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평점 :

사소한 것들은 가볍다.
보잘것없는 것들은 가엽다.
이 자그마한 것들은 잊히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무미건조한 것들은 무용하다.
무무(貿貿)한 것들은 무시당한다.
이 하찮은 것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시나브로 사라진다.
점점 잊히는 것들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진지한 관찰자’는 세심한 관심을 드러낸다.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자그맣고 하찮은 것들을 열심히 주우러 다닌다. 영국의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세부 사항(detail)’이라고 했다.
세부 사항은 관찰자를 만나고 싶다. 세부 사항은 원래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을 알아준 관찰자를 만나면 수다스러워진다. 관찰자의 눈빛을 느낀 세부 사항이 말을 건넨다.
“날 만져 주세요.”
우드는 세부 사항을 ‘우리에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삶의 조각’으로 비유한다. 호기심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모은다.


호기심이 솟아나면 세부 사항을 궁금해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쓸모없는 세부 사항이 ‘궁금해서’ 공부한다. 미국의 철학자 제나 히츠(Zena Hitz)는 호기심을 죽이면서 실용성만 챙기는 공부를 비판한다. 그녀는 쓸모없는 것(지식)을 공부하는 관찰자를 ‘자유롭게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궁금증이 많은 관찰자는 삶의 조각들을 사랑한다. 이들은 중요하지 않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진지한 관찰자가 글을 쓰면 무색한 세부 사항에 선명한 빛깔이 생긴다. 미국의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는 자신의 글쓰기를 잡초가 무성한 곳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위로 비유한다. ‘into the weeds(잡초 속으로).’ 이 관용구는 ‘더 자세하게 들어가다’라는 뜻도 있다. 잡초는 성가신(bother) 존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잡초를 관찰하는 사람은 잡초의 매력을 알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관찰자는 성가신 것에 궁금증을 느끼면 그것에 신경을 쓴다(bother). 진지한 관찰자는 보기 좋고, 쓸모 있는 것들만 찾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신경 쓰이는’ 삶의 조각들을 주워서 노트에 담는 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삶의 조각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글을 쓴다고 밝힌다.
“날 쓰다듬어주세요.”
삶의 조각을 여러 번 쓰(고)다듬으면 멋진 글이 된다. 글의 소재가 될 만한 삶의 조각은 작가가 직접 찾을 수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주 봐서 흔한 사물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삶의 조각이 된다.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삶의 조각을 찾아서 글을 쓸 수 있다.
데이비스는 무용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조지 스터트(George Sturt)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The Wheelwright’s Shop)을 재조명한다. 스터트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즉 수레바퀴를 만드는 과정과 그 밖의 공예 기술들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은 스터트의 소설들보다 더 유명해진 회고록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년)의 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스터트는 ‘보잘것없는 세부 사항을 관찰한’ 작가다.
똑똑하고, 표현의 기교가 뛰어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지한 관찰자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라딘 램프에 갇혀 16년째 무용한 글쓰기를 한
cyrus가 만든 주석
* 32쪽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주1]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 맴도는 책 제목이다. (중략) 이 제목은 프랑스 작가 레몽 루셀의 에세이집 제목이면서 표제작 제목이기도 하다. 방금 그것을 찾아본 나는 존 애시베리가 루셀을 경유해 그 에세이집에 다시금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주1] 레몽 루셀(Raymond Roussel)은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쓴 프랑스의 작가다. 그의 실험적인 글쓰기는 당대의 독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루셀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어떤 책들을 어떻게 썼는가>라는 글을 썼고,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할 것을 요청했다.

루셀의 대표작은 《아프리카의 인상》(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19년)과 《로쿠스 솔루스》(송진석 옮김, 문학동네, 2020년)다. 국역본 《아프리카의 인상》에 부록으로 <나는 내 책 몇 권을 어떻게 썼는가>가 실려 있다. 루셀의 작품을 진지하게 분석한 학자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다. 루셀에 심취한 푸코는 1963년에 <레몽 루셀>을 출간했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죽음과 미로>(Death and the Labyrinth: the World of Raymond Roussel)다. 미국의 시인 존 애시베리(John Ashbery)는 루셀의 열렬한 독자이자 루셀의 작품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로, <죽음과 미로> 서문을 썼다.

푸코의 <레몽 루셀>은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루셀이 언급된 또 다른 철학서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년)이다. 들뢰즈는 푸코의 <레몽 루셀>을 참조했다.


[주2] 제임스 우드의 비평 에세이집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 실린 두 번째 글은 『진지한 관찰』이다. 이 글에 리디아 데이비스의 단편소설 <문법 질문>(Grammar Questions)이 언급된다(177쪽). <문법 질문>은 작품집 《불안의 변이》(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23년)에 수록되어 있다(제목은 ‘문법 질문들’이다). 《불안의 변이》에 <푸코와 연필>(Foucault and Pencil)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