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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복자들 -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에리카 맥앨리스터.에이드리언 워시번 지음, 김아림 옮김 / 곰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에리카 맥앨리스터 · 에이드리언 워시번 함께 씀
김아림 옮김
《작은 정복자들:
농업부터 인공지능까지,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의 놀라운 변신》
곰출판
2025년
4.5점 ★★★★☆ A
왕크왕귀. ‘왕 크면 왕 귀엽다’를 줄인 신조어다. 왕크왕귀는 몸집이 크면서도 귀여운 동물에 호감을 느낄 때 쓴다. 왕크왕귀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동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이다. 순하디순하기로 유명한 골든 리트리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왕크왕귀다.
왕크왕귀에 어울리지 못하는 동물이 있다. 이 동물의 몸집은 인간보다 작다. 그러나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등장했고, 개체 수가 많다. 지구에 사는 동물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이 동물의 정체는 ‘곤충’이다. 곤충은 동물계 절지동물에 속한다.
곤충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은 드물다. 여러 개의 발이 달린 곤충의 생김새는 귀여움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작은 곤충을 미물(微物)로, 엄청 커다란 곤충을 괴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거대한 곤충이 생포되는 일은 세상을 발칵 뒤집는 특종감이다.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는 황당한 가짜 뉴스와 조잡한 합성 사진으로 지면을 도배했던 미국의 신문이다. 이 신문은 거대한 곤충이 발견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심심찮게 보도한다. 거대한 곤충의 모습이 나온 합성 사진도 실었는데, 사진의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는다.
사람 몸집만 한 곤충이 살아서 우리 눈앞에 있다면 기절초풍한다. 왕 커서 왕 무섭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이 만든 공포 영화 <미믹>(Mimic, 1997년)은 인간의 형상과 비슷하게 진화한 크리처(creature)가 나온다. 영화 주인공인 곤충학자(미라 소르비노 분)는 바퀴벌레를 죽이는 유전자 변이 곤충 ‘유다(Judas)’를 만든다. 유전자 변이 곤충의 생태계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곤충학자는 유다의 생식 능력을 제거한다. 하지만 유다는 번식에 성공하고, 곤충의 천적 인간을 모방하면서(mimic) 괴물로 진화한다.
기예르모는 유다를 ‘살아 있는 기계 장치’처럼 보이도록 표현했다. 그가 유심히 관찰한 곤충은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다.


“곤충은 자연이 만든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곤충의 구조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적, 정신적 기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곤충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곤충에게는 정서라는 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으니까요. 곤충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의 살아 있는 기계 장치입니다. 그래서 곤충이 그토록 많은 것들의 상징이 되는 겁니다. 그들은 완전히 에일리언이니까요.”
(기예르모 델 토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 중에서, 88쪽)
기예르모는 정서가 없는 곤충을 외계의 존재(alien)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곤충학자들은 기예르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곤충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정착한 작은 동물이다. 그들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췄고, 혹독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 곤충이 정서를 느끼고 있는지 좀 더 연구해 봐야 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윈(Charles Darwin)과 동물학자, 곤충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곤충을 포함한 동물은 고도의 지적 능력과 정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따라서 지구에 오래 살았던 곤충을 우주에서 온 이방인(alien)과 같다고 볼 수 없다.

곤충학자 에리카 맥앨리스터(Erica McAlister)와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프로듀서 에이드리언 워시번(Adrian Washbourne)이 함께 쓴 책 《작은 정복자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곤충의 다양한 특기를 알려준다. 에리카 맥앨리스터는 파리를 사랑하는 곤충학자다. 2년 전에 파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녀의 저서 《위대한 파리》(이동훈 옮김, 마리앤미, 2023년)가 출간되었다. 파리는 자연을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부다. 지구에 파리가 살지 않으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사체는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게 된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다. 반대로 곤충학자들은 곤충의 신체 구조를 모방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에 매진한다. 벼룩은 동물, 식물,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영화에 묘사된 곤충학자는 벼룩을 퇴치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벼룩에 정말로 관심이 많은 곤충학자는 벼룩이 어떻게 높게 뛸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벼룩은 날개가 없는데도 자기 몸집의 60배나 넘는 거리로 펄쩍 뛸 수 있다. 벼룩의 근육은 더 멀리, 더 높게 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한다. 천적을 만나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근육에 있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기술 공학자들은 벼룩이 점프하는 메커니즘을 응용한 소형 로봇을 만들었다.
기예르모의 유다는 바퀴벌레와 사마귀와 흰개미의 유전자를 결합, 조작해서 만들어졌다. 바퀴벌레는 생각보다 똑똑한 곤충이다. 바퀴벌레의 뇌는 다른 곤충에 비해 뇌가 크고,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 연결망이 활성화되어 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바퀴벌레는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공간을 잘 돌아다니며 자기가 지나가던 길을 기억한다. 바퀴벌레가 생존 본능이 강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안전한 구역과 은신처로 돌아가는 경로를 알고 있다. 그들은 똑똑해서 잘 숨고 다닌다.
책에 언급된 호주의 곤충학자는 이십 년 넘게 곤충 신경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환경을 이해하면서 단시간에 생존 전략을 찾는 곤충의 유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곤충은 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고정된 상황에서 판에 박힌 작업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조그만 로봇이 아닌 거죠.”
(《작은 정복자들》, 「8. 바퀴벌레의 신경」 중에서, 297쪽)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는 곤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이 ‘곤충’이라는 단어는 절지동물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생활 방식을 설명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년)를 쓴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다윈이 말한 ‘좋은 과학’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227쪽,
저자가 인용한 다윈의 말은 《종의 기원》에 나온다.)
‘좋은 곤충학’은 해충과 익충으로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곤충은 미물(微物)이 아니다.
자연을 잘 아는 영리한 미물(美物)이다.
<곤충을 함부로 밟지 않는(不殺生戒) cyrus가 만든 주석>

* 《작은 정복자들》 270~271쪽
16세기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수상록》 2권에서 1513년 포르투갈 군대가 샤틴(Xiatine)의 영토에서 벌인 타믈리 시 포위 공격에 대해 묘사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주민들은 성벽 너머로 여러 개의 벌집을 던지자는 기발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벌집에 불을 붙인 채로 “적을 향해 벌이 맹렬하게 날아갔고, 적들은 벌침에 쏘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짐을 싸고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화가 난 암컷 벌들 덕분에 주민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주]
[주] 저자가 인용한 이야기는 《에세 2》 12장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Apologie de Raimond de Sebonde)에 나온다. (심민화 옮김, 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