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민화의 세계에 처음 마주치다  

 

 

  

민화(民畵)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조선 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민화라는 뜻 자체에서도 '백성 민' 자가 들어가니깐 민화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민화의 정의를 알고 있다.  그러나, 민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뒤에는 잘못된 선입견도 가지고 있다.     

   민화는 이름 없는 서민들이 그린 그림이다,  

   유명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하면 민화의 그림 수준은 낮고 작품성은 떨어진다.  

   민화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기만 하다.  

   미술품 경매에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가격을 매기지 못할 것이다.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 탓인지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한국미술 관련 도서들에도 대중들을 위해서 민화를 소개한 책들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미술에 어느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민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 있는 이도 보기 드물다. 간송미술관 같은 대형 박물관 및 미술관에 전시되는 풍속화나 서예 작품들에 사람들은 많이 몰리지만, 한국 민화 전시회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두 번째 선입견처럼 민화는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대중들은 민화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민화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대중들의 취향처럼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나 겸재 정선의 산수화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예전에 E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라임 <풍속화, 조선을 깨우다> 김준근 편을 보면서 민화라는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김준근의 풍속화을 보게 되면 민화와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이 방송을 통해서 처음으로 김준근이라는 원산의 화가를 알게 된 나는 그의 풍속화에서 우러나오는 색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전에 나온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속 사람들과 비교하면 

  김준근이 그린 사람들은 생기가 살아있다." 

비록 TV 속 브라운관에 흘러나오는 영상이었지만, 그린 지 수백 년이 지난 김준근의 풍속화에는 여전히 색이 살아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김준근은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왕실에서 활동하는 궁정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18세기 때 외국 문물의 유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김준근은 원산, 부산과 같은 항구 도시를 넘나드면서 조선에 건너온 외국인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려 팔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외국인에게 건낸 그림에는 조선 시대의 일상 생활을 담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려 외국인에게 판 것이라면 어쩌면 김준근은 민화를 최초로 외국에 소개하였고, 거래를 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 박물관에는 김준근의 풍속화집이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나는 조선 시대에는 민화도 어느 정도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때마침 올해에 출간된 이기영 씨의 <민화에 홀리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준근의 그림 덕분에 민화의 세계에 처음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 모자란 민화에 대한 소개

조선 민화에 대한 책이라서 읽기 전에는 무척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미술 비 전공자인데다가, 개인적으로 민화를 연구하고 있는 아마추어라서 그런 것일까?  내용 구성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민화라는 민중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조선 근대의 사회상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두 번째 챕터인 [시대정신을 담은 민화]라는 부분에서는 35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조선 근대사를 서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만 소개하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이 챕터에는 민화 그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민화의 발전 과정에는 조선 근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하필 이 내용이 책 중간에 배치되어 있어서 읽고 있는 내내 맥이 풀린 감이 있었다. 차라리 역사적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맨 앞에 배치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뭐 어느 정도 조선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겠지만, 이제 막 민화라는 미술에 대해 입문을 하는 독자들에게 도리어 독이 되는 독서가 될 우려가 있다. 민화 이야기보다는 역사 이야기 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된다면 민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더욱 더 민화라는 그림에 대해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민화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하고 이해하는 방법  

사실, 무턱대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민화를 알아야겠다' 라고 하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지루한 책일 수도 있겠다. 정말 민화의 아름다움을 눈여겨 본 독자들은 이 책을 수월하게 읽혀질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내용 구성의 단점 때문에 민화 매니아들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런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양미술의 특징과 민화에 대해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고나니, 민화의 특징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에두아르트 콜리어 <바니타스> 1650년경  

 


스텐비크 <정물-바니타스> 1640년


17~18세기 조선과 서양에는 독특한 양식의 미술이 유행하였다. 조선은 민화라고 하면, 서양에는 '바니타스(Vanitas)' 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Vanitas라는 용어에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는데, '바니타스'라고 붙여진 모든 작품들에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과 해골이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며 허무하다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책에 대해 깊게 어려워하거나 생각할 필요 없다. 책도 결국에는 허무한 인생을 상징하고 있으니깐. 아무리 파우스트 박사처럼 평생 학문에 몰두하더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라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학문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책가도 冊架圖>  

 

이 그림은 조선 시대에 유행한 <책가도>라는 민화이다. 순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 한다. 책가도는 책 이외에도 부채, 도자기 등을 문방(文房)에 볼 수 있는 도구들이 그려진 우리나라만의 정물화이다. 대부분 <책가도>는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 내부를 장식하는데 그려졌는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대부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뿐만 아니라 왕족들도 <책가도>를 선호하였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자신의 방 안에 <책가도>를 걸었으며 신하들에게 <책가도>를 늘 곁에 두어서 학문과 독서에 충실히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책이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했더라면, 조선 사람들은 학문 추구에 없어서는 안 될 품목으로 여겨졌다.  



얀 판 하위쉼 <벽감에 놓인 화병> 1720~1740년경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수록
  

바니타스 정물화 중에는 을 주제로 그림도 많이 있는데, 잠깐 활찍 피우다가 지고 마는 꽃의 인생처럼 인간의 부귀영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시든 꽃은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서공임, 현대민화 <재화만발> 2010년 

나름 이쁜 그림인데 크기가 크지 않다 보니 사진상으로 좋은 화질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민화에서 꽃은 서양과는 반대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의 사진 속 민화에 그려진 위의 꽃은 모란인데, 부귀를 의미하는 꽃이다. 그 아래의 꽃은 목련이다. 목련은 옥란화(玉蘭花)라고 부를 정도로, 공명을 의미하고 있다. 그만큼 선비들은 이 민화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민화를 통해서 자신이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와 공명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민화에는 서양의 바니타스와는 반대로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잉어가 그려진 그림은 벼슬 시험의 합격 성취를 바라는 의미, 석류 그림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원앙새와 연꽃이 그려진 그림은 부부 간의 화목을 나타내고 있다.      

 


작자 미상, 1880년대 추정,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 일부 

 현대 민속화가 서공임 씨가 복원함.
                                                            

그리고, 민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은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위의 그림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진료를 담당하던 식약청의 관원들이 그린 것이다. 여섯 살 때, 순종이 천연두에 걸려 몹시 고생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병은 나아지게 되었고, 이에 기쁜 마음에 고종 황제는 어린 순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특별히 이 그림을 그리도록 지사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왕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아닌 의료를 담당하는 식약청 소속 신하들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리고 (비록 그림의 일부만 찍었지만) 이 민화에는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들이 그려져 있는데 단순히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부의 백년해로를 염원하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져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 민화

방대한 서양 화풍 중에서 바니타스 정물과 우리나라 민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협소한 범위의 비교이겠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동, 서양의 대표적 화풍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화의 특징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용 한계상 왕실 내에서 유행하던 민화들을 소개하였지만, 이 책에는 그 유명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얼굴을 그린 민화도 있고, 여러 마리 새들을 그려 넣은 민화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화는 단순히 서민적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유한 양반들과 왕족들도 민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화는 궁정의 화원들도 그리곤 하였으며 왕들은 과거 시험에 참가한 선비들에게 특정 주제를 내세워 문장을 짓게 한 것처럼 화원들에게도 어떤 특정 주제로 민화를 그리게 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렇듯, 민화는 이름 없는 환쟁이만 그렸던 그림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환쟁이에서부터 궁정의 화원까지 민화를 즐겨 그렸으며, 서민에서부터 양반, 왕족까지,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조선의 백성들은 민화를 감상하면서 즐겼다. 조선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민화를 즐겼으니, 민화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외국인들도 민화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18세기 때 김준근이 우리나라 민화를 서방에 알리게 한 것으로 필두로 하여 외국의 미술 연구가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치와 먹걸리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인 김치와 막걸리를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와 막걸리는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일컫는다. 이제 우리나라 민화도 외국에서도 조금씩 인정을 받고 추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색을 입힌 '한국적인' 그림인만큼 민화가 국내에 대중적으로 활발히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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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TV쇼 진품명품'인가 그 프로그램 하나 모르겠어요.
저 그거 보면서 감상하고 가격 매기고 하는 거 재밌게 봤었는데...^^

cyrus 2010-10-26 14:02   좋아요 0 | URL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합니다.
저와 어머니가 골동품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 보곤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