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별명이 많다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 개다(하지만 오디세우스의 머리는 곱슬머리가 아니다)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에 언급된 별명이 모두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다작년에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내 눈에 띈 별명들이 있었.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두 번째 선정 도서]

호메로스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 (도서 출판 숲, 2015)





신과 같은 오디세우스오뒷세이아》 1권 20행(천병희 옮김)에 오디세우스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온다오디세우스는 왕족 출신이다다른 영웅들에 비해 신과의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호메로스는 시작부터 서사시의 주인공이 신과 대등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지략가다. 그의 지혜로운 면모와 관련된 별명이 꾀가 많은이다그 밖의 별명은 고귀한’, ‘참을성이 많은 등이 있다.


오디세우스는 지략을 발휘해(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는 거대한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안으로 진입하는 작전에 성공한다)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부하들과 함께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오는 길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us)가 사는 동굴에 잠시 정착한다오디세우스 일행은 동굴에 갇혀서 폴리페모스에게 잡아먹히는 위기에 처한다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든다폴리페모스가 깊은 잠에 빠진 사이에 오디세우스 일행은 불에 달군 뾰족한 나무 막대기로 거인의 눈을 찌른다오디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동굴에 탈출하지만오디세우스는 오만했다그는 배를 타고 탈출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폴리페모스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이다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아들의 절규를 들은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 일행의 귀환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험난한 여정 끝에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이타카에 돌아온다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Penelope)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그러나 이타카 남자들은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기 위해 궁전으로 모여든다100명이 넘는 구혼자들은 제 집인 것처럼 주인 없는 오디세우스의 궁전에 눌러앉아 생활한다구혼자들의 무례한 구애에 지친 페넬로페는 시아버지를 위한 수의가 완성되면 새 남편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한다그녀는 낮에 베를 짜고밤이 되면 낮에 만든 것을 다시 풀었다이렇게 해서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재혼 결정을 미룰 수 있었다.


변장한 채로 오디세우스는 궁전으로 돌아왔고, 어엿한 어른이 된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와 충직한 부하들과 함께 구혼자들을 죽인다페넬로페를 따르는 시녀는 총 50명이었는데그중 12명은 구혼자들의 애인이었다오디세우스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열두 명의 시녀에게 피범벅이 된 구혼자들의 시체를 깨끗하게 정리하라고 명령한다뒷정리가 끝난 후에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과 잠자리한 시녀들의 목에 올가미를 씌워 교살한다.

















아폴로도로스강대진 옮김 그리스 신화》 (민음사, 2022)


아폴로도로스천병희 옮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도서 출판 숲, 2004)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묘사된 페넬로페는 정숙한 아내를 설명하거나 신화 속 악녀들과 비교할 때 자주 거론된다그러나 신화는 여러 사람이 만든 이야기다또 시간이 지나면 신화 속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다많이 알려지지 않은 고대의 작가들은 페넬로페가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여성이라고 주장했다고대 그리스의 학자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비블리오테케>(Bibliotheca) 신화 모음집이다아폴로도로스는 페넬로페에 대한 다른 형태의 신화를 소개한다그가 인용한 신화에 따르면 페넬로페는 구혼자 중 한 사람인 안티노오스(Antinous)와 몰래 정분을 맺었고오디세우스는 절개를 저버린 페넬로페를 살해했다미상의 작가가 쓴 신화는 원전에서 완전히 벗어난 페넬로페를 묘사했다페넬로페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반인반수의 목신 판(Pan)이다.
















[절판] 조반니 보카치오임옥희 옮김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 (나무와숲, 2004)





데카메론을 쓴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는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총 106명의 여성을 소개한 유명한 여자들이라는 책을 썼다그는 이 책에서 페넬로페를 정절을 지킨 영원한 모범으로 칭송한다당연히 그가 참고한 글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다그리고 구혼자 중 한 사람과 부정을 저지른 페넬로페를 묘사한 글도 언급한다이 글을 쓴 사람은 기원전 3세기의 고대 그리스 시인 리코프론(Lykophron)이다하지만 보카치오는 리코프론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페넬로페는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난 시점에도 순수한 도덕의 표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화(myth)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우리가 아는 신화의 의미는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또 다른 의미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근거 없는 믿음은 주인공을 위한 스포트라이트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주인공에게 향한 스포트라이트의 불빛은 더 강렬해진다. 항상 그들은 주인공의 좋은 모습만 보고 싶어 한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은 희끄무레한 조연이 되고주인공과 대립한 인물은 주인공의 팬들에게 비난받는 악인이 된다이렇게 되면 조연과 악인은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는 존재로 남는다.


















[세계문학 작품 읽기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025년 1월의 책]

[개정판마거릿 애트우드김진준 옮김 페넬로피아드》 (문학동네, 2024)


[구판 절판] 마거릿 애트우드김진준 옮김 페넬로피아드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문학동네, 2005)

 




오디세우스 신화를 패러디한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의 소설 페넬로피아드는 근거 없는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 영웅을 미화했는지 보여준다오디세우스는 지혜로운 영웅이다.”, “페넬로페는 정숙한 아내다.”, “구혼자들과 사귄 열두 명의 시녀는 나쁜 여자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디세우스 신화를 접한 독자들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해석을 선호했다이것을 거꾸로 뒤집는 해석은 환영받지 못한다.








페넬로피아드는 신화(근거 없는 믿음)를 뒤집은 신화(이야기)이 소설의 주인공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희생당한 열두 명의 시녀다작가는 호메로스가 듣지 못한 페넬로페와 시녀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그녀들의 목소리는 ()신화적이다반신화적인 페넬로페는 신분이 아주 낮은 시녀들을 자매처럼 대하면서 어울려 지낸다자신의 판단 착오로 인해 열두 명의 시녀가 억울하게 죽었다면서 자책한다반신화적인 시녀들은 외로운 페넬로페를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다그녀들은 구혼자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어떤 계략을 꾸미는지 알아낸다호메로스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는 유혹에 굴종한 시녀들을 용서하지 않는다하지만 애트우드의 시녀들은 페넬로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몸을 희생하면서 구혼자들에게 접근했다.


신화를 반신화적인 관점으로 읽는다면우리가 당연하다면서 받아들인 해석들이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근거 없는 믿음이 오래 지속되면 여성이 불리해지는 남성 문화가 된다성경과 함께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인 신화는 가장 오래된 남성 문화를 낳았다영웅호색은 성적 유혹에 이겨내지 못한 남성 영웅의 모습을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포장한다여성의 몸을 마치 정복하듯이 탐하는 영웅은 남성들의 존경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반면 여성에게 혼전 순결을 강요한다정절을 지키지 못하거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면 모든 남성에게 멸시받는 천박한 존재가 된다. 남성 문화는 아주 오랫동안 여성의 감정과 자유 의지를 포박한 올가미다.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세 번째 모임(2025년 1월) 선정 도서]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교양인, 2023)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두 번째 선정 도서

(2017년 11~12, 3주 진행] [주1] 

마거릿 애트우드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 (황금가지, 2018)

 

마거릿 애트우드르네 놀트 그림진서희 옮김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황금가지, 2019)

 


 


여성학자 정희진은 피해자 중심주의 비판이라는 글(《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이다)에서 남성 중심 문화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소위 남성 문화는 남성의 주관성을 보기 좋게 만들려고 보편성객관성전통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여 썼다오디세우스가 위기에 빠지면 지혜의 신 아테네(Athena)가 등장해서 도와준다오디세우스 신화는 전통과 지혜로움으로 멋있게 포장해 준 남성 문화 덕분에 고전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정희진은 여성주의 지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여성주의 지식은 남성 문화의 한계를 해체하기 위한 지적 무기애트우드는 여성주의 지식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다. 2005년에 발표된 페넬로피아드이보다 20년 전인 1985년에 발표된 시녀 이야기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면서 근거 없이’ 믿어왔던 남성 문화를 해체한 작품이다.

















아즈마 히로키 정정하는 힘》 (메디치미디어, 2024)




해체라는 표현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해체는 흩어짐’과 ‘붕괴’의 의미와 비슷한 단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해체’ 대신에 정정(訂定)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정정은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제시한 용어이다그가 강조하는 정정하는 행위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잘못을 인정하고 새롭게 고치는 일이다과거의 지식을 고치는 일은 ㅘ거를 재해석’하는 일이과거를 재해석한 견해도 언젠가 고칠 수 있다정희진은 여성의 경험도 남성처럼 주관적이라고 했다개인 또는 집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여성주의 지식도 주관적이다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지적 무기라고 해도 세월이 지나면 녹이 슨다폐기 처분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고치면 된다현실에 맞는 지식으로 갈고 닦는(切磋琢磨) 것이다.

 

오디세우스 신화를 정정한 애트우드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오디세우스가 귀환 여정 중에 겪은 일들을 진실로 볼 수 있는가그의 경험을 가까이서 지켜본 부하들은 모두 죽고 없다오디세우스의 증언은 주관적이다한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단지 그가 지혜로운 영웅이라는 이유로 그의 영웅담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꾀가 많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인간적인 결점을 교묘하게 가릴 줄 안다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자신을 방해하는 적들을 만났다고 말하기그는 이 세상에 없는 적들도 만들 수 있다오디세우스의 꾀는 말재주 좋은 선동가들이 자주 쓰는 전술이다. 선동가는 무해한 사람을 위험인물’로 만든다. 위험한 인물로 잘못 알려진 사람은 악인이 되고그런 악인을 집요하게 헐뜯는 선동가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오디세우스를 너무 믿지 마시라오디세이 구라세이[주].






[1] <레드스타킹> 최초의 모임이 진행된 날은 2017년 10월 9일이다내가 <레드스타킹>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기간은 2018년 1월 말이었다이때 페미니즘 영화를 보는 날이었고, 2월부터 책 읽는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주2] 귀신을 부르는 주술인 분신사바의 주문이 지역마다 다르다가장 많이 알려진 주문은 분신사바분신사바오이데 구다사이(“와 주세요를 뜻하는 일본어)’변형된 주문 중에 내가 어렸을 때 들은 것은 분신사바분신사바오디세이 그라세이그래서 오디세이 그라세이를 패러디해서 오디세이 구라세이로 바꿔 썼다


오디세이는 오뒷세이아의 영어식 이름이다. ‘장기간 여행을 뜻하기도 한다. 구라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뜻하는 은어세이는 말하다’ 또는 발언권을 뜻하는 영단어 ‘say’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자 글의 제목으로 정한 오디세이 구라세이’를 의역하면 오디세우스가 거짓말을 한다(오디세우스의 여행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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