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계부 작성의 목적 
 

재테크의 기본은 돈을 부족함 없이 유지하면서도 잘 쓰고 잘 버는 것이다. 

재테크의 달인이 책을 펴내거나 아니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노하우를 알리게 되면
재테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나   

이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재테크의 달인의 노하우에는 항상 공통점이 있다. 가계부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달인들의 가계부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록하는 가계부와는 천지 차이다.
커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현금 입출기 수수료, 
본의 아니게 돈을 쓰게 되었던 것들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오늘 지출 용도와 비용 등을 꼼꼼히 기록하여
자신의 소비 습관을 파악하면 써서 안 될 소비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가계부를 매일 꾸준히 작성한다는 점이다.
가계부 두 세 줄 쓰는 것도 귀찮아하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그들의 돈에 대한 남다른 경제적 관념을 알 수 있다.
가계부 기록하는 작은 일이 그들에게는 돈이 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시(時)테크의 달인, 류비셰프 
 

가계부를 작성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게 되어 돈을 아껴 쓰는 습관이 확립된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좋을수록 ‘이것’ 도 많으면 좋지만,
그 점을 알면서도 생각 없이 막 쓰는 ‘이것’ 도 가계부처럼 작성하면 아껴 쓸 수 있을까? 
 

‘이것’ 이란 바로 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과 더불어 아껴 써야하는 것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간에 패배하기 싶어서일까?  

러시아의 어느 학자는 돈 쓰는 것을 가계부에 기록하듯이
자신이 시간을 썼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통계를 냈다. 
 

그 사람은 바로 곤충학자인 류비셰프이다.
단순히 곤충학자이며 이름이 생소하다고 해서 그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책 제목 그대로 그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였다. 

 곤충분류학 연구 2시간 20분, 논문 집필 1시간 5분, 편지 3시간 20분,
 프라우다 지 15분, 이즈베스티야 지 10분, 문학신문 20분, 톨스토이 책 1시간 30분..... 
 

철저한 시간 관리를 실천했으며 하루를 마무리 지을 때 통계 내듯이 꼼꼼히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자신의 전공인 곤충학뿐만 아니라 곤충분류학, 동물학, 농학,
생물학, 역사, 문학 등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지적 활동은 학문의 경계는 넘는 다양한 저작물을 남겨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수많은 저작물들은 연구 가치가 높다. 
 

재테크의 달인이 꾸준히 가계부를 작성하여  

결국에 어마어마한 재산을 얻고 유지하는데 기여를 했듯이
류비셰프도 시간을 썼던 것들을 통계표로 작성하여 자신의 지적 능력 발달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학문을 집대성하는데 기여하여  

후세에도 그의 지적 활동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시간의 지배자, 류비셰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자신의 권력이 상실된다는 두려움에
자식들인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등을 차례대로 삼켜버린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는 행위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시간 앞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진다는 속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자식들 중에서 유일하게도 살아남은 제우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뱃속에 있는 신들을 부활시켜 자신이 신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세밀하게 기록된 류비셰프의 시간 기록표를 보면,
그가 인간을 가장한 제우스처럼 느껴진다.
제우스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죽이는 것이 시간의 영속성을 거부하는 행위로 보듯이
류비셰프도 시간들을 기록하여 자신의 삶이  

시간의 영속성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비록 그도 시간이 흐르면서 찾아오는 죽음만은 피할 수 없었지만,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제거하여 신들의 지배가가 되었듯이
류비셰프는 시간을 정복한 지배자가 되었다. 
 

 

 

 인간, 류비셰프

평소에 가계부라곤 안 쓰던 우리가 재테크 달인의 방식대로 무작정 가계부를
쓰려고 하면 귀차니즘에 못 이겨 작심삼일로 그치고 만다.
그러는 마당에 류비셰프처럼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살아간다고 상상해봐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시간 기록들을 살펴보면
시간의 틀에 박혀 사는 병(病)적인 완벽주의자와 같은 느낌이 든다. 

버나드 쇼는 '학자란 연구를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게으름뱅이' 이라고 말했다. 

뉴턴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하거나, 

에디슨이 뜬눈으로 밤을 새면서 전구 개발에 시도를 했듯이,

천재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 연구 이외에는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가정 생활에나 인간 관계에는 무관심하는 게으름뱅이가 된다.  

 

그러나  류비셰프는 학자라는 명함 때문에 학문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문과 연구는 '직업' 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연적으로 가지게되는 앎과 탐구욕을 그래도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 기록을 무척 즐거워했다.
그는 시간에 얽매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생각 하에 시간에 쫓길 거 같은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넘어갔다. 잠도 충분히 잤으며, 아침에 일어나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자신의 직업인 연구 활동을 하면서 웬만한 음악회나 연극 공연도 관람하고.....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대부분을 못 하고 생을 마감하는 반면에  

류비셰프는 죽을 때까지 할 거 다 해본 셈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는 이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하루 일과 중에는 편지와 일기 쓰기는 빠지지 않는다.
다른 곤충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연구 내용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일기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책의 앞 페이지에는 생전 류비셰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손자와 같이 찍은 흑백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류비셰프는 학자가 아닌 손자를 귀여워하는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가서 후회 없었다고 말하리라

류비셰프의 삶을 읽다 보면 천상병의 시 ‘귀천’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류비셰프도 죽으면서 하늘로 가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소풍을 좋아하고 즐기듯이 그는 이승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삶의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리고 하늘에서 그 때의 세상이 아름다웠고
후회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류비셰프의 일대기를 펴낸 의도는 단순히 그의 독특한 시간 통계 기록과
박학다식을 알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류비세프의 삶을 통하여 시간에 쫓겨 수동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시간이 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간도 돈처럼 아껴 써야한다는 뜻이지만
시간과 돈은 큰 차이점이 있다.
돈은 쓰고 나면 어떻게 해든 다시 벌 수가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지가 않다. 시간은 역설적이다.
‘시간은 많다’ 라면서 느끼게 되는 무한 자원이면서도
막상 시간을 쓰게 되면 ‘시간이 없다’ 라고 느끼게 되는 유한 자원이 되는 것이다.
즉, 시간은 한 번 쓰게 되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류비셰프처럼 완벽하게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좋을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되찾을 수 있게 되고,
거기서 자신이 즐거워했던 일들을 찾게 되면 좀 더 활기찬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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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 2013-08-1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시간관리에 대한 부분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평을 하는데, 님은 류비셰프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리뷰를 남겨 주었네요. 잘 보았습니다. ^^

cyrus 2013-08-19 21: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제 막 알라딘 블로그에 글 남기기 시작했을 때 썼던 건데, 제로드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부족한 글인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