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의 문학 수업 - 7회(이육사)
요즘 읽고 있는 미술 도서가 사바나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옥 씨의 <아침미술관> 2권이다. 작년에 발간된 1권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올해 나온 2권에 대한 기대도 컸다. 365일 매일 아침 그림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1권은 1월에서 6월까지, 2권은 7월에서 12월까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1권을 읽은 이상 2권도 안 읽을 수가 없다. 이 책 두 권을 구입하여 저녁때는 칼 힐티의 에세이집이나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침에는 이 책을 하루씩 읽는 것도 참 괜찮은거 같다. 그림 한 점과 저자의 단상을 함께 읽으면서 하루의 시작을 여는 아침에 정신적인 포만감이 들 것이다.
2권에도 1권처럼 유명 화가의 명화들과 아직까지 나에게 생소한 국내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이틀만에 다 읽었지만, 수많은 그림과 글 중에서 인상 깊은 것도 있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 <눈 먼 소녀>
출처 http://100.naver.com/100.nhn?docid=889992
2권 [8월 12일 - 희망의 무지개] 라는 글에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밀레이(1829~1896)가 그린 유명한 <눈 먼 소녀>가 소개되어 있다.
그림 속 두 여성은 자매이다. 여기서 눈 먼 소녀가 언니이며 장님인 언니 품 안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는 그녀의 동생이다. 장님 소녀의 무릎 위에 손풍금이 있는걸로 봐서는 손풍금 연주로 돈을 버면서 근근히 동생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이 그림에 대한 설명에는 손풍금 연주로 연명하는 가난한 부랑자 자매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나는 그림 한 점을 보면 그림에 대한 나만의 해석도 해본다. 처음 이 그림을 본 순간, 두 자매가 부랑자 생활을 한다기보다는 비 오고 난 뒤에 잠깐 나들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림 속 손풍금은 그냥 평소에 장님 소녀가 연주하는 악기일 수도 있다고 본다)
잠깐 소나기가 지난 간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이 청명하다. 거기에다가 정말 보기 드문 쌍무지개까지 떠 있어서 언니 옆에 있는 동생의 시선은 하늘 위의 쌍무지개로 향하고 있다. 평생 한 번 보기 어려운 장면을 목격한 순진무구한 동생은 앞을 보지 못하는 언니에게 쌍무지개를 봤다고 살짝 귀뜀을 했을 것이다. 두 자매가 꼭 맞잡고 있는 손에는 자매 간의 두터운 정(情)을 넘어선, 그녀들이 겪어야 할 어렵고 힘든 세상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이 쥐어져 있다.
어쩌면 하늘 뒤의 쌍무지개가 지상에 있는 두 자매를 상징할수도 있겠다. 비가 내린 뒤에 생기는 무지개가 '희망'을 상징하고 있는,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는 아름다운 끈이니까.
이명옥 씨는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 한 구절로 단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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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나니
나 어려서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할진대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리.
- 윌리엄 워즈워스 <무지개> 중에서, <아침미술관 2>에서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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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인용하면서, 단상은 독자들에게 힘든 삶 속에서도 희망의 무지개를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워즈워스의 이 유명한 시도 참 좋은 내용이지만, 사실 이 워즈워스가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지개를 통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예찬하고 있다. 나는 밀레이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렸다. 워즈워스의 시 대신에 내가 생각한 이 시를 글에 삽입했으면 참 좋았을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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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치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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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1904~1944)는 일제 강점기 때 활동한 저항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서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일제에 대한 민족적 저항 의식이 담겨져 있다. 시 속의 '매운 계절의 채찍' 과 '서릿발' 은 일제 강점하의 가혹한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시 속 화자는 북방에 휩쓸려 오고, 고원 위에 서 있는 모진 극한적 고통의 현실에 처해 있다. 그는 자신이 처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자신의 의지로 견뎌 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힘든 현실 앞에서 체념하지 않는다. 싸늘하고 비정한 '겨울' 이지만 화자는 눈을 감으면서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화자의 머리속에는 '강철로 된 무지개' 가 떠오르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참된 삶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다.
비록 장님 언니는 동생과 함께 이 아름다운 세상의 장면을 볼 수 없지만 그녀 역시 마음속으로 쌍 무지개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이 장님이라는 불행한 운명과 아직 세상을 모르고 있는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하늘 위에 떠오른 아름다운 쌍 무지개가 아닌 이육사의 시처럼 삶의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튼튼한 강철의 쌍무지개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도 고난과 시련 앞에서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강철로 된 무지개가 떴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