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썼던 윤동주와 함께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
감옥에서 번호가 264번이어서 원래 이름을 버리고 이육사로 불리기도 한대. 

이육사 시는 뭘 배웠지?
고등학교 책에서 <광야> 배웠고, 중학교 때 <청포도> 배웠나?
우선 '청포도'랑 '광야'부터 간단하게 보고 시작하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이 <단정>하다는 거야.
마치 조선의 강직한 선비처럼 단정한 한복을 다려 입은 듯한 형식이지.
연의 길이가 비슷해서 시각적으로 단정하단 느낌을 준단다. 

이 시에선 <시각적 심상>이 많이 나오지?
<심상>이란 글을 읽고 마음에 그려지는 '감각'인데,
직접 감각이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마음 속에 그려지는 것이지. 

청포도의 푸른 색, 하늘과 바다의 푸른 색과 흰 돛 단 배, 푸른 도포의 엷은 옥색,
은쟁반의 은빛과 하이얀 모시 수건...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라고 하지. 

그리고 전설에 따라서 화자가 간절히 기다리는 대상은 누굴까?
가장 힘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
희망을 품게 해 주는 존재. 그런 것이겠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게 해 주는 존재.
일제 강점기임을 고려하면 독립이나 해방 같은... 

그래서, 준비를 하자고 하네. 하이얀 모시 수건과 은 쟁반.
마지막 연의 '아이야,'는 시조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감탄사>와 유사한 구절이지.
전통적 형식을 이어받은 거라고 볼 수 있단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도 '아아'로 4/4/2의 세번째 부분이 시작하고 있었던 것 기억하니?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손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럼, <광야>를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5연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연이 몇 행?
가지런하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절정>도 4연이 모두 2행이었고, <교목>도 3연이 모두 3행으로 일정했단다.
물론 더 넣고 싶은 말이 있었어도 퇴고 과정에서 많이 뺐겠지. 

이 시 '광야'는 참 스케일이 큰 시란다.
보통 이육사의 시를 <남성적>이라고 하는데, 꼭 남성만이 웅장한 건 아니지만,
규모가 크고 웅장한 것을 보통 '남성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수능에 그런 용어가 나진 못해. 고발당하거든 ㅋㅋ 

이 시는 1,2,3연과   4연,      5연의 세 부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되어있단 건 배웠겠지?
1연을 줄이면 "옛날에"가 되고,
2연을 줄이면 "광야에서"가 되고,
3연을 줄이면 "역사가 열렸다"가 되지.
보통 '강물'은 '역사'를 <상징>하니깐. 

잠깐, 상징을 이야기할게.
<상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생각나는 걸 말해. 마법적 연결이라고 하지.
'비둘기'는 더럽고 지저분한 새일 수도 있는데 무엇의 상징?
그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평화!
'십자가'는 형틀인데 무엇의 상징?
그렇지, 예수님 또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이지.
보통 '강물'은 흐르는 '역사'를 상징해. 

다시 4연으로 가서. <현재> 기상 상태가 어떻습니까? 지금 눈 내리고... 지.
상태가 안 좋아. 일제 강점기.
근데, 그 눈 속에 핀 꽃이 있어. 절개가 곧은 꽃.
추워도 핀다면 피는 꽃. 매화지.
매화는 지조가 곧은 선비의 상징으로 쓰인단다.
예로부터 '매화, 난초, 국화, 대'(매난국죽)을 4군자로 불렀어.
선비의 상징.
화자는 그 일제 시대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추워도 할 일은 하는 거지.
윤동주 처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소명 의식.
또는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붉은 피를/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는 희생 정신. 속죄양 의식.
이런 게 드러나지.

내가 <현재> 뿌린 씨앗이 '천고의 미래' 나중 나중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노래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이 시의 주제는 배웠지?
이육사 시의 대부분의 주제는 이거야.
<앞부분에서는 고난>, <뒷부분에서는 극복> 합치면, <시력, 고난의 극복>
이 시도 그래. 고난 극복의 의지. 강한 의지적인 시라고 할 수 있지.

<절정>과 <교목>은 전에 했으니 패스~
이 시들도 가지런하고,
시련 극복의 의지가 들어있는 시란다.
이육사의 선비 정신이 가득한 시.
다음엔, 이육사의 '꽃'을 보자.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꽃)


이 시도 역시 3연이 모두 4행으로 형식은 어때?
단정하고 가지런하지.
앞에서 시련을 뜻하는 단어 뭐가 있을까?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은 그때,
북쪽 툰드라의 찬 새벽, 이런 거지. 

그럼, 희망과 의지를 나타내는 시어는?
1연의 가뭄에도 오히려 빨갛게 피는 꽃.
2연의 옴작거리는 꽃 맹아리. 저버리지 못하고 날아올 제비와 피어날 꽃의 약속.
3연의 꽃이 성을 이룬 장면, 나비처럼 <의지>를 갖고 <희망>을 부르는 무리들(우리 민족)

이 시의 1연의 <오히려>, 2연의 <마침내> 3연의 <불러 보노라> 이런 시어들은
아주 강렬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니?
이육사의 특징이 잘 드러난단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 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노정기)

노정은 '어떤 지점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나 시간'을 뜻하는 말이야.
<노정기>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 또는 기록이지. 

이 시도 역시 5행이 각각 3연으로 가지런하다.
1연에서 초라한 '목숨'을 이야기하지.
2연에서도 '작은 배 쩡크선'처럼 세상에 찌든 모습이고.
3연에서 '암초, 태풍'과 싸우는 시련 가득한 인생.
2연에서 <남들은 기쁘다는 인생>, 3연에서 <산호섬>도 <남십자성>도 없는 슬픈 인생을 회고한단다. 

4, 5연에서 쫓기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뭍에 오르면
시궁창과 거미와 다 삭아빠진 소라껍질에 붙어 온 자신의 인생.
흘러 흘러 먼 항구로 흘러들어간 자신의 슬픈 생활을 들여다 보는 시.
아빠가 이야기한 것이 하나 다르지?
이 시에는 <시련, 고난>은 있는데, 뭐가 없어? 
그래. 이 시는 <회고적, 비극적>인 시일 뿐이지, <의지적>, <희망적>인 시는 아닌 거야.
이 시의 주제는 <쫓기는 삶의 비애, 과거의 어두운 삶 회고> 정도가 되겠지.

이육사는 1904년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단다.
이 시절 선비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육사도 어린 시절에는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어. 
그는 1925년에 폭력도 서슴지 않던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한다.
1931년 북경으로 다시 건너간 육사는
이듬해 조선군관학교 들어가서 두 해 뒤에 조선군관학교 제 1기생으로 졸업한다.
1943년 일본 형사대에 붙잡혀 해방을 일년 남짓 앞둔 1944년 1월 북경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육사(陸史)라는 그의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27년 처음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그이 죄수번호가 264번이어서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어.
육사는 투쟁론의 입장에 선 독립운동가이며 또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시험에 엄청 나오지.

이렇게 시에는 시인이 살아온 <시대>와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이
물결이 지나가고 난  뒤의 모래밭처럼 남게 되어 있단다.
민우도 살고 난 뒤,
어떤 모랫결을 남기게 될는지...
잘 생각해 보는 주말이 되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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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철로 된 쌍무지개
    from 男兒須讀五車書 2010-11-07 23:47 
                   요즘 읽고 있는 미술 도서가 사바나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명옥 씨의 <아침미술관> 2권이다. 작년에 발간된 1권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올해 나온 2권에 대한 기대도 컸다. 365일 매일 아침 그림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1권은 1월에서 6월까지, 2권은 7월에서 12월까지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1
 
 
cyrus 2010-11-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육사 시인은 어두운 시대 속에 살면서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차분하게 시로 표현하고 있어서 좋습니다.
글샘님에서 소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절정>이라는 시도 좋았습니다.
제가 쓴 페이퍼 중에 <절정>에 대한 글 한 편 썼는데 여기 먼댓글로 올려도 되는지요?
그리 잘 쓴 글은 아니고, 이육사의 시에 대한 감상이 없지만,,
이육사의 <절정>과 어울리는 그림 한 편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샘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봅니다. 글샘님뿐만 아니라 글샘님의 서재에 들리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샘 2010-11-07 20:48   좋아요 0 | URL
'절정'은 전에 <역설> 공부할 때 한번 다뤄서 여기선 뺐습니다.
먼댓글로 붙여 주세요. 어떤 그림일지 궁금하네요.

cyrus 2010-11-07 2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샘님.

반딧불이 2010-11-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포도>를 처음 읽었을 때 포도는 온데간데 없고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이 도드라져보였던 기억이 있어요. 모시수건에 포도물이 드는걸 걱정하기도 했었구요. 청포도 사진과 함께 하니까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글샘 2010-11-07 20:4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푸른 이미지보다는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 이미지가 정말 선명하죠.
ㅋㅋ 포도물이 드는 걱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