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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평점 :
'연예인 공화국' 의 현실
현재 청소년들의 희망 직업 1순위는 연예인이 된지 오래다. 대형 연예기획사에선 각자 연예인 지망생을 발굴해 교육시키며 호시탐탐 연예계 데뷔를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예기획사 오디션에서 탈락한 연예계 지망생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쉴새 없이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 중 스타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올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여주인공인 구애정(공효진 분)은 한때 잘 나가는 걸그룹 '국보소녀' 의 멤버였으나 비호감 연예인으로 전락하여 방송 활동과 업소 행사로 근근이 살아간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들의 세계에는 구애정처럼 방송 출연 한 번 하는데도 변변치 못하여 가난과 싸우는 생계형 연예인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근본적으로 인기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수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잘나가는 연예인은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이 생계형인 게 연예계의 현실이다.
연예계 지망생의 수가 급증하게 되자 이와 관련된 신종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다. 연예인 지망생을 상대로 금품을 받거나 기획사와 PD간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 연예계 협회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을 횡령하는 등 연예기 비리뿐만 아니라 연예인 지망생들을 노리는 성상납마저 일어나고 있다. 올해 적발된 연예 비리에 관련된 피해자의 97%는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화려한 문화산업 이면에 숨겨진 가난과 비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방송, 영화 그리고 음악, 스포츠 등을 아울러 말하는 '문화산업' 은 특정 분야가 창출하는 고용이나 이윤 등의 경제학적 가치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K-POP을 중심으로 한 아이돌 가수들의 한류 열풍은 국가 이미지만 제고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4조원이라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 불리 먹으면서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화려할 것만 같은 '문화산업' 의 현실 속에는 말 못하는 가난과 비애가 있다. 일명 문화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 즉 연예인, 연예인을 탄생시키는 기획자들까지 문화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는 대다수는 밥 세 끼 챙겨먹지 못하는 형편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계인 연예인들만 있는게 아니라 심지어 영화, 드라마를 한 편을 만드는 영화감독, 드라마 작가까지 혼자 가난에 시달리다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문화로 먹고 산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통해 한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한 우석훈은 이번에는 <문화로 먹고살기>를 통해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한국 문화산업 시스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방송, 출판, 영화, 연극, 가요, 스포츠 등 문화산업이라고 포함될 수 있는 폭넓은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연예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민주당 소속 전병헌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방송출연 등급별 출연료를 공개하고 가수들에 대한 처우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국세청에서 발표된 원천징수 소득세를 역추산한 결과, 가수 월평균 수입은 80만원으로 월평균 소득 150만원인 배우에 비해 소득 수준이 월등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 한류스타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는 한국에서는 회당 16만원의 최저 출연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들의 천차만별 방송 출연료가 나오게 된 원인은 다양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버라이어티쇼의 등장과 관련된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버라이어티쇼는 신인 연예인을 데뷔시켜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등용문으로서의 목적보다는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국민적 인지도를 갖춘 연예인들의 상징자산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2차시장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pp 62)
연예계 출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된다면 신인 연예인 데뷔는 어려워지며 특히 20대 연예인들의 활동이 쉽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 사회가 젋은층이 줄어들고 대신에 노년층이 증가하는 고령화 사회인 것처럼 연예계에도 인지도가 높은 30대 후반, 40대 중반 연예인들이 많은 고령화 현상이 될 수 있다.
연예계 진출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근본적인 원인에는 시청률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방송의 특징도 한 몫 하고 있다.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 연예인보다는 국민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연예인 출연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폐쇄적인 연예시장 구조는 연예들끼리 방송 출연에 혈안이 되어 서로 경쟁해야하는 잔인한 현실을 만들고 있다.
문화로 먹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저자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을 사람 대신 화물을 잔뜩 실어 수출선으로 바꾸려는 행위에 비유했다. 문화를 팽창의 논리로만 보았지, 재생산의 눈으로는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이 발달되고 있는 과정보다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경제적인 결과에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K-POP 열풍으로 인해 아이돌 가수들의 국제적 위상은 높았지만 이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위상은 낮기만 하다. 90년대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가수라면 앨범 판매량이 100만 장 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10만 장 이상 팔려야 앨범 판매량이 높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문화산업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증가하는 반면에 문화산업과 관련된 대중들의 경제적 지출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우석훈 소장은 우리나라 문화산업 지출이 줄어든 이유를 '승자독식' , '빈익빈 부익부' 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의 생태계적 구조에서 찾고 있다. 우리 문화산업 전반에 파고든 토건산업적 사고방식은 문화산업의 문화 생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산업에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수익에만 강조하게 되었다. 문화 생산자들은 그저 경제적 이익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의 상품처럼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산업 발달을 위해서 돈만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고 우석훈 소장은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문화' 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문화 덕분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문화 생산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문화산업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미 문화예술 영역에 들어와있는 문화 생산자들이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데에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특히 가난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드라마 작가의 자살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사건 이후로 문화예술인들의 고용, 산재 보험을 골자로 한 '예술인 복지법' 을 입법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논의 과정 끝에 유보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입법 관련 소식이 감감무소식이다.
새로운 가치를 지닌 문화가 탄생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좀더 보편적인 복지다. 정부가 문화예술의 '한류 열풍' 을 내세우면서도 문화인 또는 문화 기획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외면하게 되면 실속 있는 문화산업으로의 장기적 발전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문화 생산자 및 관련 종사자들을 배려하는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문화로 먹고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이도, 문화를 포기하지 못해 가난에 허덕이는 이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문화로 먹고 살기 위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 관련내용 참고 언론자료
[연예비리 14건 적발…방송사 PD·브로커 등 140명 검거] 한국경제 2011년 7월 21일
[[국감파일]슈퍼주니어 1회 TV 출연료 16만원] 경향신문 2011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