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순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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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수난받는 우리나라 문화유산들

  

 

  

 세계적인 암각화 유물인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에 남겨진 문제의 낙서  

(사진출처: 연합뉴스) 

 

 

최근에 한 고등학생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국보인 암각화에 장난삼아 낙서를 해서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울산시 울주군이 국보 147호인 '천전리 각석' 에 낙서한 범인을 잡기 위해 최고 10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수사를 확대한 것을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 한국의 낙서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를 훼손한 혐의는 문화재 보호법 위반죄가 적용되어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해지며 이를 신고하게 되면 1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문화재 낙서 사건 이후로 국보 문화재에 대한 정부당국의 관리 소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인력의 부족과 숭례문 화재 사건 때처럼 초동 대처가 미흡한 관리 체제는 문화재를 훼손하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비단 관리 부실에 의한 문화제 훼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의 도난과 해외반출이 매년 급증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국보 문화재가 수난받아야하는 이유에는 정부당국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지만,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역시 문화재를 훼손하는데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암각화 낙서 사건 이후 문화재 관리에 대한 처벌을 성토하는 대중들이 등장했다는 점에서만 본다면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그리 야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MBC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 에 출연한 이후부터 그가 쓴 문화재 소개 관련 저작들의 판매가 급증되는 동시에 유 교수가 언급한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무릎팍 도사' 에 출연한 유 교가 자신이 답사한 문화유산 중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를 최고의 문화재로 꼽게 되자 방송이 전파된 뒤에 선암사가 때 아닌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유 교수의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동안 외면받았던 우리나라 국보 문화재의 진면목을 알릴 수 있어서 좋지만 때아닌 문화재 관심 현상의 이면에는 문화재라고 하면 낯설고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인식과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대중들의 심리도 숨겨져 있다.  

만약에 유 교수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문화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었을까?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 으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소개한 유 교수의 신작 <국보 순례>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해외 한국 문화재의 존재와 문화재 관리 보존의 중요성 역시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우리나라 문화재의 가치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 신라 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pp 89) 

 

흔히 삼국시대 금관 하면 신라 금관으로 대표되는 금속제 머리띠에 세움 장식을 갖춘 머리띠 형태의 관(冠)을 연상하기 쉽다.   저자의 표현대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은 '어느 왕관보다도 화려하고 장엄한 구성미' (pp 88)를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금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왕이 머리에 썼던 화려한 왕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금관의 용도는 왕의 부장용으로 만든 위세품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의 한 장면)

  

오늘날 사극에서 보면 왕의 머리 위에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금관이 씌어져 있다. 하지만 사극에서의 금관의 용도는 잘못된 사실이다.  금관은 생전에 왕이 머리에 쓰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금관의 용도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금관이 고분에서 출토된 당시에는 박물관에 소장되었던 것처럼 장식들이 뻗쳐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장용으로 만든 위세품(威勢品)이라고 하며 혹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쓰던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서양의 종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

에밀레종,  통일신라 771년,  국립경주박물관  (pp 105~106)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과 무지는 국보 문화재로써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국보 문화재들이 수두룩하지만 '에밀레종' 만틈 대중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외면당하고 있는 비운의 문화재가 또 어디 있을까? 

에밀레종의 '에밀레' 는  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울음소리 '에밀레 에밀레(어머니 어머니)' 소리를 낸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종의 실제 명칭은 성덕대왕 신종이다.   통일신라 742년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경덕왕의 아들이 혜공왕이 다스리던 771년에 완성되었다.    

성덕대왕 신종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종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정식 명칭보다는 '에밀레종' 이라는 독특한 이름과 함께 종소리가 신비롭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종은 세월이 지나면 부식되거나 깨져서 더 이상 칠 수 없게 된다.  성덕대왕 신종 역시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 과거, 긴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종으로 홀대 받은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원래는 봉덕사에서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년) 영묘사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에 지금의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적지 않은 이동에다가 두 번째로 오래된 종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형태의 종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종의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2002년 타종식 이후로는 에밀레종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면 에밀레종 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pp 106)  

저자의 생각처럼 에밀레종이 울리는 소리를 마지막이라고 들어본 세대들 중에는 죽기 전까지 딱 한 번이라도 그 종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반면 에밀레종이 울리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마음 속 깊이 울리게 만드는 에밀레종의 신비로운 소리의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고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울리는 종을 이제는 소리마저 듣을 수 없는 그냥 박물관 앞뜰에만 걸려 있는 하나의 거대한 유물로 남아 있다. 종의 진정한 가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점은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박물관 견학 차 에밀레종을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는 그냥 '커다란 종' 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왼쪽)  목조반가사유상, 일본 아스카 7세기, 일본 고류지 (pp 143) 

(오른쪽)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보 제83호,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 문화재의 멋과 예술적 가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그 빛을 발하고 있 다.    해외에 있는 몇몇 문화재들 중에는 과거 서강 열강들의 약탈로 인해 지금까지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예술 양식이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도 보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외국의 박물관이나 유명한 유적지에 가면 심심찮게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일본 국보 제1호로 불렸던 일본 교토 고류지에 보하고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비슷하다.   이것만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보낸 것인지, 혹은 목조만 일보에 들여와 만든 것인지 단정할 수가 없지만 일본의 미술사가들은 불상의 양식이 일본식의 불상과 다른 도래(渡來) 양식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불상이 보관된 고류지는 진하승이라는 신라인이 세운 절이기 때문에 목조반가사유상이 당시 신라에서 유행하던 예술양식이 일본으로까지 유행, 보급되었다는 학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일본에 있는 불상과 우리나라에 있는 구리로 만든 불상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진만으로도 목조 불상과 금동 불상의 미묘한 멋의 차이가 느껴진다.  처음 제작했을때만 해도 금박을 입힌 구리를 통해 미륵의 신성스러운 존재를 한층 부각시키고자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상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해 녹이 슬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화려한 금빛만 퇴색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상의 아름다움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목조 불상은 그렇지가 않다.  목조 문화재 역시 습한 날씨, 화재, 흰개미에 취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화재를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서 오랜 세월 속에도 제작 당시 아름다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오히려 목조 불상이 금동 불상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금동 불상은 녹이 슨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미륵의 미소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반면에 목조 불상에서는 미륵의 미소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미륵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는 듯한 은은한 미륵의 미소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일본에 방문하면서 목조 불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찬사의 소감을 남기기도 하였다.     

 

지금 나는 이 미륵상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칼 야스퍼스,  <유홍준의 국보순례> pp 142 재인용 -

 

  

 

 문화유산 보존, '반짝 관심' 이 아닌 '친숙한 관심' 이 필요할 때 

 

 

경복궁 근정전의 박석 (pp 184) 

 

<국보순례>에 수록된 '궁궐의 박석' 편에서는 박석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유 교수는 경복궁관리소장에게 근정전은 어느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관리소장은 장마철 큰 비가 내릴 때 빗물이 박석의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며 대답을 했다고 한다.  (박석 일화는 유 교수가 출연한 '무릎팍 도사' 방송에서도 언급되기도 했다)

사실 딱 한 번 경복궁 근정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국보순례>를 읽기 전까지는 박석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다.  그저 돌로 만든 바닥으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박석을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박석의 자연스러움을 오히려 마감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 건축의 폐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pp 183) 

하지만 유 교수는 박석은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을 꾀한 우리나라 특유의 건축 미학에 잘 맞아떨어진 건축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무릎팍 도사' 출연 당시 비 온 날에 한 번 박석을 구경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박석 일화를 통해서 알 수 잇듯이 문화재라는 것은 박물관 속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는'보물' 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문화유산' 일 수도 있다.   우리는 '보물' 문화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국보',  또는 '값어치가 있는 물건' 이다.  문화재를 그저 재화적 가치가 높은 '보물' 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전통적 멋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대중이 문화재를 '보물' 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은 문화재를 꼭꼭 숨겨두면서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의 관리 방식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나친 신비주의는 오히려 대상에 대한 타자의 관심이 줄어들 수 있는 역효과를 낳는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도난당하지 않게 철저하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기적으로 유물 자체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대중들에게 '어필' 할 줄 알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유홍준 교수 효과' 만으로도 우리나라 문화재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오히려 대중의 '반짝 관심'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에 힘입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보다는 문화재 낙서 사건 같은 교양적이지 못한 행태가 늘어나지 않을까 되레 염려되기도 한다.

 

천전리 각석 낙서 사건 이후로 울주군은 더 이상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인력과 예산을 늘려 첨단 감시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 방안을 마련하는 지자체의 행보는 보기 좋지만 과연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과거 이전에도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와 법규가 마련되었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관련 인력과 예산이 크게 늘고,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었지만, 잊혀질 때만 되면 문화재 훼손과 관련된 유사 사례가 반복되었다.

오늘날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기후변화, 기상재해 등으로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문화재 관리 및 보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 소중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미래의 후손들까지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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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5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5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0-1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하시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정말 좋은 곳, 볼거리가 많은데 무조건 해외로만 나가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갖게 되면 그렇게 숨어있는(?), 아니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곳을 꼭 찾아 보려고요!! ㅎ

cyrus 2011-10-16 2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늘 1박 2일에서 경주 7대 보물 편을 재미나게 봤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견학으로 경주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의미 깊은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TV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