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 문학

차학경 《딕테

김경년 옮김, 현대문학 (2024)







2025년 2월 28일 금요일저녁 8시~10시 20분

장소: 인더가든



<세계문학>을 만든 독자들

조약돌, 향기,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카페 <small talk>의 주인장 김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김 사장님은 철학책 독서 모임(니체, 미셸 푸코, 레비나스)을 함께 했던 분입니다. 우리는 고요한 어둠이 채워진 <small talk>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말을 주고받는 중에 김 사장님은 본인이 선호하지 않는 독서 모임을 얘기했습니다. 김 사장님은 참석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확인하는 대화가 많은 독서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런 모임에 책은 뒷전입니다. 결국 모임 참석자들의 돈독한 관계를 확인하는 사교 모임이 되고 맙니다. 김 사장님의 말에 저도 이런 유형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쑥 걱정이 들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꾸리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지난 제가 다른 독서 모임을 비판할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책 딕테》는 독자들이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에요. 독서 모임을 만들기로 결정한 독자들은 딕테》를 읽는 내내 무엇을 얘기하면 좋을지 생각을 엄청 많이 했을 거예요(그리고 본인의 결정을 후회했을 겁니다)책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그 책이 어떤지 얘기할 수 없습니다. 책과 친해지지 못한 독자들은 독서 모임에 나오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로 일관합니다. 어떤 독자는 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김 사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딕테를 다시 펼쳤어요. 이틀 후에 있을 독서 모임에 겉도는 독자들이 한 분이라도 나오지 않게 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2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는 조약돌 님과 향기 님입니다. 두 분과의 인연은 2년 전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서 시작되었어요. 만나자마자 두 분은 책이 어렵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두 분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었습니다독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제가 고른 책이 어렵다,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사소한 감정이 아닙니다. 감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에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스며 들어 있어요. 저는 책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눈여겨보면서 다음 독서 모임을 위해서 함께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르려고 합니다.


딕테는 차학경 작가의 자서전적인 글입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독자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시도합니다. 역자와 작가의 친오빠가 쓴 해설은 차학경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재구성한작가의 시선으로 딕테를 읽는다고 해서 딕테에 친근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 달 전인 1<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을 마무리할 때 딕테를 읽을 때 차학경 작가를 찾기 위해서 읽지 말고, 그 글에서 드러내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읽어보라고 제안했어요. 이때 제가 했던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독자들이 있다면, 독서 모임을 능숙하게 진행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딕테를 쉽게 읽는 저만의 방식을 소개한 글 한 편 쓸 걸 그랬나 봐요.


딕테77쪽에 프랑스어로 쓴 문장이 나옵니다.

 

 


방출하라. Ne te cache pas. Révéle toi. Sang. Encre.


 


프랑스에서 태어난 말을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감추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라. 혈액. 잉크.” 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딕테와 친해지면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발견했어요딕테》는 독자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읽는 책이라고 확신했어요.


저는 향기 님에게 <세계 문학> 2월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부추겼어요. 향기 님은 러시아어를 전공했어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외국어 원서를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차학경 작가는 어린 시절에 거대하고 낯선 땅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을 제2 고향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 보려고 했지만, 모국어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외국어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차학경 작가는 영어를 미국인처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을 입으로 흉내 내는 짓(딕테, 13)’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딕테를 읽은 향기 님이라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작가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할 거로 생각했어요. 향기 님은 중국어의 성조(聲調, tone)를 최대한 정확하게 내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서서 중국어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어요. 거울에 비친 입 모양을 확인하면서 성조를 연습했던 거죠.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2025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김재홍 옮김 · 해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그린비, 2023)




딕테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두 분의 근황과 딕테감상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해서 독서 모임을 일찍 마무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딕테를 가방에 넣고, 제가 참석하지 않은 ‘다른 독서 모임의 책을 꺼냈어요. 그 책은 바로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명상록이었어요. 이 책이 올해 첫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였어요


<일글책>이 고른 번역본은 김재홍 번역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명상록의 원제입니다. 마르쿠스는 연약한 자신의 참모습을 돌아보기 위해 잉크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어요역자 김재홍 교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단체인 정암학당의 공동 이사입니다.


지난달 <세계 문학> 모임이 끝난 후에 조약돌 님은 저에게 명상록에서 자살을 긍정하는 대목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자살에 대한 철학자 마르쿠스의 견해를 어떻게 보는지 물으셨어요그때부터 김재홍 교수의 명상록을 읽기 시작했어요마르쿠스는 스토아학파 철학자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자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정의하는 자살은 이성에 맞는 벗어남입니다. 조약돌 님은 스토아 철학적인 자살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우리는 스토아학파의 자살할 권리를 주제로 철학적인 대화를 하면서 모임을 마무리했어요.






 

 











*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마티, 2021)





딕테함께 읽어야 하는 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책이 한국계 이민자 출신의 미국 작가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마이너 필링스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학경 작가의 죽음을 이르게 한 성폭력 및 살인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미국 사회와 동료 예술가들의 미온적인 반응(차학경의 죽음을 예술적으로 미화하는 태도)을 지적하면서 미국의 유색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고발합니다


마이너 필링스210딕테의 내용 일부가 언급된 문장이 나옵니다. 차학경 작가는 딕테에 미국 하와이에서 이주 한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과 독립운동가 윤병구(1880~1949)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탄원서(편지)를 인용합니다.



 




 차(학경)딕테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번역하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의 사진에 설명 붙이기를 거부한다. 독자는 나름대로 단서를 연결해 퍼즐을 풀어가는 탐정이 된다.


(마이너 필링스중에서, 210)

 


루스벨트라는 성()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두 명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이승만과 윤병구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는 1905년에 써졌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책 속에 있는 오류와 오역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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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3-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에 독서 모임 하시는군요. 차학경 <딕테>는 소개를 읽어보고 난해할 것 같았는데, 모임도서로 읽으면 각자의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여러 책들을 구매하거나 고르다보면 늘 비슷하거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게 됩니다만, 모임으로 정해진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양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25-03-03 16:49   좋아요 1 | URL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하는 독서 모임이에요. 사실 독서 모임을 주말에 하고 싶은데, 이러면 주말에 개인적인 일(독서, 글쓰기, 서울 여행)을 할 수 없어서 금요일 저녁에 하게 됐어요. ^^

페크pek0501 2025-03-06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에서 책 얘기가 끝나고 나서 멤버들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게 좋던데요. 남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남들 얘기에 경청하는 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은 심리 상담사였는데 많은 사례를 들려 줘서 견문 넓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cyrus 2025-03-10 06:33   좋아요 0 | URL
내가 혼자 책을 읽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알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독서 모임 후기를 쓸 때 모임에 참석한 분들의 견해를 많이 써보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