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세포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 세포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생명활동이 일어나고 있고 생명활동의 중심에는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는 세포의 생명활동을 지배한다. 즉 유전자는 생명의 정보인 셈이다. 유전자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를 아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생명의 신비를 아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에는 생물의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고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유전된다. 유전자의 물질적 실체는 바로 DNA인데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DNA 안에 유전정보가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는 DNA의 유전정보를 통해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데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제는 유전자가 질병의 발병 가능성이나 기질 등의 근본이라는 사실이 상식이 됐지만, 그 구조가 밝혀진 것은 불과 50년 전 일이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유전자 게놈 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당시엔 DNA가 어떻게 유전정보를 갖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 비밀을 풀기 시작한 과학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왓슨이 쓴 그 유명한『이중나선』이다.

 

 

 

 DNA의 구조를 둘러싼 과학자들 간의 질투와 경쟁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EBS에서 방영중인 최재천 교수의 '공감의 시대' 강연이었다. 강연 제1부에서 최재천 교수가 대학생 시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과학 도서라고 추천했다. DNA의 구조를 밝혀내는 탐구의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만 가지고 DNA의 구조에 대한 과학적 내용을 기대해선 안 된다. 사실 이 책은 그 발견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생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혀내가나는 과정의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이과계가 아닌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과학 고전으로 알려진 이유에는 DNA의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 탐구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어려운 생물학 지식을 대중들을 위해 쉽게 소개하고 있는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 능력도 한 몫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 책의 화자인 왓슨, 자신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요소이다. 왓슨의 동료 과학자들이 연구했던 다양한 주제뿐만 아니라 연구실 밖 일상까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궁리에서 번역한 『이중나선』앞표지에는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 구조를 발견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다.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소임이다. 하지만 『이중나선』에 등장하는 왓슨과 크릭 그리고 DNA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고리타분한 연구 주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학계에서 커다란 관심을 받을만한, 흥미를 느끼는 분야만 좇아 다녔고, 다른 연구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곧 경쟁심과 질투심에 들떠 어쩔 줄 몰라 했다. 위대한 발견을 함께 한 동료로서 크릭의 모습과 성격을 묘사한 왓슨의 증언이 너무나도 솔직하다.

 

 

 

 

자신들이 만든 DNA 모형 앞에 선 제임스 왓슨(左)와 프랜시스 크릭(右)

 

 

(『이중나선』pp 224)

 

 

내가 보기에 프랜시스 크릭은 그리 겸손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겸손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중략)   당시 그는 35세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 과학자였다. 그와 친한 몇몇 동료들만이 크릭의 빠른 머리 회전과 통찰력을 알았고 가끔 조언도 구했지만, 대다수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말 많은 수다쟁이로만 대할 뿐이었다.

 

 -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중에서, 최돈찬 역, 궁리, pp 25~26 -   

   

 

친한 동료 아니랄까봐 책의 첫 장부터 크릭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왓슨은 자신의 동료 크릭이 그동안 연구했던 과정과 결과가 다른 동료 학자들 앞에서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 크릭의 오지랖 때문에 연구 성과가 다른 동료들에게 빼앗길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사실 왓슨의 걱정은 단순히 성과 집착에 대한 지나친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크릭은 자신의 오지랖으로 인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겅험이 있었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연구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대학 지도교수였던 로렌스 브래그로부터 도용당하고 만 것이다.

 

 

브래그 경은 크릭의 이론을 미리 알았다는 사실을 단호히 부인하고, 다른 과학자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말은 자신에 대한 더 없는 모욕이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크릭 자신이 그토록 떠들고 다닌 아이디어를 브래그 경이 몰랐을 리 없다고 대들자, 브래그 경 또한 이를 맞받아쳤다. 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10분도 채 안 돼 크릭은 교수실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pp 74)

 

 

 

아이디어가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허락도 없이 도용한 점에 대한 이의를 둘러싼 두 학자 간의 다툼은 이 책에서는 그저 사소한 일화로만 지나갈 수 있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 만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는 성과와 그에 대한 보장 역시 간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왓슨이 '네이처'라는 과학 잡지를 통해 DNA의 이중나선을 밝힌 나이는 불과 25세다. 책에서 스스로 그리고 있는 당시의 왓슨은 불투명한 앞날로 인해 방황하는 대학생과 다름 없다. 화학은 전혀 모르는 데다, 학교에서 지급되는 장학금과 연구 성과,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그가 평생 바치기로 선택한 연구 주제가 바로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DNA의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가 DNA 연구에서 한발 앞서 있었던 모리스 윌킨스(DNA 구조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왓슨과 크릭과 함께 1962년에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한다)와 당시 유일한 여성 DNA 연구자였던 로잘린드 프랭클린, 화학의 대가로 꼽히는 라이너스 폴링과의 경쟁에서 승자가 된 이유는 바로 그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이었다.

 

 

 

 

 『이중나선』그리고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에 대한 평가 

 

왓슨의 『이중나선』은 과학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독자들마다 이 책에 대한 평과 인상이 차이가 있을 것이다. 최 교수도 이 책을 소개하면서 언급했지만 오늘날에도 동료들에 대한 왓슨의 적나라한 모습이 담긴 이 책이 과학 고전으로 읽혀져야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남아 있다.

 

왓슨의 과학적 글쓰기는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DNA의 구조에 대해서 쉽게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점에서는 높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는 위대한 과학 논픽션이라고 하더라도 『이중나선』의 저자 왓슨의 주관적인 관찰과 감상으로 이루어진 글이라는 것을 염두하여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모리스 윌킨스의 동료였던 로잘린드 프랭클링은 DNA 이중나선 발견에 결정적인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나선』에서는 그의 활약을 미진하게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해 왓슨은 성격 괴팍하고 데이터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 때문에 '숨은 주연'이나 다름없는 로잘린드 프랭클링은 왓슨과 크릭이 성취한 과학적 성과의 발견을 더욱 돋보이게끔 만드는 '엑스트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녀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여성 최초의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불행하게도 놓치고 말았다. 혹자는 왓슨의 행동이 동료 과학자의 성과를 가로 챈 행위이며 『이중나선』을 통해 동료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폭로함으로써 유명세를 얻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왓슨은 나중에서야 후기를 통해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숨은 공로를 인정했지만 지금도 대중들은 DNA의 이중나선을 발견하는 사람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모리스 윌킨스 그리고 2004년에 세상을 떠난 동료 크릭마저도 왓슨의 인지도에 묻혀지고 있다. 『이중나선』이 책 한 권 덕분에 왓슨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12-02-12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과학도들에게 필독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불편했던 점등을 생각하면
이중나선을 과학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크릭을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왓슨도
사실은 절대로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문학적 측면에서는 별로인 책이 확실하거든요^^

왓슨이 로잘린드 플랭클린의 공로를 매우 축소시켜 소개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공로를
행간에서는 절대로 숨길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위 글에서 지적해주신대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살아 있었다면
왓슨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질지는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2-02-13 22:0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과학자들 간의 대화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왓슨의 차별이 좀 불편했어요.
랑공님 말씀대로 이 책이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hnine 2012-02-1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슨이 최근에 낸 책으로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서 제목은 Avoiding boring people 인데, 왓슨이 얼마나 치밀하고 야망이 많은 사람인지 아주 자세하게 나와있어요. 천재성을 지닌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과학에 있어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우리는 과학 이외의 다른 것도 은연중에 기대를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의 과학적 업적, 왓슨의 예에서 보면 DNA의 구조에 대한 것 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DNA 구조를 밝혀내기 까지 그 뒷배경이 어떠했을까 하는 점에 더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것, 저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워하는 쪽입니다.
로잘린 프랭클린, 윌킨스 와 왓슨, 크릭, 이런 사람들 사이의 일화는 뭐,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어요.
리뷰를 참 성실하게 잘 쓰십니다.
잘 읽었어요.

cyrus 2012-02-13 22:08   좋아요 0 | URL
왓슨이라는 사람이 은근히 과학 대중서를 많이 썼더라고요.
그런데 <이중나선>이 고전이라고 손가락 치켜세우기에는 불편해고
조금은 부족한게 있었어요. 저자의 주관적인 느낌도 강했고요.
로잘린드 프랭클린 평전이랑 크릭 평전도 출간되었던데 그 책도 겸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