해라
집중은 공부 외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가지에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집중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바심 내지 말고, 한 자리에 끈기 있게 앉아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하며, 한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2시간 이상은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하며, 공부하는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면 집중력이 분산되어 공부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간은 사람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어떠한 사람은 2시간 이상 같은 곳이 앉아 있어서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30분동안 공부해야 집중이 잘 되고 공부할 내용의 암기가 잘 되는 경우도 있다.
흔히 학생들은 공부 고수들의 모든 비결은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공부하는 흥미를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이 뇌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으며 나 역시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험생 시절에는 쉬는 시간 10분동안 소변이 마리지 않는 이상 책상에 앉아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공부를 했다. 주위 학생들이 떠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당시에는 수능 고득점만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녀고 은근히 질투심 섞인 핀잔을 주는, 소위 '열폭'(열등감 폭발)에 휩싸인 공부 못하는 친구들의 불평도 있었다.
그 때는 5분이나 10분만 쉬고 한 두 시간 넘게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적의 공부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에 해야 될 공부 분량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꼭 잠을 미루어가면서까지 해야 했다. 그래서 시험 전날에 새벽까지 뜬눈으로 공부해본 적도 많았다. 말 그래도 수험생 시절은 정말 공부만 죽어라 했던 것이다. (내용 자제만 보면 부모님의 강요 하에 의한 공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그 당시, 온전히 나의 능력을 '과대 평가'했었기에 오히려 공부하라는 강요는 없었다. 오직 내가 필요한 문제집을 구입하는 데 있어서 과감히 투자를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수험생 시절만 따로 통틀어 헤아려본다면 오히려 실패한 결과가 더 많았다. 혹자는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교훈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정해져 있는 시간 내에서 알맞게 노력한 공부 방법 및 과정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공부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에 그저 많은 시간에 투자하는 공부를 할수록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무조건 믿게 되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수험생 시절의 공부 방법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면서 선택한 공부 방법이 '살라미 공부 방법' 이다. 정치나 외교 용어 중에 '살라미(salami) 전술' 이라는 것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살라미 소시지에 유래되었는데 이 소시지를 오랫동안 보관함으로써 조금씩 얇게 썰어 먹는다고 한다. 이를 외교 용어, 특히 협상 전술의 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협상하는 데 있어서 단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순차적으로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전술 방법이다. 말 그래도 살라미 소지지를 조금씩 썰어 먹듯이 협상 과정도 한 번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금씩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술 방식은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외교 태도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방식인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조금씩 풀어 놓으며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전략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공부 방법에서는 '살라미 전술'의 방식이 유용하다. 1시간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령대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라고 한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집중한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집중력을 높여가면서 공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길어도 1시간, 짧아도 30~40분 내로 공부하고 20분동안 쉰다. 하룻동안 암기해야 할 분량이 있다면 한 챕터당 40분씩 공부한다. 만약에 하나의 챕터에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다면 시간의 양을 늘려야겠지만 왠만하면 1시간 이상은 안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짧은 내용은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해서 공부하는 것이 내가 선호하고 있는 공부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을 통해 암기한 내용은 반복한다. 조금씩,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게끔 공부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시간동안 공부하는 시절보다 집중력을 높일 수 있으므로 공부하기가 수월하고 최근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이러한 방식이 모두 적용되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 과정이 공부하는 과목 특성상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공무원 고시 공부 할 때 이러한 방법이 먹혀 들지는 스스로 의문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의 공부 방식까지 설명했던 이유에는 자신에게 적합한 나만의 공부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방법을 따라하다간 더욱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폭 넓게 공부를 하라
대학의 영어인 University의 어원이 '다양한 학자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대학은 본질상 매우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다양한 가치와 사고 체계를 가진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이들 간의 자유로운 학문적인 교류와 연구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전수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학은 '자유로운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스템과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많은 대학들이 선택과 집중을 발전전략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지방대학과 같이 인적, 물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교육과 관련된 시설 및 학문 분야에 고르게 투자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특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은 다양한 학문분야 간의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수렴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이상적이며, 소수의 사람에 의해 폭넓은 의견 수렴도 없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특정분야에 집중하되 대학의 학문적 다양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학문과 연구도 유행의 바람을 타서 특정분야 및 이슈가 단기간에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이를 해결할 능력은 학문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 집단에게 있다. 대학의 미래는 이러한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달려 있다.
대학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은 학문적 편협성에 빠질 위험성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공할 학문 분야를 미리 정해놓고 이에 관련된 분야만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미래를 일찍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식의 습득을 특정분야에 편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지만 자신의 미래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래에 필요할 것 같은 지식만을 예측하여 습득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앞으로 학문의 추세는 점점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되는 방향으로 간다. 재미있게도 경영학과나 행정학과 교수님들은 똑같이 학문의 '융합'을 강조했다. 용어는 다르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의 의미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통섭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식융합의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다.
오늘 오전에 경영학 수업 첫 시간에 모 교수님의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셨다.
유명한 모 기업의 직원과 친분이 있어서 한 번은 대학생들의 취업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모 기업 직원에 의하면 수도권 대학생들과 지방권 대학생들의 수준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점 때문에 아무래도 지방권 대학생들이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러한 수준의 차이는 면접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면접에서 수도권 대학생과 지방권 대학생 두 명에게 공통적으로 '개구리'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면 이에 대한 대답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지방권 대학생은 면접관의 질문에 '개구리는 양서류이며..' 식으로 시작해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상투적인 내용들만 대답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생들의 대답은 달랐다. '개구리'라는 질문에 대해서 과학적인 관점으로 소개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사회과학적인 관점이든지 간에 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두 대학생들의 면접 대답을 비추어 본다면 면접관이 선호하는 학생은 당연히 수도권 학생일 수 밖에 없다.
결국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편협적인 학문 태도에 갇힌 모습은 비단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학문 간의 융합과 교류가 필요하는 학계에서도 예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지금도 이과와 문과 간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다.
영국의 시인이자 과학자였던 C.P. 스노우는 인문과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괴리와 상호 몰이해, 의사소통의 단절을 '두 문화'라고 규정함으로써 현대 서구문명의 중대한 장애물이자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강연에서 스노우는 인문과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에게 아인슈타인의 E=mc2를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스노우의 질문에 알고 있다고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스노우는 인문과학 전공자들이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모른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탄식했다.
이러한 스노우의 우려 섞인 탄식은 결국 우리나라 사회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는 학문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이과'와 '문과'로 구별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실체가 있는 본질적인 구분이 아니라 지극히 임의적인 구분이다.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은 각각에 속하는 분야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머릿속에 관념상으로 존재하거나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뚜렷한 차이라는 것은 양쪽 분야들의 내용과 성격에 실재하는 것이기보다는 이런 관념적, 제도적 장벽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일본의 유명한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러한 허상의 장벽을 만들어 낸 일본의 공부 환경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와 현대적인 교양의 문제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문부성의 교육 정책에 의해서 정해진 틀과 방향이 결정되는 일본의 고등교육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교양교육의 붕괴라는 문제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도쿄대 학부생들을 똑같은 '찻잔'으로 생산되는 것과 똑같다고 비유했다.
교양은 세분화돼가는 학문을 통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는 일. 대학은 교양인을 키우는 게 첫번째 사명이지만 요즘 대학교는 교양 있는 지식인 대신 법률가, 회계사, 행정가, 경영인 같은 스페셜리스트를 만드는 데 골몰해있다.
큰 그릇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지닌 학생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균형된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과 보다 넓은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이다.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가 기술을 모르는 단순 교양인이라면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는 전문분야의 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되 사회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춘 교양인이다. 그리고 이런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이다.
이처럼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특별한 공부비법이 있다기 보다는 위에서 열거한 가장 기본적인 세가지 요소인 열정, 인내, 집중 그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부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중요한 진리를 몸소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공부 방법이 스펙을 쌓는 데 유리하거나 좋은 성적의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터득할 수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첫 장에 등장하는 '학이편'의 유명한 구절처럼 사람들이 공부하는 데 있어서 괴로움보다는 넓은 세상을 이해하면서 생기게 되는 기쁨을 누려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