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 6기 ' 여섯 가지 주제로 본 우리 고전문학 ' 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강연이 대구에서 진행되었다.
평소에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에 관심이 많았는데 대구에 사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한 달에 두 번 하는 독서모임 때문에 서울에 왕래하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알라딘 인문학 강연이 주말이 아닌 평일에 진행되어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인문학 강연이 대구에서 진행된다는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순간, 절호의 기회다 싶어서 댓글로 신청하였다. 강연 장소도 평소에 많이 가본 도서관이었고 운이 좋게도 강연 날짜가 학교 축제 기간이라 당연히 휴강할 것이라는 예상 하에 강연에 참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강연 이후로 오랜만에 참석하게 되는 강연이라서 예습 차원으로 이 두 책을 읽을 정도로 강연 날짜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수요일에는 유익한 강연을 듣고, 목요일에는 다른 학교 축제에 가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실컷 놀려고 이번 한 주의 스케줄을 딱 잡았다.
하지만 강연에 대한 큰 기대감은 한 통의 문자 하나로 인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강연 전날에 모 교수님에게 문자가 온 것이다. 원래 축제 기간에는 휴강한다는 공지의 문자가 오기 마련인데 이 교수님은 7시 30분까지 학교 축제 현장으로 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셨다. 하필이면 교수님이 오라는 날짜와 시간이 알라딘 강연 날짜와 겹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교수님의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황당하였다. 문자 내용으로 봐서는 축제 기간에 수업하는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한데 교수님의 문자 한 통 때문에 계획된 일정이 틀어져버려셔 약간 속이 상했다. 나는 그 날 알라딘 강연에 참석할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 가야할까 많이 고민했다. 왠지 학교에 안 가면 결석 처리될 거 같고, 그렇다고 대구에서 하게 된 알라딘 강연이 허무하게 놓치는게 아쉬웠다.
결국 고민 끝에 알라딘 강연을 포기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내내 머릿속에는 강연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자꾸 맴돌았다. 하지만 아쉬움의 여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 문제의 모 교수님을 만났는데 축제를 즐길 겸 학생들과의 친목을 도모 목적으로 같이 주막에서 술 마시자고 문자를 보낸 것이었는데 ,,,
스쿨버스 타는 시간인 11시까지 3시간동안 교수님과 몇 몇 친한 학생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만난 교수님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교수님이다. (대략 나이를 추정해서 높게 잡으면 40 정도,,,? 노처녀일거라고 예상됨) 그런데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다.
첫잔부터 나에게 소주+맥주 폭탄주를 건네셨다.
ㅎㅎ 이거 뭐,, 누군가 나에게 소맥을 건낸다는 것은 나에게 도전 신청하는거나 다름이 없다. 나는 술판을 소맥으로 시작하면 소맥으로 원샷 스트레이트로 술판을 마무리한다. 역시 술 중에 금방 취기가 오게 만드는 것이 소맥이 최고 아닌가? ^^;;
어느 정도 취기가 오게 되자 나는 어떻게든 교수님 일찍 보낼려고(?) 소맥을 자꾸 권했다. 여교수님답게 못 마시겠다고 내숭은 떨면서도 잘 마셨다 ㅎㅎ;;
역시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든 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건 역시 술 밖에 없는거 같다. ^^;;
공교롭게도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고전문학에 대한 글을 작성하려는 계획이 무산될뻔했는데 운이 좋게도 다음 달 펭귄클래식 독서모임 선정도서 중에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문학 작품이 선정되어서 ' 그 작품 ' 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허균(1569~1618)의 <홍길동전>이다.
굳이 길게 설명 안 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고전소설이다.
집에 민음사 문학전집 세트 중의 한 권으로
소설가 김탁환 씨가 풀어 쓴 <홍길동전>을 가지고 있다.
민음사판 <홍길동전>의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백범영 씨의
일러스트가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읽는데 지루할 수 있는
고전소설 속에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으면 읽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민음사 판본도 읽어봐야겠다.
펭귄과 민음사 판은 공통적으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과 수록되어 있는데 부록은 다르다.
펭귄 판 부록에는 경판 24장본 목판 방각본이, 민음사 판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완판 36장본 영인본이 실려 있다.
<홍길동전>은 펭귄클래식, 민음사 전집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세상판 세계문학전집에도 출간되었다.
책세상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 펭귄클래식 전집에
비해 인지도가 낮지만, 책세상 전집은 다른 문학전집과 다르게
번역자가 쓴 작가와 가상 인터뷰라는 내용을 부록으로 싣고
있어서 눈여겨 볼 만한다.
특히 책세상 판의 <홍길동전>을 풀어 쓴 분이 허경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다. (우연하게도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같은 성씨다)
최근에 독서모임에 같은 조에 속한 일명 ' 반장님 ' 이라는 분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이 지금까지 쓴 고전문학 관련 저작물 중에는 <허균 평전>(돌베개, 2002), <허난설헌 시선>(평민사, 2008). <매창 시선>(평민사, 2007) 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난설헌(1563~1589이라면 허균의 누나이며 허균 못지 않게 천재적인 시작(詩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삶을 산 비운의 여류 시인이며 매창(1573~1610)은 허균과 교류 관계를 가진 기생이며 여류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청백리에 녹선될 정도로 청렴결백한 관직 생활로 알려진 허엽과 그들의 자녀인 장남 허성과 차남 허봉, 삼남 허균 그리고 딸 허난설헌으로 이루어진 일명 허 씨 패밀리는 중국와 일본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왕에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는 김에 허난설헌의 한시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문제집에서 본 허난설헌의 <빈녀음>(貧女吟) 중 제2수가 기억이 남는다.
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夜寒十指直(야한십지직)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年年還獨宿(년년환독숙)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느라면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남을 위해 밤을 새워 하는 바느질과 자신의 불우한 삶을 대비시켜 조선 시대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사회적 불평등, 즉 문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귀속 지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허난설헌 본인의 처지를 이입시킴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그리고 허난설헌이 쓴 한시 중에서 가장 비장감이 느껴지는 시가 곡자(哭子)이다. 시의 제목을 풀이하자면 ' 죽은 자식 앞에서 울다 ' 라는 뜻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잃은 슬품을 가장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핏덩어리들 말이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簫簫白楊風(소소백양풍)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玄酒奠汝丘(현주전여구)
應知弟兄魂(응지제형혼)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縱有腹中孩(종유복중해)
安可冀長成(안가기장성)
浪吟黃臺詞(낭음황대사)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엔 아끼던 아들을 보내었네.
슬프고 슬프다, 이 광릉 땅에
두 개의 무덤이 마주 서 있네.
백양나무 숲엔 쓸쓸히 바람 불고
도깨비불은 송추에서 번쩍인다.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현주(玄酒)를 너의 무덤에 뿌린다.
응당 너희 남매의 혼은
밤마다 서로 좇으며 놀리라.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한들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리.
아무렇게나 황대사 읊으며
흐르는 피눈물 소리죽여 슬피 운다.
허경진 교수의 <허균 평전>과 같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인 이이화 선생이 쓴
<허균>(한길사, 1997)도 있지만 워낙에 오래 전에 출판된
책이라 절판 상태이다.
하지만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 평전>(장정룡 저,
새문사, 2007)가 출간되어서 보조적으로 읽어보면
좋을거 같다.
정말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고전문학과 관련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우리나라 고전문학 독서를 소홀히 한거 같다. 알라딘 고전문학 강연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허균의 <홍길동전>과 허난설헌의 섬세하고 가슴 찡하게 만드는 한시를 감상하면서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