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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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스마의 유래

 

 우리 사회에서 대중들을 매료시키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 카리스마가 있다’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짐승남’이라고 불리고 있는 남성미를 지닌 남자 연예인에서부터 국민들 앞에서 설득력 있으면서도 강력한 권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정치인들까지, 카리스마는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카리스마는 연예인, 정치인 등 특정인들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며 모든 사람들도 ‘계발해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받고 있다.

 오늘날에는 ‘카리스마’를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카리스마의 어원적 유래는 종교, 즉 기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 의미의 ‘카리스마’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도 바울이다. 그는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바울이 사용한 ‘카리스마’에서 ‘카리스’는 그리스 어로 ‘신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의 은총이 만들어 낸 결과물, 즉 신의 특별한 은총, 은혜를 뜻하고 있는 것이다.

 

 

 

 

 

마사초 <그림자로 병든 이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 1427~1428년

 (<역사의 미술관> pp 278)

 

일행 중 근엄한 표정을 지낸 채 앞장서서 걷고 있는, 붉은 천을 걸친 사도가 성 베드로이다. 고대 성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성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도 불치병이 말끔히 나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베드로가 행하는 이 신비스러운 능력이 기독교에서 의미하는 ‘카리스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받게 되는 소명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이 베푸는 은사를 통해 공동체에 봉사하고 결속하라고 주문했다. 특히 교회의 사도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카리스마를 받아 단일하고 다양한 `하느님의 은총의 관리자`로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신자들 사이에서는 ‘신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는 만큼 그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치의 병도 나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카리스마’가 형성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권력의 의미를 지닌 ‘카리스마’가 사용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베버는 <경제와 사회>라는 저서에서 카리스마를 ‘권력’ 혹은 지배의 형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여기서 뛰어난 지도자에 대한 추종자들의 개인적 신뢰에 바탕을 둔 ‘카리스마적 지배’라는 개념이 생겼으며 권력의 정당화가 행해지는 지배적 형태 중의 하나로 정립되었다. 이후 카리스마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존 F. 케네디 등 강력한 권위를 발휘했던 독재자나 뛰어난 매력을 지닌 정치인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화폭을 통해서 권력의 판타지를 실현시키다

 

 그러나 카리스마는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던 고대 문명 그리고 막스 베버가 처음으로 의미를 재정립한 근대 문명에서만 탄생되고 사용되어진 것은 아니다.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강력한 지도자가 군림했던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카리스마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군주들은 이미 벌써부터 ‘카리스마’를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홍보적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왕의 모습을 그렸던 궁정화가들은 이를 이용하여 절대군주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역할을 했다.

 

 

 

 

 

 

 

이아생트 리고 <태양왕 루이 14세> 1701년

(pp 53)

 

 

 

 프랑스의 황제 루이 14세가 오늘날까지도 ‘태양왕’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절대군주로써의 정치적 역량과 업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모습을 묘사한 궁정화가들의 능력도 한 몫 했다.

 루이 14세라고 하면 항상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듯이 그는 자신의 거대한 궁전에서 1년 내내 화려한 향연과도 같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려왔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 뒤에는 보이지 않는 그늘이 존재하는 법.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의 실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의 생활고는 엉망이었으며 종전 이후에는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정부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주에 대한 민심은 떨어지게 되고 절대군주의 위엄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강력한 군주로서의 이미지만큼은 끝까지 유지하고자 했다. 그의 정치적 업적과 프랑스 사정이 형편없더라도 ‘황제’로서의 이미지는 루이 14세가 인정하고 싶은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초상화에서 대개 루이 14세의 포즈는 위세가 넘치고 거만한 군주의 모습이다.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황제가 63세였을 때 그려진 것이다. 60세 넘은 군주의 모습치고는 리고의 초상화 속의 루이 14세는 인생의 흐름을 거슬린 듯하다. 얼굴에는 팔자 주름이 남아 있지만 지휘봉을 잡고 꼿꼿이 설 수 있는 정도로 아직 정정하다.

 

 

 

 

 

 

샤를 푀르송 <제우스로 그려진 루이 14세의 초상> 1653년경

(pp 58)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었던 루이 14세는 궁정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로나마 권력에 대한 기대를 보상받고자 했다. 권력에 대한 황제의 판타지는 이제는 자신을 무소불위의 신적 존재로써 그려지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루이 14세를 그린 초상화는 수십 점이 넘는데 군주로서의 권위와 영광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미지 덕분에 그는 ‘태양왕’이라는 강력한 군주의 카리스마가 만들어 낸 호칭이 붙여질 수 있었다.

 루이 14세 이외에도 세기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군주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부단히 관심을 쏟았으며 궁정화가들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했다. 특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의 식민지 섬에 살았던 ‘코르시카의 촌놈’을 한순간에 ‘프랑스의 위대한 영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1800~1801년

(pp 73)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라는 격언과 함께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군주의 카리스마‘를 크게 각인시켜주었던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황제의 대관식을 그린 장면에서도 다비드는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의 적임자로써 권력적 정당성을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의 대관식> 일부, 1805~1807년

(pp 86, 원 안에 대머리의 남자가 '카이사르의 유령' 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다비드는 황제 스스로 자신 머리 위에 왕관을 씌우고 난 뒤에 황후 조세핀에게도 자신이 직접 왕관을 씌워주는 극적인 장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교황마저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실세를 지닌 프랑스 황제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교황이 황제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주는 관례를 깨뜨린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의 대리인’인 교황보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군주의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 더욱이 왕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 옆에는 로마의 시저 카이사르마저도 그의 대관식에 참석했기에 프랑스의 황제의 정당성을 더욱 입증해주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주고 있다.

 

 

 

 

 

 

 

앙투안 장 그로 <자파의 페스트 병원을 방문한 나폴레옹> 1804년

(pp 86)

 

 

 

 다비드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던 앵그르, 장 그로 등의 화가들도 나폴레옹의 카리스마를 부각시킨 그림들을 남겼다. 장 그로는 이집트 원정 당시 자파라는 지역에 임시로 설치된 페스트 병원 안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 나폴레옹의 모습은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 치유를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 또한 사도 바울이 생각했던 카리스마의 의미와 부합되기도 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은 단순히 프랑스를 다스리는 권력자로써의 카리스마를 지닌 황제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환자들에게도 국민을 향한 관대함과 애정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온화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정치적 지배력`이라는 이미지의 산물, 카리스마

 

 베버가 카리스마를 ‘지도자의 정치적 지배력’이라는 의미로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근대에 이르게 되면서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지배력에 입각해 카리스마의 의미가 좀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에서 발현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때로는 독재자, 사이비 종교 지도자와 관련되어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어지기도 했다.

 

 

 

 

 

 

하인리히 크니르 <히틀러의 초상> 1937년

(pp 202)

 

 

 

 그런 대표적인 카리스마의 예가 아돌프 히틀러 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올해 학교 수업을 통해서 베버의 권력 형태를 자세하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카리스마적 지배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활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긍할 수 있다. 그래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등장에 베버의 이론이 결정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카리스마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인식이다. 이러한 입장은 베버의 카리스마 이론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방식이다. 히틀러가 베버의 카리스마 이론을 이용해서 나치 정권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히틀러 역시 특유의 카리스마를 대중들에게 표출할 줄 아는 리더십을 지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인리히 크니르가 그린 히틀러의 초상화 역시 앞에서 소개된 루이 14세의 초상화와 비슷하게 나치 정권의 수장은 위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쪽 팔에 채워진 나치 문양의 완장은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한 눈에 독일의 지배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의 표정에는 게르만 족의 우수성을 통해 유럽을 정복하려는 야심찬 의지가 담겨져 있다.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 <18차 당 대회의 스탈린> 1939년

(pp 114)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발휘한 정치인은 히틀러뿐만 아니라 소련의 스탈린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강철’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소련을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업적을 이룬 위대한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정치적인 동지와 숙적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숙청을 단행하였고 강압적인 농업 및 이주 정책으로 인해서 수많은 인민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나게 만든 독재자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스탈린 치하 당시 그를 묘사한 그림들은 대개 온화로우면서 인자한 성품을 지닌 인민의 벗이자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특히 이 시기 때부터 지도자 주체화를 위한 미술작품들이 하나의 핵심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탈린을 우상화하는 그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인민들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 있었다.

 특히 스탈린을 위한 우상화하는 그림들 중에는 배경에 레닌의 조각상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스탈린을 ‘레닌의 후계자’이며 ‘레닌에 버금가는 소련의 지도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스탈린은 레닌의 아우라를 이용해 소련을 이끌 소비에트의 지도자라는 카리스마를 인민들 앞에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죽기 전에 레닌은 스탈린의 존재에 대해서 경계할 정도로 스탈린이 권력집착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해서 우려의 입장을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레닌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레닌은 스탈린을 자신과 버금가는 소련의 지배자로 만드는 데 기여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도 않게 자신 역시 커다란 동상으로 부활하여 우상화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카리스마,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양날의 검

 

 지금까지 사도 바울에서부터 히틀러, 스탈린까지 ‘카리스마’의 역사를 정리해봤다. 카리스마는 막스 베버가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전에 이미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종교적인인 의미를 벗어나 정치인들의 리더십에서 발현되는 능력 또는 자질로 변모해왔다.

 막스 베버에 대해 비평을 쓴 사회학자 앨버트 샐러먼은 카리스마를 정치적 지배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학적 범주로서의 카리스마는 가치판단이 아니라 특별한 업적 때문에 지도자로 보이는 자질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그의 추종자들 앞에서 증거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지식의 미술관> pp 280)

 

 군주와 정치인들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정치적 추종자들과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스스로 창조하고 관리할 줄 알았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지도자의 권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루이 14세와 히틀러의 지도자적 카리스마에서 알 수 있듯이 상징의 세계에서만큼은 절대권력을 가진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능과 독재로 점칠 된 권력이었다. ‘특별한 업적’을 통해 지도자로써의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을 통해서 카리스마를 창조했다.

 오늘날에도 정치와 카리스마의 불가분의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마바가 흑인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카리스마적 리더쉽’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존 F. 케네디를 언급하고, 열정적인 연설과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이다. 모두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스탈린식 카리스마 형성 전략은 3대 세습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에서도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최고 권력자로 급부상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 내 체제가 불안정한데다 정권에 대한 민심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김정은 1인 단독 체제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은의 권력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유훈통치를 통해 권력체제를 안정화하는 데 꾀할 공산이 크다. 죽은 레닌이 스탈린의 카리스마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듯이 죽은 김정일도 김정은의 카리스마를 형성하게끔 만드는 중요한 정치적 전략으로 작용할 것이다.

 카리스마의 왜곡된 전략은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횡행하는 사이비 종교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부 종교적 단체의 지도자들은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메시아로 자처하여 신도들에게 금품, 성상납을 요구하거나 감금, 폭행, 살인청부 등으로 종교적 교리를 강화하는 데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이들은 종교라는 가면을 쓴 채 혹세무민하는 미신 집단일 뿐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이 말했던 카리스마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일부 이론가들은 불안정적인 감성에 치우친 추종자들의 존재로 인한 권력의 위험성 때문에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을 거부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참신한 사고와 정치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있어서 베버가 주장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카리스마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대중들의 감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훌륭한 능력과 자질이 바탕이 된 위대한 카리스마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대중들의 감성을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칼이 되어 권력자 본인의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카리스마가 읽는 소리 그대로 ‘칼(刀) 있으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단순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카리스마를 이용할 줄 아는 정치인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의지와 목표가 뚜렷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줄 아는 훌륭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대중들의 지지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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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2-2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카리스마가 종교적 의미로 처음 사용된 말이군요.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의미의 카리스마라는 것도 많이 퇴색된 것 같기도 하구요.
연말 잘 지내고 계세요? 그래도 간만에 cyrus님 글을 보니 반갑네요. 내년에 바쁘시더라도 종종 서재에서 뵈요. 해피 뉴이어~!!

cyrus 2011-12-28 21:28   좋아요 0 | URL
요즘 정치인들 중에는 케네디만한 대중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 보기가 어려워진거 같아요. 그나마 이번에 구치소에
수감된 정봉주 씨가 그런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생각해보는데요, 개인적으로
구치소 생활 때문에 카리스마를 어필하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