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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1750년, 디종 아카데미 현상 논문 공모전에서 무일푼으로 방랑 생활을 하고 있었던 장 자크 루소는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일명 학예론)>라는 논문 한 편으로 인해 공모전 우승의 명예를 거머쥐는 동시에 '사회사상가' 라는 새로운 명함도 가지게 되었다.
루소는 또다시 디종 아카데미 논문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는데 아카데미가 제시한 주제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 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가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인간이 왜 불평등한가' 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만 했고,굶주려야 했던 루소가 자신의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루소는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을 문명 그 자체로 보고 있다. 귀족과 같은 특정 계급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 인간의 문명 자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들과 계몽주의 사상가들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루소의 주장은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매우 진보적이었지만 '과거' 로 표현되고 있는 자연 상태로의 복귀를 꾀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적 사상' 이기도 했다.
특히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계몽주의 사상과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루소의 절친한 친구이자 백과전서파에 활동한 디드로 역시 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때 친분적 교류를 맺었으나 학문적 입장 차이로 인해 철천지 원수(?)가 된 볼테르는 문명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들의 '소유' 행위가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생각한 루소의 주장에 대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다.
"이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의 철학이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창작과 비평사, pp 102)
그리고 루소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디종 아카데미는 칭찬 일색이었던 <학예론> 때의 반응과 다르게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야박한 평가를 내렸다. 결국 루소는 두 번째로 참가한 논문 공모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
얀 브뤼헐 & 피터 파울 루벤스 <아담과 이브가 있는 에덴 동산> 161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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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본능 속에 갖고 있었으며,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훈련된 이성 속에 갖고 있었다. 우선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들은 서로간에 도덕적인 관계도, 분명한 의무도 갖고 있지 않아서 선인(善人)일 수도 악인일 수도 없었으며, 악덕도 미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pp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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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에 따르면 원초적 자연상태의 인간은 행복하게 자족하는 존재이자 선악 개념에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보존의 본능에 맡겨져 서로 고립되어 생활하고, 그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전념하였다. 자연인은 미덕도 악덕도 모르고, 신체적 불평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등하였다. 루소의 입장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저마다 자유롭고 평등하여 생존을 위한 자연권을 추구하기 위해서 악하다고 보는 일명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라는 홉스의 견해를 부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개념과 감정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유순해지고 관계가 확립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pp 103)
그러나 자연상태의 인간은 공동체 경험 속에서 파괴되고 만다. 비교의식과 우월성에 대한 욕구가 소유욕과 결합하면서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분업과 가족, 사유재산의 도입을 포함하는 일련의 발전과정에 의해 자연상태에서의 능력과 자질의 자연적 불평등은 시민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으로 진화된다.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 건강, 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더 권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pp 45)
루소는 지배와 굴종, 폭력과 약탈이 '소유' 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과 동등하게 여겨짐으로써 평등은 깨지고, 무질서의 불평등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사유제도의 등장과 함께 평등은 사라졌다. 사유제도는 합의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정치적 불평등을 야기시켰다. 이윽고 부자의 횡령과 빈자의 약탈이 시작돼 무서운 전쟁 상태에 이른다. 부자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계약에 의한 여러 가지 불평등,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주인과 노예의 상태를 제도화한다.
시대를 넘어 지속되는 불평등
결국 이러한 탐구의 과정 끝에 루소가 제시한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루소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끝까지 제시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그토록 자유롭고 불평등에서 해방된 존재라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다. 앞서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 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상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루소는 <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 라는 일종의 대화록에서 "인간의 본성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한번 잃어버린 순수성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고 밝힌 바 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해제, pp 158) 루소 자신도 역사의 움직임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Occupy Wall street(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또한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와 제도에 주된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최근 미국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월 스트리트 거리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Occupy Wall street(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현상이 그 예이다. 타락한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인류는 모두 불평등하다' 라고 말했듯이 사회 불평등은 시대를 넘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루소의 충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