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다음 가사 속 단어의 연관성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 . .
 
   

가사를 보는 순간, 어릴적에 많이 불렀던 구전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인 백두산으로 끝나는 작사, 작곡사 미상의 이 노래는 끊임없이 연관된 단어들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노래 가사에서 등장하고 있는 굵게 표시된 단어들에는 재미있는 연관성이 있다.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아무리 뚫어지게 네 단어를 쳐다봐도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주식이 바나나라는 것을 알겠는데, 사과와 기차는 바나나와는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댄 쾨펠이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바나나: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연관성을 알아내기 위한 결정적 힌트는 '바나나' 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바나나 특유의 모양처럼 길고 긴 역사를 알면 원숭이, 사과, 기차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먹었던 것은 , , ,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다 알고 있는 성서 속 내용이다. 하느님이 만든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버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 즉 사과열매를 따 먹게 됨으로써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래서 아담의 목에는 그 때 먹었던 사과가 걸려 있어서, 목젖(Adam's apple)이라는 남성만이 가질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생겼다는 기원 역시 유명하다. Adam's apple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담이 먹은 열매가 사과라는 성서 속 기록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댄 쾨펠은 바나나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서 속 기록을 뒤집는 새로운 문헌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성서에는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가 사과라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선악과가 사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성 히에로니무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악' 과라고 쓰여진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malum' 이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성서 관련 연구자들은 히에로니무스가 이 라틴어 단어를 쓴 의도가 '악의적인, malicious' 와 비슷한 어감에서 착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가 사용한 'malum' 은 '사과' 로도 번역될 수 있어서 후세의 성서 기록자와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선악과를 사과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서는 자신들이 나체인 것을 깨닫게 되자 수치심에 무화과 잎사귀를 가린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는 바나나를 무화과로 불렀다는 것이다. 즉, 고대의 선인들이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를 사과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나나라는 식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황이 낳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이 책에는 저자가 찾았다던 최고(最古)의 성서 원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소개되지 않아서, 근거의 진위성에 대해 의심이 든다. 댄 쾨펠은 단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성경 원본들' (p 24)' 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기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바나나 사업

16~17세기 유럽의 신항로 개척 이후 열대지방에만 자라는 특별한 과일이었던 바나나는 전 세계 대륙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나나를 통한 무역도 이 시기부터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된 바나나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바나나 무역을 담당하던 로렌조 도우 베어커라는 사람은 본격적으로 바나나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가 만든 회사가 보스턴 프루트였다. 1900년에는 UFC(미국의 유명한 이종격투기 단체인 UFC가 아니다. 이종격투기 단체의 약자는 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이고, 바나나 회사 UFC의 약자는 United Fruit Company이다)로 개명되었고, 지금은 치키타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바나나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초반 바나나 사업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바나나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 지방에서만 자라는 과일이다. 열대기후와 전혀 다른 아메리카나 유럽 대륙에서 바나나가 쉽게 자랄 수는 없었던 것이다. 18세기 중반, 바나나 최다 원산국은 코스타리카였는데 사실은 코스타리카가 바나나 최다 원산국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미국의 한 사업가가 코스타리카에 국유 철도 건설을 하게 됨으로써 바나나 운송에 대한 최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 국토는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철도 건설로 인하여 수많은 열대우림들이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사업가는 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철로 주변의 개간지에 바나나나무를 심었다. 중앙아메리카대륙과 미국을 연결하는 대형 철도가 있으니 코스타리카에 자란 품질 좋은 바나나를 기차를 통해서 쉽게 운반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바나나 사업을 담당하는 UFC와 그 밖의 나머지 경쟁 회사들에게는 기차와 철도 덕분에 자신들의 이익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철도 건설과 바나나 사업 뒤에는 코스타리카에 자라던 수많은 야생의 나무들은 베어지고, 철도 건설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해야만 했던 암울한 문제점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노동 개혁을 주장하지만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이들의 노동 착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정부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에 코스타리카와 더불어 중앙아메리카대륙 바나나 원산국이었던 과테말라 정부의 국가 운영권은 엉뚱하게도 바나나 회사 UFC로 넘어가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과테말라 전체 바나나 경작지의 70%는 UFC의 소유였다. 그리고 이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놀랍게도 무려 99년(!)이었다. 과테말라를 통치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리를 얻은 UFC는 빼앗은 국력의 힘을 이용하여 이들 나라의 노동자들을 쉽게 착취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저항을 하게 되면 미군들이 이들을 억압하였다. 그래서 UFC, 아니 치카타는 세계 최대의 바나나 수입 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다.  

 

 

  슬픈 열대 과일, 바나나  

바나나에 의해서 생긴 암울한 역사는 바나나 원산지의 노동자들을 착취한 것뿐만이 아니다. 파나마병이라는 지금까지도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바나나들이 죽어가게 되자 바나나 회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나마병을 이길 수 있는 좋은 품종의 바나나를 만들어야 했다. 병, 해균의 위험성에 강하는 야생 바나나와 맛이 좋은 복제 품종 바나나끼리 교배하여 좋은 품질과 병에 강한 내성을 두루 갖춘 바나나로 만들게 되었다. 이런 교배식으로 인해서 열대우림의 야생 바나나는 절멸의 길로 걷게 되었으며 지금도 학계에서 지정된 야생 바나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도 시장과 대형마트에 팔고 있는 바나나는 야생 바나나가 아닌 복제와 개량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바나나이다. (사실, 야생 바나나는 원래 사람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열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개량된 바나나 역시 무시무시한 파나마병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나나 회사가 제시한 해결방안은 바나나나무에 강력한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었다. 살충제 덕분에 바나나 열매는 병을 피할 수 있었지만, 바나나 나무 경작지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되었다. 바나나 회사가 개발한 살충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가득했던 것이다. 살충제에 접촉한 노동자들의 피부는 파랗기 시작하였고 심한 열병에 걸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살충제의 위험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바나나 회사는 지금도 살충제 이용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자들보다는 자신의 손에 많은 돈을 쥐어질 수 있는 바나나를 위해서 말이다. 바나나 경작지 노동자들은 바나나보다 못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이 책에 대한 평에서도 밝혔듯이 바나나의 역사는 곧 슬프고 암울한 세계화의 역사이다. 우리가 시중에 팔고 있는 초콜렛이 아프리카 대륙의 카카오 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원주민 노동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듯이 바나나 역시 초콜릿 가공 과정과 유사한, 세계화의 그늘에서 탄생된 악마의 과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대국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까지 자신들이 길러낸 바나나를 바나나 원산국인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요즘 세계의 식량 고갈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만큼 바나나는 개도국 및 빈곤국가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주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는 권한은 정부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버티고 있는 바나나 수입 회사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세계의 식량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바나나의 길고도 암울한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상, 당분간은 시중에 팔고 있는 맛있는 바나나를 먹게 되면 목구멍에 쉬이 넘어가지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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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1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셈버 별이 될게 들어봤어요.

정말 비슷한데요~ 동생도 같이 들어봤는데 녀석은 잘 모르겠다고 하네요.

표절판정의 기준은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작곡가의 양심에 맡기는 수 밖에 없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cyrus 2010-11-18 21:04   좋아요 0 | URL
조영수 작곡가 측에서 표절 시비에 대해 입장은 밝힌 적은 없다지만
디셈버 측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하네요.
그래서 이번 표절 시비는 조용히 묻어갔네요^^

양철나무꾼 2010-11-18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바나나 텔레비젼에서 봤는데요,완전 초록색이더라구요.
그걸 후숙시킨다고 한더군요.
알면 못 먹을 과일들 넘 많아요.
전 바나나를 제일 편안해 하는데...
옛날에...공부 좀 했을 때...바나나 한송이 가지고 들어가면 다 먹을 때까지 안 나오고 공부도 했었는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18 08:06   좋아요 0 | URL


고시생이었나요? ㅋ

cyrus 2010-11-18 21:07   좋아요 0 | URL
바나나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사람들의 입맛을 위해서
(물론 그 의도 뒤에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과일을 팔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요) 약품 처리는 피할 수 없는거 같아요.
바나나 한 개 뒤에는 이런 안 좋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바나나 섭취 반대를 하기에는 그렇고,,,
바나나 뒤의 어두운 세계화의 그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만족해야겠습니다.

꽃도둑 2010-11-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할넘의 바나나, 니가 한 짓을 다 고하렷다.
아니 저 대단하신 다국적기업과 그 기업들을 눈감고 밀어주는 각 나라 정부의 목을 비틀어야 노동착취당하는 농민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그나마 공정무역을 통해 들어온 물건을 사면 되지만...그것으로는 약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다음 가사 속 단어의 연관성은?
퀴즈 풀려고 들어왔다가....에혀~ 열만 받고 나가네요.ㅜ.ㅜ

cyrus 2010-11-18 21:10   좋아요 0 | URL
예전에 신간평가도서에서 이 책 소개하신 분이 있었던 같던데,,
그래서 한 번 읽어봤는데 우리가 자주 먹는 바나나 뒤에
이런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빈곤국의 사람들은 바나나를 먹어보지 못하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도란도란 2010-11-1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알찬 서재 잘 구경하고갑니다
저는 이음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연일 차지하여 화제가 되고있는 도서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한국판 출판 기념으로 서평단을 모집하고있거든요^^
책을 사랑하시는 cyrus님께서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리플 남기고가네요
저희 블로그에 방문해주세요~! :)

다이조부 2010-11-18 21:06   좋아요 0 | URL


어~ 이 블로그에도 있네요 하하하

난 왜 이런 공지를 못 받을까요 ㅋㅋㅋ

cyrus 2010-11-18 21: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떻게 재 서재를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는 좋은 출판사 블로그를 알게 되었네요.
방금 출판사 블로그 확인해봤는데, 리뷰를 개인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블로그, 두 곳에 올려야하더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바쁘고 개인 블로그를 만들지 않아서
서평단에 참여는 못할거 같습니다. 그래도 서재 블로그에는 자주
들리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신문의 신간소개에 이 책이 소개될 때 성서해석 문제에 관심이 갔는데 그다지 명확한 건 아니군요.

중남미의 미국대사관과 유나이티드 프루츠, 그리고 ITT는 미국의 공작정치를 상징하는 조직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