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겨울 에디션)
이언 보스트리지 지음, 장호연 옮김 / 바다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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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시집을 펼친 음악가가 슬픈 시를 고른다. 

음악가의 눈물을 먹은 시는 녹아서 잉크로 변한다.

잉크가 오선지에 번지면

시는 노랫말로 다시 태어난다.










슈베르트(Franz Schubert)음률(音律) 시인이다. 그가 고른 시는 음표를 만나면 가곡이 된다슈베르트는 눈물이 많다. 그의 서글픈 곡(, 울음)이 그치면 애절한 가곡이 나온다그가 흘린 수많은 눈물방울은 가곡이 싹트는 씨앗이다슈베르트는 가곡의 왕, 눈물의 왕이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죽기 일 년 전에 만든 가곡이다.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음률을 입힌 연가곡(連歌曲)이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에 실패한 남자.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정처 없이 겨울 여행(Winter Journey, <겨울 나그네>의 원제)을 한다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한 슈베르트는 쓰라린 눈물들을 모아 자신과 비슷한 겨울 나그네를 만들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곡을 여러 번 고쳤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를 만드는 데 슈베르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삼켰을까


<겨울 나그네>는 슬픔을 머금은 가곡이다. 가곡을 듣는 청중도, 가곡을 부르는 성악가들은 노래에 취하면 슈베르트의 눈물 자국과 겨울 나그네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들도 슈베르트와 겨울 나그네의 비애감과 닮아간다그러나 <겨울 나그네>의 선율에 눈물 자국만 있는 건 아니다.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날씨, 유행했던 문화, 유럽의 정세까지 과거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독일의 성악가 이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겨울 나그네>의 선율을 해부하여 귀로 들을 수 없는 과거의 흔적들을 들추어낸다. 그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슈베르트의 삶과 참모습까지 복원한다그가 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어둡고 암울한 노래로만 알려진 <겨울 나그네>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다. 책의 부제는 집념의 해부(Anatomy of an Obsession)’.









눈물이 많은 슈베르트는 감성의 시대에 살았다. 감성의 시대는 18세기 중후반에 눈물이 유행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후에 흘린 눈물에 매혹을 느꼈다대중은 실연당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겨울 나그네>감성의 시대가 끝날 무렵, 대중의 눈물이 말라버린 시기에 나온 노래<겨울 나그네>에 묘사된 겨울 풍경은 유럽 전역을 덮친 혹한기에 볼 수 있었던 일상적인 장면이다. 날씨는 우리의 감정을 지배한다. 눈물마저 얼어붙는 말쌀한 날씨는 슈베르트와 나그네를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음악 비평서도, 음악 해설서도 아니다. 음악 감상론에 가깝다. 저자는 비평하듯이 음악을 분석하지 않는다. 음악에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들을 채워 넣는다.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예술적 취향을 곁들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다시 만든다. 저자의 음악 감상은 원작자를 무시하거나 원곡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 음악은 죽지 않는다. 음악은 청자와 연주자들의 반응을 먹으면서 자란다. 세월이 지날수록 연주 방식과 선율은 조금씩 달라진다. 음악은 느리게 변신한다. 청자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음악의 변신은 무죄다.







<책을 해부하면서 읽는 cyrus가 만든 주석>

 






[1] 서평 제목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년) 노랫말(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을 패러디했다.





* 255





 생기론(생명체는 그것을 무생물과 구별 짓는 생명의 약동을 갖고 있다는 주장)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겠지만, 1858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주2]에서 제시된 진화론이 힘을 얻으면서 생물 형태들 사이의 장벽, 궁극적으로는 유기체와 비유기체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원문]


 Vitalismthe doctrine that living stuff has some sort of spark or elan vital which distinguishes it from brute mattermay have lingered on to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ut the impact and tendency of evolutionary theory from Darwin’s Origin of Species in 1858 on was to break down the barriers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life forms and ultimately between the living, the organic and the inorganic.

 






[주2]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초판이 처음 나온 해는 1859년이다. 저자가 출판 연도를 착각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펴낸 바다출판사다윈과 진화론을 소개한 책을 많이 출간했다2016년에 나온 초록색 표지의 양장본 구판에도 연도 오류가 남아 있다.





* 292





 최근에 나는 작곡가 토머스 아데스와 카네기홀에서 이 작품을 연주했다. 프로그램에는 리스트가 편곡한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주3]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3] <사랑의 죽음>(Mild und leise)은 곡명이 아니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33장 제목이다.





* 305~306

 

 토머스 드 퀸시의 열정적인 산문은 1849년에 영국 우편 마차의 잃어버린 영광을 이렇게 회상했다.[주4] 당시로서는 전례 없던 속도를 통해‥… 움직임의 영광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주4] 영국 우편 마차를 주제로 한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의 산문은 <영국의 우편 마차>. 번역본: 유나영 옮김, 심연에서의 탄식/영국의 우편 마차(워크룸프레스, 2019).





* 452




 

 그는 1827년에 친구 에두아르트 바우에른펠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자네야 궁정의 고문관이자 유명한 희극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나처럼 가난한 음악가는 어떻게 되지? 나이가 들면 괴테의 하프 타는 노인[주5]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빵을 달라고 구걸해야 할지도 몰라!”

 






[5] 괴테(Goethe)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안삼환 옮김, 민음사, 1999)에 나오는 인물이다. 소설 제411 마지막에 하프 타는 노인과 미뇽(Mignon)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노랫말이 소설보다 유명해서 괴테 시 선집에 수록되기도 한다.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혼자, 그리고 모든 즐거움과 담 쌓은

곳에 앉아

저 멀리 창공을

바라본다.

, 날 사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먼 곳에 있다!

이 내 눈은 어지럽고

이 내 가슴 타누나.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나의 이 괴로움 알리라!


 

(안삼환 옮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1중에서,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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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패러디가 멋집니다. 덕분에 겨울 나그네를 다시 감상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