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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꼬마
신경림 지음, 주리 그림 / 바우솔 / 2022년 1월
평점 :
달은 아주 오래된 밤(夜) 친구다. 야래야래(夜來夜來). 오라, 오라. 밤이여, 오라. 뜨거웠던 하늘이 어둡게 차오르면 사람들은 밤 친구가 명랑하게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둥실둥실. 달이 둥실한 얼굴을 내민다. 어화둥둥 밤 친구. 달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항상 따라오는 친구다. 얼굴이 밝은 이 친구를 보면 마음이 푸근하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은 즈믄(千) 강에 두루두루 비친다. 달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밤 친구다. 달은 갑갑한 어둠 속에 갇힌 생명체가 있는지 살핀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달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감옥을 발견한다. 암울한 감옥은 돈에 밝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감옥 한구석에 아기곰 꼬마가 자고 있다. 감옥 담장을 사뿐히 통과한 달은 빛을 뻗어서 꼬마를 깨운다. 달은 잠이 덜 깬 꼬마에게 다가간다. 꼬마는 불쑥 찾아온 달빛을 보자마자 눈을 번쩍 뜬다.
[꼬마]
“꽉 막힌 어둠은 지겨워.
여기보다 더 밝은 세상을 보고 싶어.”
꼬마는 망설임 없이 달에 오른다. 달은 아기곰의 든든한 밤 친구다.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서
탈출한 꼬마의 마음이 달싹인다. 그러나 한 번도 내디뎌본 적 없는 땅과 개울을 계속 걸을수록 꼬마의 마음은 울렁거린다. 달은 꼬마를 따라다니면서 아기곰이 가고 싶은 길을 비춘다. 꼬마의 밤 친구는 평소보다 더 빛을 뿜으면서 소곤소곤 응원한다.
개울을 철벙철벙 건너서
달려라 꼬마,
숲을 향해서
철길도 고속도로도 두려워 말고
먼동이 훤해지자, 달빛은 서서히 희미해진다. 슬슬 달빛이 졸리기 시작한다. 아침은 달이 잠드는 시간이다. 하지만 달은 졸음을 참는다. 달은 오직 꼬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잘못 하면 꼬마가 감옥 주인에게 붙잡힐 수 있다. 거대한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간 꼬마가 주눅 들지 않고 계속 달려야 한다. 어린 친구의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졸지에 꼬마의 낮 친구가 된 달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꼬마를 계속 따라간다. 사람들은 낯에 뜬 밤 친구를 볼 수 없다. 태양 빛에 숨은 달은 편안하게 꼬마를 뒤따를 수 있다. 그래도 달은 사람들이 꼬마를 해코지할까 봐 불안하다.
다행히 꼬마를 친절하게 대하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마음이 달빛만큼 밝은 세 명의 아이는 용감한 꼬마를 응원한다. “잘 가, 꼬마야!”
운동장도
장마당도 가로질러서
달려라 꼬마,
용감한 아기 곰아
잔소리도 없고
구경꾼도 없는 땅을 찾아서
꼬마는 자기에게 잔소리하는 감옥 주인을 싫어했지만, 그가 주는 사료는 좋아했다. 며칠을 굶은 꼬마의 혀는 사료를 그리워한다. 꼬마가 사료의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달은 달빛으로 톡톡 건드린다.
[달]
“꼬마야, 사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곳은 네 고향이 아니란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렴.”
꼬마는 자신을 괴롭히는 유혹을 스스로 내치는 방법을 터득한다. 꼬마는 감옥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적응이 되었다. 달릴수록 꼬마의 꿈과 체력은 무럭무럭 자란다.
달려라 꼬마,
먼 남쪽 나라에서 온 아기 곰아
배고파도 참고
힘들어도 견디면서
네 고향 정글 같은
크고 깊은 숲 나올 때까지
달려라 꼬마,
나도 함께 달리고 싶은 아기 곰아.
오랜 고민 끝에 달은 꼬마와 함께 달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꼬마는 누구의 도움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달은 꼬마가 고향과 같은 숲에 무사히 도착하리라 믿는다. 달은 다 큰 꼬마를 향해 이별의 달빛 인사를 비춘다. 달이 꼬마의 곁을 떠나자 꼬마를 따쓰하게 감싼 마지막 달빛이 슬며시 사라진다.
오늘도 달은 여느 때와 변함없이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달은 누군가의 밤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 유유히 떠오르다가 달빛보다 더 밝은 기운을 느낀다.
[달]
“뭐지, 이 따뜻한 기운은?
땅에서 엄청 밝은 달빛이 나올 리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달은 신비로운 땅의 달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열심히 찾는다. 달은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드디어 밝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곳을 발견한다. 그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히 보기 위해 달빛을 더 세게 내린다. 달빛을 비추자,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달]
“예전에 본 적이 있어. 누구였더라?
아! 꼬마를 응원했던 친구들이잖아.”
세 아이는 우연히 장마당에서 만났던 꼬마를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달을 바라보면서 꼬마가 숲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에 담아 부른다. 아이들의 노래는 진한 달빛이 되어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밤 친구는 옛 친구 꼬마를 그리워하면서 아이들의 달빛 노래에 맞춰 둥실둥실 춤을 춘다.
[아이들]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아, 높이 떠올라라.
아아, 멀리 비쳐라.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용감한 내 친구 꼬마를 위해서.
※ [꼬마, 달, 아이들]의 말은 필자가 쓴 것이다.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상상하면서 썼다. 그 외의 인용문은 그림책에 실린 신경림의 동시 <달려라, 꼬마> 전문이다.
※ 글 마지막에 나온 고어(古語)로 된 네 줄의 문장은 고대 백제의 노래 <정읍사>(井邑詞)의 전강(前腔)과 소엽(小葉)이다.