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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1001-429] 그리스인 조르바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몇 점입니까?
어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 사이트를 눈팅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한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결과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란다. 하긴 여자들에게 수다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먹는 즐거움은 남녀노소 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인가 보다. 그런데 직업과 나이별대로 행복 지수를 측정하기도 했는데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40대 여성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에 40대 남성들은 행복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40대 남성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유로는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를 꼽았다. 40대 여성의 행복지수가 5점대인 반면에 남성의 행복 지수는 3점대에 불과하다.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대체로 50점을 넘는다. 그리고 이 인터넷 기사에는 기사문을 읽고 있는 네티즌들을 위해서 행복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도 있다.
(사족: 참고로 나의 행복지수는 4.44점이다. 이건 뭐 숫자 자체부터 꺼림칙하다. 비록 평균 행복지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측정된 행복지수를 가지고 내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좀 애매한 점이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 우리나라 행복지수 측정 결과 관련 기사 및 행복지수 측정 테스트
(그냥 재미로 한 번 하셔도 좋을 듯)
http://news.joins.com/article/292/4391292.html?ctg=1200&cloc=home|showcase|main
조르바식 행복론
만약에 조르바가 행복 지수를 측정하게 된다면 과연 얼마 정도 나오려는지 궁금하다. 조르바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이런 허접한질문들과 숫자 놀이를 가지고 행복을 측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색을 낼 것이다. 만약에 측정을 하게 된다면 평균 행복지수를 거뜬히 넘을 것이다. 기사문을 계속 읽다보면 ‘행복 십계명’이라는 글이 있다. 재미있게도 십계명 속의 일부 내용들이 조르바가 지향 했던 삶의 방식과 비슷하다.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8~39 -
자본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에 정열을 쏟기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얻기 위한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가 말한 ‘자유’의 정의대로 물질주의가 만든 고상한 정열을 버리게 된다면 자본주의적인 삶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더불어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중략)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333 -
조르바는 복잡하게 세상을 사는 것을 거부했다. 한 번 생각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본능을 따르는 자유로운 ‘짐승’이 되려고 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실천하였고, 자신의 집게손가락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고민 없이 잘라내고 마는 행동파이다. 남이 뭐라고 하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남의 일에도 그는 개입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의 방식이 쾌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불경스럽기도 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지나친 낙천주의에 빠진 인간으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걷어낸 진정한 삶의 승리자였다.
모든 대한민국 40대 아버지, 아저씨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조르바는 60대의 노인이지만 세상 앞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혈기왕성한 젊음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젊었을 때의 호기는 사라지게 되고 일상적인 세태에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그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조르바는 자신에게 다가올 정신적 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인생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스스로 대처하고 있었다. 조르바는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가 가족과의 단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 보쇼. 보아하니 당신은 악기 하나 못 만지는 모양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집구석에 들어가면, 있는 건 근심 걱정뿐..... 마누라가 그렇고, 새끼들이
그렇잖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장차 이러다 무엇이 될까? 이런 젠장,
이래선 안 돼요. 산투르를 치려면 환경이 좋아야 해요. 마음이 깨끗해야 하는 거예요.
- N.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p 22 -
조르바가 원하지 않는 삶이 지금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의 모습을 보는 거 같다. 이 소설이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웠던가 보다. 특히 대한민국 40대 남성을 대변하는 아버지들은 오늘도 가족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의 짐을 짊어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열심히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급여는 부족하기만 하고, 집에 있는 마누라는 돈 많이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를 긁어대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 사달라고 조르기만 한다. 그렇다보니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조르바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비결이 옳다고는 볼 수가 없다. 조르바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삶의 방식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불만, 근심,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사고에 지배당하면 정작 우리 눈 앞에 가까이 있는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남성들의 성격상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나약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 줄까봐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을 꺼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이 스스로 찾아올까? 행복이 자신에게 찾아오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고민을 가족들과 함께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하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고민을 공감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야 말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최선의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혼과 자유를 예찬하는 이 책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특히 인생의 참 맛을 느끼고 있을 대한민국 40대 아저씨들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단, 앞에서 언급했던 자유를 찾기 위한 가정생활에서의 도피나 조르바의 마초 기질은 소설 속 내용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넘어가시길. 괜히 실천에 옮겼다가는 가정 파탄(?)이 생길 우려가 있다.
조르바의 삶의 방식은 자유과 행복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그의 삶을 찬양만할 뿐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제시할 뿐이지 무조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생의 자습서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숙제로 낸 수학 문제들을 풀기 싫어서 참고서에 베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행복이라는 답을 찾기 위한 삶의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나가지 않고 타인의 삶이나 책에 의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일생을 번뇌에 시달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자신보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에서 행복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행복은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눈높이에 맞추게 되면 숨어 있었던 행복이라는 존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그리스인 조르바』가 대한민국 40대 모든 분들에게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그만 도움이 되는 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모든 40대 아버지들, 아저씨들이 행복해하는 희망찬 뉴스가 날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